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by 아공
오키나와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


지난 1년간 벌어진 일들.


1.

굴지의 엔터사로 이직했다. 단단히 실수였다는 것을 한 달 만에 깨달았지만 휘몰아치는 일에 몸과 머리를 다 내던진 채 그저 휩쓸리다 보니 어느새 1년이 지나 있었다. 망했다. 업무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얼추 알게 됐고 대규모 행사를 여러 번 진행했다. 이제 이 경력을 살려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회사로 이직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온 힘을 다해 물경력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2.

어쩌다 담당하게 된 한 케이팝 그룹을 애정하고 말았다. 담당 전에는 그룹명도 들어본 적 없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포인트. 아니, 얘들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지? 노래 잘해, 춤은 미쳤고, 멤버 간 사이도 너무 좋고 팬들한테도 진심인데? 보도자료 써야 하는 것도 아닌데 자컨을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허나... 회사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지금은 정 떼기 중이다. 부디 퇴사 후에 응원봉 들고 콘서트장에서 소리치는 나는 없기를. 알아서 할 수 있지? 할미는 간다...


3.

바쁜 일정 쪼개 겨우 다녀온 휴가도 기억에 남는다. 처음 경험한 오키나와는 힐링의 섬이었다. 바다가 있고 쇼핑도 할 수 있고 음식도 맛있는 곳. 너무 귀여운 초록색 자동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릴 때 정말 행복했는데...! 쓰린 속을 달래기에 일본 맥주는 지나치게 맛있었고 하늘을 가득 채운 별은 깜깜한 내 미래를 비춰주는 것 같았다. 리조트 선배드에 누워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다가 까무룩 잠들었던 순간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미치게 바쁜 현실에서 벗어나 드디어 맞은 고요한 순간이라 그랬는지, 사주에 '수'가 부족해 물만 보면 편안해 지는 건지 모르겠지만.


4.

한로로의 '입춘'을 듣다가 눈물 참은 적 84391번. "아슬히 고개 내민 내게 첫 봄인사를 건네줘요. 피울 수 있게 도와줘요. 이 마음 저무는 날까지 푸른 낭만을 선물할게. 초라한 나를 꺾어가요." 뭐가 이렇게 위안이 될까. '아슬히'라는 낯선 단어를 검색하는 과정마저도 즐거웠던, 귀한 노래와의 만남.


5.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띵하고 심장이 쿵쿵쿵. 속이 울렁거려 냅다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만 보고 서 있던 날들. 겨우 자정쯤 잠들어 놓고도 알람을 놓칠까 봐 새벽마다 번쩍번쩍 깨던 시간들. 문서 수정 알람을 실시간으로 받으며 속이 얹혀 결국 내다 버린 음식들. 올해 상반기엔 꼭 퇴사하겠다는 다짐을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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