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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치 Feb 13. 2022

저는 성에 삽니다.

경계와 배타



 내가 사는 빌라는 OO캐슬이다. 준공연차가 3년도 안된 5층짜리 건물이 4개, 여기에 여분의 주차공간과 입주민들이 가꾸는 텃밭까지 포함해 아담한 단지를 이루고 있다.


 굴러다니는 쓰레기 하나 없이 항상 깨끗한 이 곳, OO캐슬에 살면서 받은 인상은 '삭막하다'였다. 부실한 방음덕분에 '지금 사람이 있구나' 하고 감지할 뿐, 6개월 넘게 사는동안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강아지 짖는 소리에 항의 메시지를 받은 것 외에는 교류를 해본 일도 없어서, 다분히 개인주의자들이 모여사는 곳이구나 짐작할 따름이다.

롯데캐슬. 슬로건이 '삶을 완성하는 품격'이다.

 


 처음엔 이 이름이 낯간지러웠다. 다 끌어모아도 한눈에 다 들어오는 사이즈인데, 무려 '캐슬'이라니. 소형견중에서도 작은 축에드는 치와와에게 '백두'나 '태백' 같은 이름을 붙인 것처럼 영 안어울려 보였다. 더군다나 캐슬, 하면 떠오르는 유명 대단지 아파트가 있는 마당에, 이거야말로 언감생심 아닌가.


 그럼에도 이게 마냥 우스울 일만은 아닌게, 이 지역 사람들에게 이곳이 꽤나 선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도시적 감각의 인/익스테리어에다 여유로운 주차공간, 단지 내 환경 및 시스템 관리감독에 매달 관리비 정산보고까지 어지간한 대단지 아파트와 견주어도 나무랄데가 없다. 그러니 누가 어디 사냐고 물었을 때 'OO캐슬이요'하고 답하는 것이 꽤나 우쭐해지는 일인 줄을 나도 조금은 실감하게 되었다.






 며칠전, 빌라 단톡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임대인 및 임차인을 포함해 총 60명이 들어있는 이 카톡방은 평소에도 비교적 소통이 활발한-대부분 주거 컨디션에 관련한 문제가 생겼을 때- 편이다.


 글의 요지는 출입로에 담을 둘러 이웃과 공간을 분리하자는 거였다. 누군가 올린 '맞아요 좋은 생각이에요, 찬성합니다'를 뒤쫓아 '저도 찬성합니다'가 우르르 따라붙었다.


 문제는 빌라와 이웃한 건설자재집이었다. 도로에 면해있는 이 상점이 목재며 벽돌, 시멘트 등을 건물 뒷편의 창고와 주변부지에 쌓아두는데, 하필 그 위치가 우리 빌라 부지와 딱 붙어있어 마치 단지 전체가 공사장 처럼 보이는 것이다. 문득, 처음 방을 보러왔을 당시 한쪽에 널린 자재들을 보고  '여기는 아직 공사중인건가?'하고 내심 궁금해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몇달 전을 회상하는 사이 이야기는 점점 커지고 커져 '공사장 옆에 사는 것 같다', '쓰레기가 날린다', '먼지가 많다', '민원을 넣자', '배상받자' 등등 모든 원인의 제공자인 이웃에 대한 불만으로 덩치를 불렸다.


 담을 두른다면 확실히 구분도 되고, 먼지도 덜하겠지만 초보운전자도 부담없이 차를 돌리고 뺄 수 있을 만큼 넓은 지금의 주차공간은 대폭 좁아질거다. 건물과 거리를 두어 배치한 음식물쓰레기통이나 종량제봉투 수거함도 동선에 좀 더 가까워질테니, 여름이면 열어놓은 창으로 냄새가 들어올테고. 건재집도 피해가 클테지. 트럭이 오갈 여유공간이 없어지니, 상하차를 하려면 큰길에서 내려 창고까지 따로 운반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뿐인 진입로가 사람과 차, 지게차로 병목이 될 수도 있다.

 아니나다를까, 누군가 '담 올리는 시점부터 건재집이랑은 전쟁입니다' 라고 점쳐 말했다.


 전쟁. 그 단순하고도 명료한 두글자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한건지는 알수 없지만, 그 뒤로 의견은 더이상 올라오지 않았고, 동장이 추후 담장의 견적을 받아 공유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일단락했다. 캐슬의 주민들은 곧 이웃과 전쟁을 시작할까? 올 여름이면 담을 볼 수 있게될까? 그것으로 우리 단지가 방어벽을 갖추고 더욱 '성(castle)'의 모습을 갖추게 될는지 모르겠다.


'깨끗하고 견고하고 안전한 집. 우리 OO캐슬은 입주자들에게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죠. 어때요? 당신도 살고싶지 않습니까?'


외출 후 돌아오던 길, 건물 입면에 이탤릭체로 밝게 빛나는 그 이름이 꼭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메인이미지 출처

: https://en.m.wikipedia.org/wiki/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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