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보내기 위한 준비
엄마가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하다는 의사 진단을 받았다.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떠나보낼 준비를 하라고.
의사 아니 지나가는 누군가를 잡고 묻고 싶다. 이별도 준비가 되는지? 준비하면 덜 슬프고 덜 괴로운지?
준비하라는 말을 듣는 지금, 이 순간부터 무너지는 이 슬픔이 준비인 건지?
25년 전, 엄마는 지금 내 나이 51살에 심장 판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뱉어낸 피 찌꺼기로 뇌졸중이 왔다. 평생 세 아이를 키우며 고생하다 이제 편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그때, 엄마는 오른쪽 편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한 번도 마음껏 행복해 보지 못한 우리 엄마가 이제 떠날 수도 있단다. 믿기지도 받아들일 수도 없지만 아니 믿지도 않지만, 의사의 말에 뭘 어떻게 준비하고, 뭘 어떻게 해야 이 사무치는 그리움을 덜 수 있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엄마가 눈감는 그 순간까지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엄마와의 추억을 함께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로.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내 눈과 귀, 가슴은 물론 글로 남겨 이별 전 엄마에게 책으로 선물하기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엄마를 위한 책. 그때까지 엄마가 잘 버텨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엄마는 25년 전 뇌졸중의 원인이 된 심장 판막을 인공으로 바꾼 후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몸은 불편했지만 늘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았고, 늘 따뜻한 손으로 우리 등을 쓰다듬었다.
그런 엄마가 언젠가부터 다리에 심한 부종이 생겼다. 보는 내내 안쓰러웠지만, 병원에 가도 딱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엄마 다리를 보는 게 안쓰러웠던 아빠가 해서는 안 될 결정을 했다. 이웃 사람들이 중국에서 침을 배워 침으로 모든 병을 고치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혹한 것이다. 아빠는 그 사람이면 병원도 못 고치는 엄마의 부은 다리를 가라앉힐 수 있을 거로 믿었다. 그러나 그 판단이 지금의 모든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부은 다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자신한 침쟁이가 정강이에 놓은 침이 세균에 감염되어 버린 것이다. 침을 맞은 다리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시커멓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을 거라는 침쟁이 말에 어리석은 두 노인은 혈종으로 부어오르는 다리를 쳐다만 보며 기다렸다. 그러나 엄마는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사흘이 지난 후에야 병원을 찾았다.
엄마의 다리를 본 정형외과 의사는 경악했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계셨어요? 지금 바로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심장이나 폐까지 염증이 올라가 큰일 납니다.”
하늘이 무너질 소식이었다. 침 한 대 맞았을 뿐인데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니…. 그제야 아빠는 큰딸인 내게 전화해 모든 이야기를 했다. 나는 도대체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믿을 수 없었다.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를 직접 만났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 돌아가셔서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인공 판막 심장은 오래되어 제 기능을 못하는데, 다리까지 저 지경이라…. 그대로 두면 패혈증으로 사망하고, 절단 수술을 하면 마취 주사가 심장에 부담이 되어 수술 전, 수술 중, 수술 후 언제든 사망할 수 있습니다. ”
수술을 안 할 수도, 할 수도 없다는 의사 말에 하늘이 무너졌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미친 사람처럼 울었다. 다른 방법은 없는지, 살 방법은 없는지 묻고 또 물었다.
“지금으로는 방법이 없습니다.”
큰 병원으로 옮겨 뭐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의사 증원 문제로 정부와 대치 중인 전공의의 파업으로 지금은 전원을 받아주는 병원도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넋 놓고 우는 것밖에 없었다.
하루가 지나 의사가 제안했다. 일단 다리 절단은 위험하니 염증을 긁어내는 수술이라도 해서 염증이 더 퍼지지 않고 엄마가 버틸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보자고…. 그게 최선이라고 했다. 그래도 마취 주사를 놓는 것 자체가 위험하니 마음의 준비는 하라고 했다. 마음의 준비? 그게 준비한다고 되는 건지 되묻고 싶었지만, 의사도 답을 모를 게 뻔했다.
다음날 엄마의 수술 준비가 시작되었다. 수술복을 갈아입은 엄마를 꼭 안고 말했다. 마취에서 꼭 깨어나라고, 꿈에서 엄마가 사랑하는 누가 와서 같이 가자고 해도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말하고 또 말했다. 그렇게 엄마를 수술실로 보냈는데 연락이 왔다. 마취과에서 전신마취 주사를 놓는 순간 심장이 견디지 못해 사망한다며 전신마취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고민하던 의사가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첫 번째는 그냥 저 상태로 사망을 기다린다. 아니면 부분 마취로 수술의 고통을 참으면서 수술한다. 그러나 부분 마취를 해도 수술 통증이 견디기 힘들어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결국 어떻게 하든 엄마는 죽는다는 것 같았다.
죽는 거 외에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없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만큼 나에게 말하는 걸 괴로워하는 의사의 표정을 보는 순간 따질 수도 없었다.
결국 엄마는 부분 마취로 고통을 참고 염증을 긁어내는 수술을 하기로 했다.
“내 아 셋 낳을 때도 아얏소리 한번 안 하고 잘 견뎠다. 참을 수 있다.”
이건 생살을 도려내는 수술이라 애 낳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할 수 없었다.
“엄마, 무조건 잘 참고, 수술 잘 받아서 나랑 목욕탕도 가고 손주들 취직하고, 결혼하는 거도 보자. 알겠지?”
“알았다. 꼭 살아올꾸마.”
그렇게 웃으며 엄마는 수술실로 갔다. 수술하는 두 시간은 지옥과 같았다. 엄마의 고통을 같이 느끼며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보호자 대기실에 전화만 울려도 심장이 내려앉았다.
두 시간이 지나 의사가 우리를 찾았다. 의사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여는 시간까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아파하셨지만 잘 견뎠습니다. 다행히 염증이 뼈까지 전이되진 않았지만, 벌려 놓은 살을 덮을 수 없어 계속 위험합니다.”
정강이 부분이 살이 없는 데다 염증 부위가 넓어 살을 덮어 꿰맬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계속 염증 제거 수술을 할 수도 있어 피부를 덮는 일은 최후의 일이 될 거라고 했다. 위험하고 힘든 상태로 끝났지만, 일단 엄마가 수술실에서 살아 나왔다.
애 셋 낳을 때, 아프다 소리 한 번도 안 할 만큼 참을성 강한 여자라고 자랑하더니 역시 우리 엄마였다.
엄마의 수술 침대가 나왔다. 그런데 침대 위에 엄마가 환히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나 아팠는데 잘 참았다.”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참아 낸 엄마의 의지는 삶에 대한 애착인지, 자식에 대한 사랑인지 알 수 없지만,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살아줘서 정말 고마웠다.
사랑해 엄마. 힘든 수술 계속할 수도 있지만, 제발 지금처럼 잘 견뎌줘.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