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여린 약자에게 더 가혹했다.(1)

어처구니 없는 잘못

by Aheajigi

“씩~, 씩~”

몇 번이고 가슴이 터질 듯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거칠게 내쉬었다. 한껏 달아오른 흥분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심장은 부글부글 들끓었고 손발은 바들바들 떨렸다. 격랑 치는 감정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와라자~ 이뢰퀴~ 아랴큐~”

휘몰아치는 마음속 폭풍은 탄이의 감각 기능까지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30명 가까운 아이들이 주변을 에워싸고는 뭐라 말들을 하는데 탄이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소리는 와글와글 거리며 귓바퀴 주위만 맴돌 뿐 머릿속으로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아득히 들려오는 말소리는 마치 다른 나라 언어 같았다. 시선은 분명 앞을 향했지만, 초점을 읽은 눈까지도 사람과 사물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이제 교실로 돌아가~.”

신나야 할 운동장 수업은 탄이와 철구의 툭탁거림으로 인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게 뭐야~!”

“체육 수업을 귀로 했네~!”

친구들은 실내화를 갈아 신으며 너 나 할 것 없이 짜증난다고 한마디씩 보탰다. 신나고 활기 넘쳤던 피구 게임이 싸움으로 멈췄기 때문이다. 체육 선생님께서 벼슬을 곧추세운 수탉마냥 독기가 바짝 오른 두 아이에게 잔소리하느라 40분이란 수업 시간이 전부 훌쩍 흘러가 버린 것이었다.

“짜증나! 정말!”

“전학생 오고 나서 계속 이상해!”

교실로 들어와서도 친구들의 신경질적 반응은 멈추지 않았다. 분명 둘이 싸운 일이건만 모든 비난의 화살은 탄이한테만 꽂혔다. 피구 경기를 하면서 철구를 공으로 맞춘 일이 분란으로 번질 것이라고 탄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또래와의 옥신각신은 근래 들어 매번 자신에게만 일어나는지 답답했고 싫었다. 다들 무던하게 별 탈 없이 잘도 지내고 있건만 말이다.



탄이의 삶이 애초부터 이렇게 매섭지는 않았다. 바닷가 작고 조용한 학교에 다닐 때 탄이와 친구들의 관계는 포근하고 평온했다. 넓고 푸른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에 살포시 앉은 아담한 학교는 단층 건물에 교실은 여섯 칸이 전부였다.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한 학년에 한두 명씩 겨우 10여 명 남짓이었다. 축구라도 할라치면 전교생을 모두 사정사정하며 불러 모아야 했다. 그나마도 공이 언덕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기 일쑤여서 차는 시간 보다 주우러 가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축구공 좀 가장자리로 차지 말라니께!”

“그게 내 맴대로 됐으면 내가 축구 선수지! 안 그려?”

“개발이유! 개발!”

탄이가 꽃게처럼 양손으로 검지와 중지로 집게 모양을 흉내고 옆으로 걸어가자 친구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고 멍이여! 멍!멍!”

소소한 툭탁거림은 왕왕 있었지만, 늘 형제자매처럼 가깝게 지냈다. 분란이라 해봐야 얕은 말싸움 수준이었고 그나마도 이튿날이면 화해했다. 학교가 파하고 나면 함께 갯벌과 언덕배기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깔깔거렸다. 우리는 모두 바다 너머로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더 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헤어짐을 언제나 아쉬워했다.


‘왜 모두 나를 싫어할까?’

수업이 모두 끝나자 담임 선생님은 탄이와 철구를 남겼고 체육 시간에 있었던 일을 말해보라 했다. 철구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목소리를 높여 자기변명에 바빴다. 반면 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물었다. 탄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철구는 있지도 않은 말까지 지어내며 한참을 더 떠든 뒤 어울리지도 않은 얌전을 떨며 공손히 인사를 하고 교실에서 나갔다. 붉게 물든 하늘과 뉘엿뉘엿 앞산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 보이는 교실에는 탄이만 덩그러니 남았다. 탄이는 고개를 숙이고는 길게 자란 새끼손톱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할~매!’

‘금방 끝나!’

‘손톱에 봉숭아물들이면 애들이 놀릴 텐데.’

‘괜찮다니께. 이쁘게 될 것이여!’

‘작년에도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이 뻘겋다고 놀렸는데.’

탄이는 할매의 손길이 남아있는 다홍색 손톱만 꼭 쥐고 있을 뿐이었다.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할매의 흔적을 통해 마음으로나마 위로를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드르륵”

물 한잔을 들고 선생님이 교실로 돌아오셨다. 살아오면서 피구 게임이 이렇게 위협적인 상황을 만든 적은 없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 피구 공을 만지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편 아이들이 모두 피구 공에 맞아 경기장 밖으로 나갔고 탄이만 남은 상황이었다. 공이 데굴데굴 굴러 탄이 발 앞에 놓였다. 빨리 공을 던지라는 또래들의 아우성에 공을 집어서 상대편에게 던졌을 뿐이다. 하필 그 많은 아이 중 철구의 이마에 정확히 맞은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철구는 일부러 얼굴을 맞혔다며 달려와 손바닥으로 탄이의 얼굴을 강하게 밀쳤다. 넘어져서 아파하는 탄이의 표정을 보면서도 철구는 비열한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주저앉은 탄이 손을 철구가 밟고는 지근지근 짓뭉갰다. 웬만하면 참아보려 했건만 하필이면 할매와 추억이 담긴 봉숭아물이든 손톱이 철구의 신발 아래 짓밟혔다. 고통은 참아낼 수 있었지만 할매와 추억만큼은 흠집이 생기도록 두고 볼 수 없었다. 탄이도 번쩍 일어나 철구의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말하기 싫으면 종이에 써볼래?”

선생님께서 왜 싸웠는지 속마음을 드러내보라 했지만, 쓴다 한들 보나마나 더 긴 잔소리가 이어질 것이 뻔할 것을 미루어 짐작했다. 할매와 떨어진 이후부터 이 세상에 내 편 하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무슨 변명을 하든 탄이는 항상 불리할 수밖에 없음을 시설과 지금 있는 목사 집에서 충분히 겪었다. 탄이의 부어오른 손은 쓰린 마음처럼 계속 욱신거렸다.


선생님의 퇴근 시간이 다다르고 나서야 비로소 이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음부터 절대 싸우지 말고 잘 지냈으면 좋겠어. 집에 조심해서 가고!”

교실을 나서자 아무도 없는 복도는 적막했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굴러가는 낙엽만 있는 운동장은 스산했다. 탄이는 앞으로 자신의 삶에 행복까지 바라지도 않았다. 의지할 사람이 딱 한 명 그리고 마음 편히 몸을 뉠 곳만 허락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가~!”

“아가 이리 와 보렴!”

떡볶이를 만드시던 할머니가 가게 앞을 지나던 탄이를 불렀지만 듣지 못했다. 터덜터덜 걷는 탄이는 지나온 나날을 되짚는 생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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