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_사람을 사랑하는 일
지난 2년 남짓,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에서 '작가'로 불리며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내 글이 하나의 작품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하나의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만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필명 하나를 직접 고르는 일이었다.
며칠 동안 필명 저울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내 삶의 과거, 현재, 미래를 표현할 단어로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랑이라는 단어에 자꾸 눈길이 가고 끌리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평가 절하되어 흔하게 쓰이는 단어였지만 필명으로 이보다 더 적합한 단어를 찾기 어렵다 느껴졌다.
선택과 헌신, 행동이 따르는 사랑이라는 의미를 담은 히브리어 단어 아헤브(אָהַב)를 작가 필명으로 낙점했다. 등록 이후 미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밀물처럼 치고 들어온 뜨거운 감정은 이내 썰물처럼 빠르게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사랑을 필명으로 쓴다는 막중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복잡한 감정이었던 듯싶다. 나의 존재를 깊이 통과하고 나서 오는 일종의 묘한 설렘이기도 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2025년 12월 9일 출간 ⓒ 아헤브 관련사진 보기
신간, <사람을 사랑하는 일>
두 달 전 신간 한 권이 나왔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채수아 작가의 책이었다. 그녀는 현재 브런치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브런치 최고의 인기 작가(조회수 100만)로서 전직 초등 교사, 아동문예문학상 수상자, 사랑의 편지 객원 작가 등 수많은 타이틀이 그 뒤를 잇는다. 개인적인 생각에 아마도 그녀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은 어떤 성취를 나타내는 수식어가 아닌 그녀의 솔직한 삶의 이야기가 쓰인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책은 시종일관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관계를 탐색한다. 수녀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을 설득할 자신이 없어 결혼에 이르렀다는 그녀의 고백은 얼마나 그녀가 관계 지향적인지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수녀 대신에 결혼을 선택한 그녀는 머지않아, 상처 많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탓에 메말라 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너무도 사랑하는 아들의 마음을 못내 이길 수 없었던 그녀는 분가 대신에 자신이 고단한 삶을 선택하기로 결단한다.
'나 하나만 참으면 되었다'는 그녀의 자전적 고백은 자그마치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어진다. 모진 세월 동안 참고 견디는 것으로, 그녀는 수녀가 되는 대신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며 살았다.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통해 밝히 말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바로 행동하는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사랑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면에는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 머무르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게 한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는 그 안에 분명한 이유가 이미 깃들여 있다는 점 역시 밝힌다. 수많은 사랑의 의미와 진실, 이해와 이유가 버무려진 사랑이 진정 우리 모두를 성숙하게 한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차츰차츰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랑이 메말라버린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현재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사랑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사랑하며 사는 자신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같이 사는 시어머니의 파란만장한 서사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결국 사랑하기 불가능해 보였던 시어머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를 찾게 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머님은 두려움 없이 부딪히고 싸우셨다. 그래서 당신도 모르게 많은 가시가 자연스레 달라붙었던 것 같다. 어머님의 도전 정신은 여든이 넘어도 끄떡없으셨다. 주소 하나만 있으면 부산이건, 서울이건 발품 팔아 찾아가는 분이셨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전화 통화가 안되어도 무작정 출발을 하시던 분이셨다. 가끔 허탕을 치고 돌아오시면 내가 다 속상했지만, 어머님은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부딪혀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열심히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모두 나의 시어머님 덕분이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용기가 불끈 생긴다. 당신의 인격까지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사시다 떠나신 우리 어머니는, 한 마디로 '인간승리'였다. 정말 멋진 분이셨다. 21p
아버지 말씀이 옳았다. 내 일에 충실하고,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살면, 내 자식들은 어디에 있건 좋은 분들과 좋은 인연을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음을. 내가 볼 수 없고, 내가 힘쓸 수 없는 영역에서도 사랑의 씨앗은 돌고 돌아 꽃을 피울 수 있음을. 알겠다. 점점 알아진다. 그냥 좋은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사는 거다. 어두운 마음을 과감히 물리치고, 밝고 긍정적인 평화의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거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사랑을 심는 거다. 사랑을 선택하는 거다. 262p마중물과 두름길
채수아 작가는 책 중반에 '마중물'과 '두름길'이라는 단어를 꺼내든다. 지름길의 반대말인 두름길은 말 그대로 둘러서 가는 길을 표현하는 우리말이다. 둘러서 가기 때문에 두름길이라고 표현한 이 단어는 모든 것이 빨라야 하고, 정확해야 하며, 실수가 전혀 용인되지 않는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둘러서 가는 '여유' 임을 밝히 말한다. 동시에 나 자신이 누군가의 삶에 마중물 되어, 물이 지상으로 끌어올려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돼라 도전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사랑에 목마르다. 사랑을 생각하기에는 모두가 너무 고되다. 어느 인생에도 사연 없는 삶이 없고, 고통 없는 인생이 없다. 우리는 어느 면에서 모두 아프고 연약한 존재다. 인정의 여부를 떠나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들 일상에서 마중물 역할을 잘 감당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 마음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이끌리는 것은 본래 사람이 그런 지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꽃 보다 아름다운 존재가 바로 사람인 것이다. 사람은 원래 사랑하기 위해 지어진 존재인 것이다.
인생의 B와 D 사이에 놓인 C, 선택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사는 동안 꾸준히 배우며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대상이 되겠다는 결단에서 출발한다. 인생은 결국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 놓인 선택(Choice)이다. 나 역시 아헤브라는 이름의 무게를 가진 채 하루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고 있다. 그런 면에서 사랑을 강조한 채수아 작가님의 책이 내게 끼친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를 들여다 봄으로써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삶의 형태를 새롭게 알게 되고, 아직 이르지 못한 지점으로 성큼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 책을 쓰는 행위 역시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사랑하며 사는 것은 우리의 생각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다 생각하면 우리 역시 사랑하며 살 수 있다. 그것이 본래 사랑이 가진 가장 보편적인 특성이자 능력이기에 우리는 그 지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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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처음으로 송고한 내용입니다. 첫 시도로 채택되진 않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작가님의 책을 여러분들께 강권합니다. 책은 참고로 출판사 측으로부터 서평을 목적으로 선물 받았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글을 앞으로도 몇 달 간 자주 쓰지는 못할 것 같은데, 떠나지 마시고 기다려 주세요 :)
사정이 되는 대로 글쓰러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