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사 생존기 #1] '그들'을 처음 만난 날

by 아공
외근길에 찍은 슈퍼문 사진. 되게 힐링됐음.


그들을 처음 만난 날, 나는 이 업계에 오래 남을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직서를 꺼내기 직전이었다.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그들을 처음 본 건 컴백을 앞두고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들의 홍보를 맡은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였고, 그마저도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앞선 담당자는 갑작스럽게, 말 그대로 도망치듯 퇴사했다. (당시엔 몰랐지만 돌아보면 그녀가 옳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게 맞았다) 엔터사에 입사한 지 석 달 차에 접어들던 나는 회사 구조, 업무, 사람도 여전히 낯선 상태였다. 새벽에도 울리는 메일과 메신저 알람에 정신이 혼미해지던 때였다. 그렇게 얼떨결에 그들의 '임시' 담당자가 됐다.


그들에게 관심이 있었을 리 없었다. 오히려 상황이 얄궂게 느껴져 괜히 미운 감정이 앞섰다. 그룹명조차 낯설었던 터라 급히 기록을 뒤지고 영상을 보며 멤버의 얼굴과 이름부터 외웠다. 겨우 매칭이 되기 시작했을 즈음, 영상 밖 실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막 연습을 마친 뒤였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초췌한 얼굴, 귀찮음을 숨기지 않는 태도, 말하다 말고 테이블에 엎드리기, "미팅 회차 좀 줄이면 안되냐"는 부탁까지.


첫 미팅이라고 괜히 긴장했던 내가 머쓱해질 정도였다. 물론 그들의 태도를 '격의 없이 편안한', '꾸밈없이 솔직한'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을 터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날 이후에도 자컨이며 예능, 음방을 계속 찾아봤다. 화면 속 그들은 완전한 프로였다. 커다란 공연장을 채우는 에너지를 보고 있자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팬들에게 열심히 애정을 표현하는 걸 보고 있자면 괜히 민망해지기도 했지만 그들이 진심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와중에도 리더는 이런 말을 했으니까. "우리가 컴백했다고 해서 그냥 관성적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진짜 재미있게 즐기면서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활동을 하고 싶어요."


어떤 모습이 진짜일까, 같은 의미 없는 고민은 그만두기로 했다. 아마 둘 다일 테지. 이후 다섯 번, 여섯 번쯤 더 만났다. 대본을 숙지하고 돌발 질문에 대비하는 연습을 했다. 디데이가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태도는 눈에 띄게 정돈됐다. 농담이 오갔고 집중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무대 위에서 가장 단단했다. 쇤네가 P.R.O.를 못 알아본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그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무대 위와 회의실에서의 역할이 달랐을 뿐이라는 것을.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애정이 솟구친 건 아니다. 다만 같은 행사에 매달려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료 같은 느낌이랄까.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는 일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사업팀, 운영팀 사이를 오가며 밤낮없이 소통했고, MC와 통역사를 섭외하고 계약서를 썼다. 앨범의 메시지와 그룹 이미지를 고려해 대본을 만들고 프롬프터에 올렸다. 매체에 초청 공문을 보낸 후 숱한 민원을 처리했다. 선물과 케이터링을 챙기는 것도 담당자의 일이었다. 동시에 컴백 프로모션 기사를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처럼 써댔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행사만 끝내고 퇴사해야지. 밤낮없는 엔터업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이건 진짜 오래 할 일 아니라고, 게다가 애초에 나는 이 그룹의 담당자도 아니지 않냐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행사는 꽤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런데 입사하겠다는 사람이 안 온단다. 아마 저주는 거기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이것만 마치고 퇴사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 '이것'이 끝나지 않은 사람의 슬픈 기록.


이 시리즈의 끝이 엔터업 탈출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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