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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오늘 생신 축하드려요!낳아주고길러주셔서 감사드려요

그 무엇으로 저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엄마, 나의 어머니

by 아헤브
엄마, 저예요
삼십 년 만에 엄마라 불러보네요.
쑥스럽지만 이렇게 불러도 좋네요~
엄마~ 사랑해요~

오늘 이렇게
태어나 제 어머니가 되어 주셔서 감사드려요


드디어 아끼고 아껴왔던 제 마음을

'브런치(Brunch)'라 새겨진 편지 봉투에 담아 '사랑'이란 글자와 함께 동봉해 드릴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합니다.



오늘은 편지 글이 길 거예요~

우리 어머니 눈도 안 좋으신데 오늘 한 번만 마음 단단히 먹고 읽어주세요.

슬픈 이야기 보단 주로 기쁜 이야기를 할 거예요.



가장 먼저,

어머니께 생신 축하 드린다는 말씀부터 드릴래요.


생신 축하 드려요
평생 인내하며 힘든 와중에도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모습 보여 주셔서 감사했어요.
오늘의 제가 있는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이에요
물론 아버지를 빼놓을 순 없겠죠 섭섭해하지 마세요 아부지


어머니, 제게는 꿈이 있어요.







그건 여느 성공한 자녀들이 종종 방송에 나와 말하던 그 고백과 맞닿아 있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위한 편안한 휴식처를 선물해 드리고 싶어요.

그 꿈이 언제 이뤄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 꿈을 이뤄 드리고 싶어요.

지금 아들이 하프타임에 십분 간 잠시 휴식 중이라,

생신인데도 바로 못 찾아봬서 죄송해요. 주말에 찾아뵐게요."


막연하게 작가의 꿈을 꾸던 시절에도,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했어요



언젠가 내가 유명해지면,

그래서 미디어에 출연하거나,

책을 쓰게 된다면 반드시, 기어코, 필히

어머니께 한 페이지를 할애해서

제 안에 끓어오르는 감사의 마음을 진하게 담겠다고요



삼 년 전 즈음에

제가 어느 유튜브에 출연했을 때

그곳에선 아들 기쁨이 그리고 아내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었어요

촬영을 하는 그날 아침에,

저는 사실 어머니 이야기를 더 먼저 하고 싶었어요



그날의 제가 있기까지

그리고 오늘 제가 있기까지

저를 만든 뿌리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오롯이 출발했기 때문에

사실 아들과 아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두 분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싶었어요



다만, 그때는 질문에 따른 답을 하는 형식이었기에

어머님 이야기를 꺼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아 아쉬웠답니다



지금까지 저희 이야기를 3천 명이 넘는 분들이 들어주셨어요.

그 안에 어머니를 담지 못해 여전히 죄송한 마음이 있지만

'브런치' 마을에서 '브런치' 카페에 앉아 새벽부터 편지를 띄워 드릴 수 있어 감사할 뿐이네요.



지금의 저를 만든 분은 어머니시라는 걸,

세상 모든 분들에게 나누고 싶어요.

그분들도 모두 그럴 거거든요.



지금도 가끔 그 영상을 틀어 주파수를 3년 전 그때로 돌려놓고

제가 했던 그 이야기를 듣고는 해요. 그전 날, 새벽까지 야근해서

엄청 피곤했었는데, 연습 한 번 없이 카메라 7대 앞에서

제 이야기를 하려니 긴장이 많이 되었었어요.

그래도 제가 워낙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금방 몰입할 수 있었어요.



인생은 다른 말로 시간이란 말로 치환할 수 있기에,

지나간 시간, 흘러간 인생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엄마, 6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제가 엄마께 이런 말씀을 드렸었어요.


"엄마, 이제 저 엄마한테 엄마라고 안 하고, 어른처럼 어머니라 부르고 싶어 졌어요."
어머니라 부르면, 엄마라고 부를 때보다 더 예의 바른 아들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부르는 게 좋겠어요. 이제부터 그렇게 불러도 엄마는 괜찮겠어요?"
"으응, 엄마는 네가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어, 네가 원하는 데로 하렴."


그때 어머니는 지금의 저보다도 더 젊으셨어요.

그런데 그 나이에 어머니는

어쩌면 그렇게 자애롭고, 사랑이 많으셨을까.

가끔 깊이 생각해 보곤 해요. 그만큼 힘든 시간이 많아서

어머니도 일찍 깊어지신 거겠죠.



어머니는 열 살 때 할아버지를 하늘로 보내셨죠.

그래서 자주 제게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하셨어요.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뛰어놀던 흐린 기억만 남아 있단 이야기를 하신 기억이 나요.

기쁨 이가 이제 곧 열한 살 생일을 맞이하는데,

딱 기쁨이 나이에 아빠를 잃어버린 슬픈 엄마의 마음,

저는 부모가 되기 전까진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제가 아이를 갖고, 키워가면서, 아이가 이제 열 살이 되고 보니

울 어머니 마음 깊은 곳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허전한 구멍이 뚤려있었을까..

아빠 없이 자라면서 우리 엄마는 얼마나 아빠 품이 그리웠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제가 이번 주말에 가서 꼭 안아 드릴게요.

할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그때의 아이로 돌아가 제게 안겨주세요.



"제가 잠시 엄마의 아빠가 되어 드릴게요."



그 어려운 시절에 자녀가 많은 집에서 태어나,

할머니가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고아원 같은 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자라야 하는 형편이었다 하셨죠

도저히 외할머니 능력으로 그 많은 자녀들을 한꺼번에 보듬을 수 없어서,

엄마는 그 어린 나이에 보육원에서 몇 년을 보내야만 했단 딱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듣는 그 순간에도 마음은 아팠지만,

그게 얼마나 어린 여자 아이에게 커다란 슬픔이 되었을지 가늠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제가 마흔 중반이 되어 보니, 그 의미를 이제 좀 알겠더라고요.

