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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부부의 날, 수술 이후 1달]

5월 21일, 두 사람이 하나 되는 기쁨을 부부의 날로 정한 날

by 아헤브

"여보, 요즘 많이 피곤해 보여. 얼른 씻고 침대에 누워 한숨 자.


내가 이제부터 기쁨이 돌볼게. 그리고 병원은 내가 내일 갈게.


이러다 몸 다 망가지겠어. 여보는 밀린 잠 지금부터 푹 자야 할 것 같아.


저녁도 해 놓고 설거지 마무리까지 다 끝내놓을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자고 싶은 만큼 푹 자고 일어나


기쁨이 씻기고 화상 약 발라주고, 잠옷까지 입힌 후에 자기 깨울게.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 하니까, 저녁 준비해 놓고 깨울게.


밤새 굶고 자면 몸 상해. 중간에 잠시 일어나서 허기 채우고 다시 자."


"고마워! 남편, 그럼 나 잘게. 너무 졸려."


나무를 중심으로 그가 지어낸 상상력의 세계, 그의 세계에 빠져들다.

수많은 계절이 덧없이 스쳐 지나갔다.

그 사이 우리는 서로의 장점 대부분을 익히 알게 되었고,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연약한 모습들까지도, 세월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마치 양끝에서 한 방향을 향해 함께 쌓아 올리는 다리처럼,

말 그대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었다.



그녀를 안 세월이 인생의 반을 넘겼다.

스물한 살에 그녀가 처음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때는 우리가 부부의 연으로 이렇게 이어질 줄 몰랐다.

그때의 나는 그녀를 그저 상냥하고 우아하고 예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저런 사람에겐 당연히 남자 친구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고,

실제로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20대 중반, 그녀와 사귀게 되었다.

그녀는 가난한 취업준비생인 나를 극진한 사랑으로 늘 상냥하게 대접해 주었다.

내게 어울리는 옷을 사 입히고, 가방을 사주고, 신발도 바꿔주었다.

패션 테러리스트였던 내가, 이제는 길거리에서 시선 한 번쯤은 받는 사람이 되었다.

도무지, 나 혼자로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그녀를 만남으로 하나하나 새로고침 되었다.

3년 반쯤 교제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녀는 참 예뻤다.


결혼 후, 예기치 않은 어려움들이 우리에게 홍수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가는 회사는 늘 늦은 밤까지 야근을 해야만 하는 회사였다.

삼 년 넘게 아이가 찾아오질 않았다. 간절히 아이를 기다렸지만, 소용없었다.

인간의 능력으로 안 되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자연스레 경험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오랜 기다림 가운데 기쁨이라는 아이가 어느 날 우리 품에 찾아오게 되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으러 들어가는 와 중에도, 웃었다.

싱그러운 표정으로 이제 곧 만날 아이가 기대된다며,

아이를 낳는 아픔보다 4년 동안 기다렸던 아이의 얼굴 보는 기쁨이

훨씬 크다고 시종일관 이야기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기쁨이 그간의 서러움과 아픔을 덮어 버리는 순간을 그 순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기쁨 이가 세상에 나왔다.

그 후 1년 간 아무 일 없이 잘 지냈지만, 어느 날부터 아이에게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잘못된 걸까?... 알 길이 없었다. 의사도 그 병의 원인을 모른다 했다.



다시 10년을 달렸다.



그 사이 그렇게 반짝이던 아내의 눈가에 어느 새부터 진한 다크서클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급격하게 피곤해지는 표정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피곤한 날엔 어김없이, 눈가의 그림자가 더 짙게 내려앉았다.

사랑하는 만큼 가슴이 너무 아팠다.

아내는 늘 괜찮아라고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주말 아침이 밝았다. 먼저, 아이와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는지 살핀다. 빼꼼히 열린 방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쌔근거리며 자는 아이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채 깊은 잠에 빠진 아내를 바라본다. 동시에 참 사랑스러운 두 사람이란 생각에 빠진다. 이윽고 두 사람이 깰라, 조용히 방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마저 닫는다.



