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사 생존기 #2] 황금 앨범소를 낳는 여자

by 아공
KakaoTalk_20260222_225350072.jpg 시원한 맥주 땡기는 날.


한 아티스트가 두 달 뒤 컴백을 한단다. 이쯤이면 어떤 음악을 내놓을 건지, 어떤 마케팅 전략에 맞춰 활동을 할 건지, 어떤 콘텐츠들을 순차적으로 공개할 건지 대략 큰 판이 짜인다. 홍보인의 일은 이 무수히 많은 이해관계자들을 납득시키면서도, 매체와 대중에게 한 번에 꽂힐 홍보 전략을 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략을 응축한 것이 바로 앨범 소개글이다.


사람들은 컴백이라고 하면 빡센 안무 연습이나 화려한 콘셉트 포토, 뮤직비디오 촬영장을 떠올릴 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의 일은 앨범 소개글을 쓰는 일이다. 앨범명이 무엇이고 왜 하필 그 제목인지, 콘셉트 포토에는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타이틀곡은 어떤 이야기인지, 멤버들의 어떤 모습이 부각되는지... 수많은 정보와 그 안의 의도를 담백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 세상은 요지경인데 본질만 추려내는 일. 가끔은 이게 안무보다 더 고난도가 아닐까 싶다. (사실 아님... 춤이 훨씬 어려움...)


솔직히 음악만 냅다 좋으면 되는 게 아닌가. '짐이 명곡을 하사하니, 들어라 중생들이여'라고 써도 스트리밍은 돌아갈 테니.


현실은 내 마음 같지가 않다. 앨범 소개글은 단순한 감상문이 아니다. 신보 활동의 전략이 깔려 있어야 하고, 회사가 밀고 싶은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야 하며, 아티스트가 여러 인터뷰에서 반복해 말하게 될 문장까지 미리 설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스토리텔링이자 방향 설정인 셈이다. 앨범이 세상에 나오기 전 이 아이를 어떻게 명명할지 정하는 작업.


앨범 정보의 일부인 트랙 소개는 훨씬 어렵다. 제작자들이 건네는 설명은 대개 이런 식이다. "전반적으로 멜랑꼴리한 무드고요.", "약간 그런지한 질감에, 레트로하면서 퓨처리스틱한 사운드랄까요.", "기존의 케이팝에서 볼 수 없던 실험적인 느낌이죠."


...그러를 그러세요. ㅠ_ㅠ


제작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되, 대중이 읽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읽히는 문장'으로 번역하는 건 내 몫이다. 기자가 기사에 쓸 수 있는 담백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말이다. '몽환적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 되게 몽환적인 곡을 설명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작업 순서는 생각보다 체계적이다. 먼저 이번 컴백의 홍보 포인트를 정리한다. 그 다음엔 의도를 함축한 키워드를 뽑는다. 케이팝 신에서 빠질 수 없는 '성장', '확장', '변주', '귀환' 같은 단어들이 그 회의에서 자주 나온다.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 회의를 거치며 (간혹 논쟁을 거치며) 정리가 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아티스트가 인터뷰나 예능에서 반복해서 말하게 될 "이번 앨범은 ~~~입니다.", "타이틀곡은 ~~~한 이야기입니다."라는 식의 문장이 완성된다.


이제 진짜 앨범 소개글을 쓸 차례다. 사전에 여러 유관부서와 합의한 홍보 포인트와 키워드를 자연스럽게 녹이고, 과장과 담백함 사이에서 줄을 탄다. 너무 거창하면 공허해 보이고 너무 솔직하면 전략이 없다. 초안이 완성되면 무한 수정 루프다. 단어 하나를 두고 메일이 네 번이나 오간 적도 있다. 문장 순서가 뒤집히기도 하고 때에 따라 통째로 삭제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과정을 왜 굳이 적고 있느냐 묻는다면,


음원 플랫폼에서 노래를 듣다가 '앨범 정보', '곡 정보'를 누르면 나오는 글. 어쩌면 아무도 읽어보지 않을 글. 그 몇 단락에 아티스트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와 회사가 설계한 방향, 홍보팀의 깊은 고민과 며칠 밤이 들어 있다고.


나는 자주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 정보를 읽는다. 이 팀은 이 음악을 어떤 문장으로 정리했을까. 저 문장을 쓰느라 누군가는 몇 번을 깨지며 고쳤겠지. 그 보이지 않는 노동에 괜히 동지애를 느끼면서.


오늘도 한 앨범의 매력을 응축할 단어를 찾는다. 고심해 고른 단어가 공허하게 흩어지지 않고 정말로 그들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러니 다음에 스트리밍을 하다가 시간이 조금 남는다면 앨범 정보도 살펴봐 주시길. 거기에 노래만큼은 아니어도 누군가의 진심과 집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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