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공 May 07. 2024

[노동 일기 #5] 작은 것에서부터

자유를 갈망하는 K-직장인의 시선.


손발가락을 접었다 펴도 다 셀 수 없는 것이 회사 생활 스트레스의 원인이랬다.


여러 회사에 다니는 동안 회사가 곧 망한다더라, 팔린다더라 하는 소문을 왕왕 들었다. (가끔은 내가 소문의 근원지이기도…) 업무는 늘 과중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근이 슬프게도 익숙해져 버린 회사도 있었다. 갑작스럽게 구조조정을 발표했던 회사에도 소속된 적이 있다.


굳이 떠올렸지만, 사실 희미해진 기억들이다. 오히려 내 회사 생활 스트레스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곤 했다. (#무자녀 #30대 중반 등을 단서로 달아둔다. 모두가 공감할 순 없을 테니!)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나도 내릴 예정인데) 뒤에서 밀고 나오는 사람에게서 시작됐고, 코딱지만 한 음료 냉장고를 일주일에 겨우 두 번 채워주는 애매한 회사 복지에서 시작됐고, 그 냉장고가 채워지자마자 줄을 서서 종류별로 5개씩 가져가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됐다.


같이 밥을 먹는데 요란하게 쩝쩝대는 상사로부터 시작됐고, 사무실에서 딱딱 소리 내며 손톱을 깎는 아저씨, 미안하지만 개저씨에게서 시작됐다. 회사 화장실에 갔는데 8개나 되는 칸이 만석인 데다 10분이 지나도 인기척이 없을 때도 꽤 강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작은 것에 자주 흔들리는 탓에, 또 작은 것에 단단해지기도 했다.


타이밍 좋게 기다림 없이 엘리베이터를 잡으면 룰루랄라, 월급 받으며 쾌변하는 기분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통유리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서울 전경이 깨끗하면 그날이 평온할 것만 같아 벅찼다.


“글 잘 읽었어.” 하는 지나가는 말에 단단해졌고, 긴 업무 요청 메일 끝에 달린 ‘덕분에’ 한 마디가 마음을 녹이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마시는 맥주 한 잔이, 고민이 깊을 때 함께해 주는 동료들의 공감이 하루를 조금은 평온하게 만들었다.


개복치 같은 나는 오늘도 웃다가 울다가 반복한다. 불끈불끈 화를 내다가 돌아서면 배시시 웃고 있어도 놀라지 마시길.

작가의 이전글 눈물의 시청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