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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예연 Jun 28. 2022

한국에서 정이 없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개인이 모여 가족이 된다

누군가에게 정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발끈했다. 한국에서 정이 없다는 말은 매우 부정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살면서 더러 그런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가가기 힘들다,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같은 말들이 결국 비슷한 말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평범하지만 조금은 남다른 집에서 자랐다. 독립된 방을 가졌을 때부터 부모님이 노크 없이 방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식사도 각자 원하는 시간에 하고 각자 마무리를 했다. 물론 엄마의 음식이 냉장고 안이나 가스레인지 위에 늘 놓여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말이다. 일을 하는 엄마에게 집안일이 가중되지 않기 위해 내 방에 빨래통을 두었다가 주말에 몰아서 세탁기를 돌렸다. 가족회의를 통해 계획 있게 진행된 일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가끔은 게스트하우스 같은 느낌이 났다.


공부하기를 꽤나 싫어했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공부하라는 잔소리나 성적이 안 좋았을 때 꾸중을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가끔 엄마가 ‘그래도 학생인데 너무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지나가는 말로 하신 적은 있다.) 평균 60점이 안 되는 성적표를 받아와도 수고했다는 말을 들었고, 수학 80점대를 받아 오기라도 하면 아빠는 내게 수학에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참으로 후했다. 때가 되니 알아서 공부를 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머리가 나쁘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때에 부모님은 중학교 3학년인 동생과 함께 지낼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고 1시간 거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셨다. 아마 계약 시기가 안 맞아서였을 거다. 엄마는 2-3일에 한 번씩 들려 먹을거리를 만들어 놓고, 청소를 하고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분명 다른 선택지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의 선택은 그러했다.


고3 시절 부모님의 섬세한 돌봄이 없어서 섭섭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그 나이에 경험하지 못하는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얻었고, 꽤 성실하게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보일러를 틀어놓고 등교를 해서 엄청난 기름 낭비로 엄마의 눈치를 보기도 했고, 바닥에 놓인 작은 티브이를 하염없이 보는 날도 있었지만 말이다.


부모님의 양육방식이 방임으로 보인다면 나의 생각은 다르다. 개인으로 인정받은 경험은 자립심을 키워냈고,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면서 효능감을 경험했다. 나라는 세계가 침범당하지 않는 안전함이 안정감을 만들어 냈다. 의도한 양육방식은 아니었다. 사랑의 표현이 서툴렀을 뿐인 건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 담백한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성장하면서 한 개인으로 인정받는 일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완전한 오해였다. 한국에서 ‘피’와 ‘정’이 진한 가정일수록 나의 경험과 사뭇 다르다. 화기애애한 집안이라 할지라도 그만큼 서운한 감정도 자주 터져 나온다. 서로의 의무를 들먹이며 역할을 다하지 않았음을 질타하고 비난한다. 여기저기 눈물바람도 곧잘 난다. 행복한 가족이라는 프래임 안에서 곪은 마음은 결국 밖에서 치유하며 살아간다.


가족은 소중하다. 하지만 가족이 한 단위가 아닌 개인이 한 단위가 되어야 한다. 모두에게 자기만의 방이 존재해야 한다. 노크를 하고 대답을 듣고 방 안으로 들어가는 단순한 과정을 가족이란 이유로 쉽게 잊곤 한다. 문이 쉽게 안 열린다고 서운해할 필요가 없다. 가족이 모두 둘러앉을 수 있는 거실이 존재하니 말이다.


메이 머스크의 저서 <여자는 계획을 세운다>에서 언급한 가족여행 이야기는 특별한 것 없지만 동시에 참신했다. 40명이나 되는 대가족 여행은 패키지여행 같은 모양새를 하지 않는다. (그런 여행은 생각만 해도 기가 빨린다.) 누군가는 온종일 수영을 하고 누군가는 쇼핑을 하고 누군가는 방 안에서 휴식을 한다. 누군가는 그럴 거면 왜 같이 떠나냐 할지도 모르지만 내 기준에선 매우 이상적인 가족 여행이다. 누군가는 계획을 짜고 누군가는 불평을 하는, 이런 비효율적인 여행은 딱 질색이다. 함께이면서 혼자이기도 한 우리의 인생과도 비슷해서 편안하다.


메이 머스크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과 멀어지고 행복하게 하는 것을 찾으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아무래도 정이 없다란 부정적 표현은 이기주의자를 떠올리게 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행복 추구자 정도가 좋겠다. 이제야 마음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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