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기 때문에 겁나는 게 아닐까요?
알고 나면 별것도 아닌데, 모르니까 꺼리고 멀리하는지도 몰라요.
일본의 어느 공동주택. 이곳에는 함께 살아가는 네 가족이 있다. 아이를 너무나도 원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불임 치료를 받고 있는 이라가시 부부, 아이는 절대 낳지 않겠다고 선언한 동거커플 치히로와 료지.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하고 남편은 돈을 잘 벌어 오며, 아내는 착실히 내조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열망하는 코미야마 가족. 그리고 연인을 연인이라 말하지 못하는 어딘가 비밀스러운 게이커플 와타루와 세사쿠. <이웃집 가족은 푸르게 보인다>는 성격도 가치관도 달라도 너무 다른 네 가족이 ‘공동주택’에서 함께 살아가며 결국엔 편견을 깨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다.
■ 강점 및 특징
1. 이제는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할 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가족’이란 주로 한 집에 모여 살고 결혼이나 부모, 자식, 형제 등의 관계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지칭한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또한 ‘가족’을 결혼한 부부와 그 자녀를 포함하는 집단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오늘날 ‘가족’이 의미하는 형태는 점점 고정된 틀을 벗어나며 다양해지고 있다.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를 갈등하게 만드는 주요 현안이 된 지 오래다. 결혼은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동거커플, 결혼도 동거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비혼족.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삶이 존재하지만 아직 우리는 ‘정상가족’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서로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곤 한다.
“알고 나면 별것도 아닌데, 모르니까 꺼리고 멀리하는 지도 몰라요” 라는 나나의 대사처럼 우리는 서로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고 서로를 혐오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지점에서 <이웃집 가족은 푸르게 보인다>는 우리 사회가 ‘다양한 삶의 방식’이라는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이 되어줄 것이며, 극중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2. 2049, 폭넓은 시청층을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
<이웃집 가족은 푸르게 보인다>는 네 가족, 여덟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다양한 인물의 다양한 고민들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주요 이슈와 상당부분 맞닿아 있다. 이 드라마의 힘은 다양한 시청자들이 공감하며 이입할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데 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 세대, 성별, 신념 등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캐릭터를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주요 이슈에 대해 인물들이 갈등하는 지점도 재미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시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20대 딸과 부모의 갈등, 성소수자에 대한 부모들과 어린 아이들의 의견차, 결혼과 아이에 대한 동거커플과 유자녀 부부의 갈등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갈등이 던지는 이슈들은 초반에 뜨거운 감자가 될 수도 있지만, 점점 인물들이 갈등을 극복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모습을 따라가며 시청자들 또한 사고와 이해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 아쉬운 점
1. 네 가족의 이야기를 같은 비중으로 심도 있게 다룰 것
원작에서는 이라가시 부부의 불임 치료 과정을 중심 이야기로 다룬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장점인 ‘다양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네 가족의 이야기를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시의성을 고려했을 때,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치히로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서 보여지는 삶을 중시하는 미유키의 이야기가 흥미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해당 인물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한국적인 디테일을 살려 각색해보면 어떨까.
2. 인물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타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에서 리메이크를 하게 된다면 치히로와 미유키의 에피소드가 화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 시청자들이 이 두 캐릭터에게 더 빠져들 수 있도록 두 인물을 행동하게 하는 동기를 보다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미유키의 경우 전업주부이자 정상가족이데올로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인물이다. 그녀는 SNS를 통해 보여지는 모습에 집중하며, 공동주거 공간에서 갈등을 촉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가령 오지랖을 부려 치히로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든가, 나나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식이다. 하지만 미유키라는 캐릭터를 일방적인 ‘비호감’ 캐릭터로 만들어버리기 보다는, 그녀가 왜 SNS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또는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로서의 고충은 어떠한지 등의 이유를 부여해줌으로써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치히로는 아이를 낳지 않는 조건으로 결혼을 결심하며, 누구보다도 자기주장을 당당히 할 줄 아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너무 쉽게 자신의 아이를 데려온 애인을 받아주며, 비출산을 다짐한 이유 또한 자신이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것으로 그려진다. 치히로 캐릭터가 비출산을 결심한 한국 여성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그 결심의 이유가 보다 구체적이고 본질을 꿰뚫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치히로의 신념이 쉽게 흔들리지 않고, 또 그 신념이 생긴 이유가 인물의 결핍이나 결함이 아닌 주체적인 결정(긍정적인 뉘앙스)에 의한 것일 때 치히로는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