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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공 Apr 01. 2024

[노동 일기 #2] 직장인 점심시간과 로또의 상관관계

로또=밤 하늘의 별.


누군가에게는 그저 허기를 달랠 시간, 누군가에게는 식사를 넘어선 휴식, 또 누군가에겐 출근의 이유.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그런 것이다.


그날의 점심시간엔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하는 듯했다. 엊그제 찾아왔던 봄이 별안간 돌아간 탓에, 칼바람을 피해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분식집으로 향했다. 막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바로 앞 테이블에 같은 회사의 여러 직책자가 앉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떡볶이 접시에 코를 콕 박고 식사를 빠르게 끝냈다. 루틴이었던 식사 후 산책도 제쳤다.


하릴없이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 분식집의 그들과 다시 마주쳤다. 순간의 재치로 사무실보다 한참 아래층 버튼을 눌렀다. 그곳에 있는 카페에 갈 계획을 0.5초 만에 세운 것이다.


미세먼지 뒤덮인 뿌연 풍경이라도 사무실보단 낫겠지 싶어 카페 소파에 궁둥이를 붙였다. 멍하니 밖을 보던 H님은 별안간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J님은 국내라도 상관없으니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집에 가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우린 한참 남은 점심시간에 사무실과 가장 먼 이야기를 시작했다.


 – H님, J님은 로또에 당첨되면 출근하실 거예요?

H님 – 해야죠. 당첨금이 많지 않으니까…

J님 – 아무래도... 그럼 미국 로또는요? 파워볼은 당첨금이 막 조 단위래요.

 – 그럼 고민할 가치가 있나요? 전 그 돈 있으면 창밖으로도 막 뿌릴 거예요.

H님 – 그래 주시면 제가 비둘기처럼 주워 먹을게요. 구구구, 하면서. 근데 천 원, 만 원 안 돼요. 오만 원권 이상으로 뿌려주세요.

나 - (H님의 제안에 깊은 고민)

H님 - 와! 두 장만 물어도 십만 원이잖아요!

 – 오만 원권… 아… 센데… 오케이. 우리 친하니까. 그렇게 할게요.

H님 – 호우!

J님 – 그래서 그걸 주워 드신다고요? 그렇게까지 하신다고요?

H님 - J님은 안 하신다고요? 안 해요? 진짜?

J님 – …할게요.


어느 지역에 집을 사야 할지 고민했다. 강남은 번잡하니 강북이 나을 것 같았다. 지하철 앱을 켜서 회사와 가까운 곳을 찾다가, 나의 지독한 노예근성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몇 조가 있는데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을 필요가 있나.


H님은 회사를 산다고 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색이 다른 두 개의 셔츠를 두고 고민하듯, 두 개 회사를 저울질하다 결국 두 개 다 사기로 했다. J님은 아직도 어느 지역에 집을 사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이렇게나 진중한 자세라면 살면서 한 번쯤은 응답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의 점심시간은 <운수 좋은 날> 김첨지의 하루처럼 흘러갔다. 어쩐지 모든 상황이 이 터무니없는 상상을 위해 짜인 각본 같았달까. 그리고 김첨지의 하루가 그랬듯, 우리의 이야기는 '일 폭탄'이라는 새드 엔딩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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