교육 격차 16

성실한 노력

by Aheajigi


40년 넘게 살아온 모토는 'No pain No gain'이었다.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생각은 어쩌면 노력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자기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생활이 안정을 찾았기에 배불러서 모토가 바뀐 것은 아니다. 여러 정황들이 팔다리를 묶기 때문이다. 내가 했던 만큼의 노력이 지금 아이들에게 반드시 이 정도 삶의 질을 유지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기는 하다.


시골에서 겪는 아이들은 대다수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는 생활보호 대상자나 차상위 계층이 전교생에 1/5 수준이다. 이에 속하지 않는다 하여 형편이 확연히 좋지는 않다. 경계를 넘나드는 가정도 적지는 않다.


한 세대가 가난을 벗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과거 3대 정도였고 현재는 아마도 4대는 거쳐야 할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아이들에게 성실한 노력이란 게 장착되었으면 싶은 욕심이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다 나은 삶의 질 말이다.


'No gain No pain'

삶의 모토가 이전과 달리 앞뒤를 바꿨다.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으면 고통은 없을 것이다. 잘 배웠으면 싶은 바람은 갈등이 양산될 것이 뻔하고 민원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을 못 담그냐 말할 수도 있다. 그 구더기가 당신의 생존권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더라도 실행할 수 있는지 되묻는다면 섣불리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으려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일을 교사로서 당하지 않기 위한 자구책인 것이다. 주변 다른 교사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25년째 학생들과 만났다는 사실은 눈앞에 보이는 학생들이 어떻게 자랐는지에 대한 사례도 많음을 의미한다. 양육자는 잘 키우겠다고 열심히 학원을 보내지만 그것이 아이를 잘 키우는 충분조건이 되지 않음은 등한시한다.


아래 언급하는 것은 교육이란 시스템에서는 더 이상 건드릴수도 없고 건드려서는 안 될 3가지 사안이며 이제부터는 가정에서 반드시 실행해야 할 필수 과업이기도 하다. 힘겨운 삶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첫째, 대인 관계는 원만하게,

둘째, 눈앞의 그 어떤 일에 있어서도 통용되는 수준의 선을 지키도록,

셋째, 학습은 의지가 관건이기에 꾸준하게 매진할 수 있는 성실함과 노력을 탑재하도록 지속적 관심과 애정을 쏟도록

한 가지라도 빠진다면 이 빠진 톱니마냥 삐그덕 거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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