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 3

핸드폰 보기가 무섭다

by 전소

지난 한 주는 정말 어마어마한 한 주였다.

자아부양하기로 마음을 먹고 산뜻하게 한주를 시작한 것은 좋았으나 그 평화는 채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무참히 깨졌다.


아랫집 세입자가 더 이상 이렇게 못 살겠으니 오늘 당장 호텔을 잡아달라고 했다.

여전히 자기 계좌에 기록이 남는 것은 싫으니

자기가 잘 아는 호텔 총지배인에게 연락을 해둘 테니 그쪽으로 바로 입금하라고 했다.

뭔 일인가 싶어 관리소 계장님에게 연락해 보니 지금 점심시간이라 밥 먹고 찾아가 보겠다고 했다.

계장님이 보기에는 우리 집의 문제가 아닌데 우리 집의 문제로 탓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시 아랫집 세입자에게 전화를 하니 지금 당장 호텔 총지배인에게 돈을 보내라고 했다.

나는 어차피 호텔 체크인은 3시경이니, 그 전에 문제 원인을 확인할 수 있도록 누수업체를 먼저 보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랫집 세입자는 아니 자기가 지금 당장 가겠다는데 체크인 시간이 무슨 상관이냐며 당장 돈을 입금하라고 했다.

내가 ‘싫은데요?’라고 했더니 ‘아니 이 xx가!!!’ 이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랫집 세입자는 나보다 적어도 15~20살은 더 많아 보여서, 나는 늘 깍듯하게 사모님이라 부르며 극존칭을 해왔다.


나는 점심도 먹을 새도 없이 누수업체에게 연락을 돌렸다. 인터넷상으로 검색했을 때 제일 홈페이지가 세련되고 전문적으로 보이는 곳에 연락했다.

그 업체는 현장에 가서 진단만 해도 진단 비용으로 33만 원 받는다고 했다.

나는 돈을 지불하더라도 제일 잘하는 곳에서 제일 정확하게 검사해주었으면 했기에 바로 입금했다.


업체에서는 약 10분 정도의 검사를 마치고 진단 결과를 보내왔다.

눈으로 대충 보아 탓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누수의 원인으로 넣어두었다. 외부 내부 샷시, 우수관 등등

견적을 물으니 싹 다 고치려면 천만 원, 일부만 하면 350만 원 정도 들 거라고 했다.

외부 샷시의 문제라고 했는데 그럼 비가 올 때마다 문제가 되었어야 했는데 왜 그동안은 아무 일이 없었는지 물으니 그건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33만 원이 날아갔다.


관리소 계장님이 현장에 가서 보니 누수가 아니라 결로 문제라고 했다.

아랫집 세입자가 집의 모든 틈새를 비닐로 막아두고 집 환기를 하나도 하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했다.

비닐을 걷어내니 습기는 말랐다고 했다.


아랫집 세입자는 그 이후로 연락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또 다른 곳이 문제라고 연락을 할까 봐 핸드폰 보는 것도 무섭다.


고난의 파도를 잘 넘어가자고, 스스로를 응원하고 으쌰으쌰 했던 마음이

하루도 안 되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이리도 외부의 자극에 취약하다.

하나하나의 자극에 다 극적으로 반응한다.

죽을 것처럼 좌절하고, 분노하고, 미워한다.


그 극적인 반응 끝에 지쳐 나가떨어져 있던 나는

그냥 우리 모두가 평안하기를 기도한다.

나도 아랫집 세입자도… 그냥 우리 모두가 평안했으면 좋겠다.






keyword
팔로워 14
작가의 이전글자아부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