결혼 전에 광주 항쟁을 목격하면서, 커다란 충격을 받으셨단 이야기를 어느 날 들으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머니의 세계가 나의 그것처럼 넓고도, 깊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결혼 후엔 아버지 해외 근무로

두 아이를 오랫동안 홀로 키우면서

참 많은 시간 외롭고 힘드셨을 거예요.

물론 아버지가 종종 들어오셔서 또 일정 기간 함께 계셨지만

정작 어머니가 가장 아버지를 필요로 할 때는 곁에 있지 않았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때 어머니는 가장 젊은 20대, 30대였으니

말 그대로 버텨내야만 하는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군을 제대하고 나서부터 어머니께 거의 매일 전화드렸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간은 켜켜이 쌓여 20년이 다 되어가네요

제게 있어선 그 무엇보다 어머니와의 대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의미였던 것 같아요



제 나이 스물, 교회에서 전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예기치 못한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가 왔어요. 종이짝처럼 구겨진 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구조되었던 어머니..

구급 대원들조차도 마지막 사람은 죽었을 거라 말했을 만큼 그때 상황은 처참했다 들었어요.

다행히도 몇 시간 의식을 잃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깨어나셨어요.

제가 대학병원 기둥에 기대어, 얼마나 흐느꼈는지 몰라요.

어머니를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줄 알고..



한참 대학생 새내기가 되어, 들떠 있던 제게 어머니 사고 소식은 청천벽력 같았어요.

그때부터 '생'의 의미에 대해 더 파고들기 시작했어요.

수많은 책을 탐독해 들어가기 시작했고,

반년이 넘고 세 계절이 거의 다 되고서야 퇴원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그제야 저는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직장에 가면 어머니를 누구보다 잘 봉양하는 아들 되겠다고 그렇게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어요 하지만

제가 결혼을 하고 처음 삼 년은 아이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다 써버렸고,

이후에는 병원에 십 년 넘게 다니는 아이와 아내한테 시간을 다 써버린 것 같아요

죄송해요. 어머님께는 마음의 백만분의 일도 못 드렸어요.


지금 제 몸이 회복되고 있으니까, 이제 곧 다시 재기하게 되면

저는 두 분에게 가장 든든한 아들이 될 거예요

평생 고생만 해온 아버지와 어머니께 반드시 편안한 휴식처를 마련해 드리고 싶어요.

지금의 작은 집이 아닌,

산과 개천을 끼고 있는 좋은 터에 마련된 그런 편안한 집, 여유가 있는 집 하나를 꼭 선물해 드리고 싶어요.



제 꿈은 제2의 김창옥 강사와 같아요.

그 분과 비슷한 결의 삶을 살고 싶어요

모양과 색깔은 다르겠지만,

제 삶 속에 수많은 아픔과 그 치유 과정을 되짚으면서

상처받고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삶의 의지를 북돋아 주고 싶어요.



지난 15년 데이터 분석가로, 구매 전문가로 살면서, 나름의 커리어를 열심히 밟아왔는데,

몸관리를 잘 못했어요. 그만큼 몸이 오래 서서히 지쳐 갔던 것 같아요.

저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많은 동료들과 가깝게 지냈어요.

어머니 덕분에 동료들과 대화하는 것들이 제게는 커다란 즐거움이었어요.


교회 오빠라 불러주는 동료도 있었고,

큰 형님들도 저를 소중히 대해주었어요.

뒤늦게 들어온 이직해 온 동료를 돕다가 친구가 되기도 했고요.

지금도 사람들은 저한테 가끔씩 돌아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요.

다 어머니가 잘 길러주신 덕분이에요.

모두 다 어머니의 선물이에요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지금의 모습을 절대, 결코 갖추지 못했을 거예요



이제 글을 맺으려 해요.



어머니를 위해 지금 해 드리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건강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운동해 주시고요. 짜게 드시지 마시고요.

힘드시겠지만 조금씩이라도 걸으면서 건강을 잃지 않도록 애써 주세요.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저의 평생을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통곡이 나오는 저의 기도 시간, 그 시간을 꺼내어 이제 삶으로

내리사랑을 갚아 나가겠습니다.

어머니! 오래오래 제 곁에 계셔 주셔야 해요.



큰 며느리가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한데요

자기도 어머니와 같은 시어머니가 되고 싶데요

그래서 이 브런치북에 특별히 어머니를 향한 제 작은 사랑을 담았습니다.

어머니 가끔 따라 부르는 노래예요.

요즘은 제가 이 곡에 마음을 뺏겨 있네요.

제 맘 같아서이기도 하지만

전 어머니께서 세상에 쏘아올린

눈부신 별이라 믿으니까요


사랑해요 그리고 생신 축하드려요!!


나는 반딧불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한참 동안 찾았던 내 손톱
하늘로 올라가 초승달 돼 버렸지
주워 담을 수도 없게 너무 멀리 갔죠
누가 저기 걸어놨어 누가 저기 걸어놨어
우주에서 무주로 날아온
밤하늘의 별들이 반딧불이 돼 버렸지
내가 널 만난 것처럼 마치 약속한 것처럼
나는 다시 태어났지 나는 다시 태어났지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란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CL5VBKUK-_Y (출처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x9Jz2OueIGY (출처 : 유튜브)





오늘 사정으로 발행을 못하는 날이었는데, 연재일을 바꿔 계획을 수정해서 발행합니다.

언제나 제 글 속에서 저를 만나 주시는 많은 작가님, 독자님들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히 고백할꼐요.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예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시 한 편 모두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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