일단, 베란다 앞 뒤 창문을 열고, 살랑거리는 바람이 집을 관통하도록 바람에 집을 내준다. 건너편 방에 있는 냉장고 문을 양손으로 부드럽게 잡고 조심스럽게 연다. 사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은 움직이고 내 눈앞에 반찬거리와 조리할 음식 재료가 보인다. 1분이면 삐삐 거리는 소리를 내는 냉장고 시간을 철저히 계산하면서, 잽싸게 위부터 아래로 빠르게 시선을 훑어 내려간다. 어제 아내와 아이가 먹고 싶다고 했던 그 요리를 만들어 낼 채비를 서두른다.



언제 아이의 기쁨 가득한 목소리가 아침을 깨우고 나올지 몰라, 두 손이 쉴 새 없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마음이 점점 분주해져, 잠시 바쁨을 끊어 내야겠단 생각에 이른다. 잠시 숨을 고르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고 조용히 심호흡을 한 뒤, 경음악을 틀고 볼륨을 적당히 낮춘다.



뚝딱뚝딱, 칼질이 시작되고, 두부와 여러 가지 채소, 고기가 섞이기 시작한다. 마지 막엔 대파를 살짝 올린다.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치익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밥솥의 요란함과 더불어, 뽀글뽀글 소리를 내는 찌개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자 이제 멀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하면 완성이다라는 자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드디어 부대찌개 하나가 완성되었다.




보글보글 거리는 찌개 소리가 커지면서, 마침내 기쁨 이가 깼다.

"아이고~ 잘 잤다."

그가 매일 반복하는 정확한 문장이다.

매일 같은 레퍼토리가 집안 곳곳을 채운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다.

이내 살랑거리는 바람이 내 귓가를 간지럽히는 걸 느끼고,

안방 문을 조심히 열고, 아내와 아이에게 아침 첫인사말을 건넨다.


"잘 잤어? 우리 소중한 두 사람~"

두 사람 모두에게 볼 뽀뽀를 시전 한다.

아내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짓고,

기쁨 이는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른다.


"오우 아빠, 이거 무슨 냄새야? 찌개 끓였어?"

"응, 얼마 전에 네가 먹은 부대찌개 맛있다고 해서, 함 끓여봤어."

한 주 내내, 매일 병원 다니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아들. 엄마도 그렇고.



"오늘은 아빠가 아침이랑 점심 다 해줄 거야. 그러니 나가서 맛있는 밥 먹고 힘차게 하루 놀아보자!

오늘은 병원 안 가니까. 기쁨이랑 원카드 게임도 하고, 보석상자 게임도 하고, 스파이워즈 게임도 하자.

저녁에는 아빠랑 홈스쿨링도 해야지."


"응, 게임은 좋은데 공부는 하기 싫다.

이따가 치과의사 놀이 해야지. 오늘 주말인데 공부는 나중에 하자."


"그래, 오늘은 치과 의사 놀이도 해야지. 지난주는 미용실 사장님이었고, 그 전주는 외과 의사 선생님이었는데, 이번 주는 치과 개업했구나. 그래도 과학, 도덕, 사회, 영어는 아빠랑 하기로 약속했잖아. 해야지."


"응, 알겠어. 아빠. 이따가 이 치료받으러 오세요.

수술해야 될 수도 있으니까 돈도 많이 챙겨 와~"


"그래~"




"똑같이 생겨가지고~ 어쩜 둘이 그렇게 재미나게 대화를 할까?" 이내 아내의 흐뭇한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 둘 대화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이와 아이컨택 하느라 아내가 곁에 있었는지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자기야. 5월 21일이 부부의 날이라는 거 알고 있었어?"

"아니, 왜 그날이 부부의 날이지?"

아내가 물었다.


아, 그 이유는 2(둘)이 1(하나)되라고

특별히 5월 가정의 달에 부부의 날로 정해 놓은 거래. 의미 참 좋지 않아?"

"그르네. 정말 부부의 날이 맞네. 좋은 의미로 이름 잘 지었다."





