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키워드 찾기
자신과 시간을 많이 보내시나요? 사이는 좋은 편인가요?
조금 생소한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영혼은 육체에 잘 붙어 지내는데 말이죠. 나 자신을 제일 사랑하는데 사이는 말할 것도 없이 좋겠죠. 그런데 왜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이리도 어려울까요. 왜 새로운 성격 테스트가 등장할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일까요.
저 역시 하고 싶은 일이 생기기 전엔, 매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쉽게 휘발되는 즐거움으로 시간을 보낸 뒤 허탈함과 함께 잠이 들곤 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은 지금은 일상의 밀도가 달라졌어요. 기대감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고, 뿌듯한 마음으로 잠이 듭니다. 이런 변화를 만들어준 소소한 방법이 있는데요. 바로 나와의 데이트를 기획하는 겁니다.
누군가를 알아가고자 한다면 자주 만나는 수밖에 없어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붙어있지만 평소에는 본능적으로 습관대로 몸이 움직이기에도 바쁘니까 일부러 나와의 시간을 만들어 보는 겁니다. 용무가 있는 외출 말고 가보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들을 계획해보는 거예요. 어디에 가서 무얼 할 건 지, 식사는 어떤 메뉴로 할 건 지 등을 정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질문과 만나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바쁜 일상에선 행복이란 이 뜬구름 같은 것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와 약속을 잡고 이 질문을 붙잡아두어 곰곰이 생각해 보는 거예요. 행복이란 말에 괜스레 무거워진다면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보세요. 내가 관심이 있어서 캡처해 둔 것들이 있을 거예요. 평소 관심이 있었던 원데이 클래스 안내 글귀일 수도 있고, 책의 어느 페이지 일수도 있고,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일 수도 있어요. 그럼 연관되는 것들이 떠올라서 기획에 속도가 붙을 거예요.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인스타그램을 활용하는 것인데요. 평소 인스타그램에서 관심이 가는 책이나 책방, 전시, 숙소 정보 등을 보면 저장을 해두곤 해요. 그저 손가락으로 밀어 흘려보내지 않고 흔적을 남겨두면 위시 리스트가 아주 손쉽게 만들어집니다. 나와의 외출 기획에 도움을 주는 훌륭한 도구가 됩니다. 묘하게 닮아 있는 각각의 콘텐츠를 보면서 나만의 키워도도 하나 둘 만들어집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먼저 나만의 키워드를 찾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넘어 깊이를 만들기 위한 준비과정이 됩니다. 처음부터 뾰족한 것을 만들어 내긴 힘들어요. 커다란 바위를 조금씩 깎아 섬세한 조각을 만들듯 시간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조각을 하다가 계획이 바뀌기도 하고요. 너무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을 들여야 그만큼 정말 나만의 것을 찾을 수 있거든요.
혼자인 채로 세상과 만나는 일은 타인과 함께 하는 일과는 다른 감각을 줍니다. 마치 사진기를 들고 밖을 나서면 평소엔 보이지 않던 어느 구석에 피어있는 꽃이 눈에 들어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하고 그간 내 안에 잊고 있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이 생깁니다. 이야기가 잘 통한다면 처음 보는 사람과도 수다가 가능하다는 것, 혼자 하는 드라이브를 꽤나 좋아한다는 사실, 힐링하는 시간보다 성장하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사실들은 혼자였기에 알게 된 것들 이예요.
누군가와 한 약속이 아니므로 선뜻 몸이 따라주지 않기도 해요. 단지 육체적 귀찮음 때문에 나와의 약속을 취소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혼자일 때에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고, 다른 조건들이 붙지 않기 때문에 온전히 내 영혼이 즐거운 일인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다른 문으로 연결되는 통로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하고 싶은 일들, 가고 싶은 곳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옵니다. 한 가지 일을 했을 뿐인데 다음 것이 따라옵니다. 책 한 권을 읽으면 서너 권의 다른 책이 눈에 들어오는 식이에요. 이렇게 뻗은 곁가지를 따라가다 보면 의외의 것이 나타나 내 마음을 사로잡기도 합니다. 일단은 시작이 중요해요.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든요.
이젠 혼자인 사람들이 꽤 많아졌어요. 하지만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꼭 타인과 함께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예쁘게 차려 입고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모습이나 커피 사진을 열심히 찍고는 각자 스마트폰에 머리를 숙이고 sns에 사진을 올리기 바쁩니다. 말 한마디, 눈길 한번 마주치지 않다가 자리를 뜨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남들이 좋다는 핫플레이스, 모두가 한 번씩 찍고 가는 포토존에서 흔적을 남기는 일은 정말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듭니다.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곰곰이 구상해 보는 일은 궁극적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 됩니다.
“기획은 기획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상을 책임감 있게 살아가려는 모든 이들이 할 수 있는, 사유의 한 형식이다.”
-최장순 <기획자의 습관>
온전히 나만의 관점으로 기획한 여행도 좋고, 혹은 몇 시간 동안의 외출도 좋습니다. 작은 시행착오들이 생길 거예요.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 보였던 것뿐이었다든지, 잘 알지 못해서 아쉬웠다든지 말이에요. 무작정 나가서 발길 닿는 곳에 가는 것도 좋지만, 기획은 나와 대화하는 일이기에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와 데이트를 하기 전, 무엇을 할지 계획해 보는 과정이 참 설레지 않나요? 나와의 외출을 기획한다는 것 역시 설레고 기대되는 시간이 될 거예요.
타인의 경험에 좋아요를 눌렀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내가 직접 경험한 것만이 나의 것이 됩니다. 나와의 시간을 통해서 나를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