아내의 짙게 내려앉은 눈가 그림자가 어제보다 많이 사라졌다.

주말 푹 자고 일어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침밥을 거하게 먹고 몸 컨디션이 금세 나아진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내 아내의 피곤이 어제 보다 훨씬 경감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내의 날, 남편의 날, 부부의 날.. 덕분이다.

그 생각이 나로 하여금 주방에 서도록 부추겼기 때문이다.

'의미 부여란 이토록 중요하다. 삶에는 항상 의미 부요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5월 21일.



오늘도 아내는 아이와 함께 재활 병원으로 떠났다. 3주가량 두 사람과 함께 병원을 참 자주 갔었는데, 이젠 아내 혼자 하겠다고 한다. 나의 미래를 걱정해서겠지.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 마음씀이 너무 고맙다. 이젠 내가 비상할 차례. 모든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왔던 우리 세 사람의 일기는 앞으로도 매일 쓰일 것이다. 누군가에겐 교만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우리 부부에게 그동안 후회는 없었다. 아쉬움도 별반 크게 남아있지 않다. 단 하나 안타까움이 있다면, 지금 매일 치르고 있는 이 재활로 점철된 일상이 언제까지 이어져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미 아내는 충분히 지쳤다. 하루 이틀 잠을 잘 잔다고 회복되는 성격이 아닌 게 되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재활의 마침표를 찍고, 아이가 건강해져서 더 이상 재활이 필요 없는 날이 오면 좋겠다. 미지수이지만, 나의 바램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내를 사랑한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나는 대신 죽을 수 있다.



아들이 소중하지만, 아들은 아내에게서 나왔다. 그녀가 없었다면 기쁨 이는 이 세상에 애초 존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의 우선순위는 항상 아내부터 시작된다. 그녀가 행복해야 결국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아내와 함께 한 지 벌써 스물몇 해. 그녀는 내게 군시절 100장짜리 우표를 아무 바람 없이 그냥 보내주었다. 군에서 고생하는 아는 형제에게 사심 없이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었다. 나는 그때부터 그녀에 대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호기심이 일었던 것 같다.



그녀를 사랑하고 나서부터는 그런 그녀의 숭고하고 예쁜 마음을 기려,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다. 그렇게 함께 쌓아 올린 20년. 이제 '함께 지어져 가던 다리가 그 건실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녀는 안다. 내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잘 안다. 그녀는 아무 의심 없이 나를 항상 믿어 주고 웃어준다. 신뢰란 이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신뢰란 정말 오랜 시간의 반복을 통해 차츰차츰 쌓여 가는 성격임을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 제대로 배웠다.



나는 행복하다. 비록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재활이라는 상황 가운데 고전하고 있지만,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임을 안다. 그래서 오늘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만천하에 기념함으로써, 지금 이 시간에도 재활 병원에 가서 고생하고 있는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감사를 표현한다. 내가 당신과 기쁨이에게 커다란 선물이 되어줄게. 우리 조금만 더 인내하자.


"많이 힘들지. 내가 당신 마음 잘 알아. 노력할게. 멋진 미래를 함께 잘 만들어 가보자."



p.s


많은 분들의 사랑과 관심을 통해 저희 기쁨이 수술이 잘 되었다는 피드백을 며칠 전에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한 달가량 딱딱한 깁스에 감싸져 있던 발목에 시퍼런 멍이 들고 그간 많이 아팠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기쁨 이는 여전히 씩씩하게 말하고 웃습니다. 기쁨 이는 정말 배꼽이 빠질 만큼 호탕하게 깔깔 거리며 웃는 아이랍니다. 많은 분들의 사랑과 관심에 감사드리고, 아이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플로잉 해주신 모든 분들의 사랑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아내와 아이에게 앞으로도 정성껏 흘려보내겠습니다. 그간에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기쁨이와 함께하는 도덕시간
기쁨이와 함께하는 사회시간


이 글로 해당 브런치북은 종료하고, 다음 기회를 통해 다른 브런치북으로 만나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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