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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치 Mar 11. 2022

세상이 나만 저격하는 것 같아서 (1)

니가 아무리 그래봐야 난 안 져.


 


 살다보면 더럽고 치사해서, 도저히 참고 넘어가지 못할만큼 분노할 때가 있다. 보통 이런 내장이 뒤틀릴 것 같은 분노는 갑을 관계에서 겪는 것 같다. 평등한 관계라면 이렇게까지 악화되기 전에 화를 내면 그만이니까. 내가 약자인 상황에서야 아무리 억울하고 불공평해도 찍소리 못하는거다.


 20대까지만해도 그런걸 잘 못참았다. 평소 고만고만하게 잘 지내다가도 이따금씩 고난이 닥치면 불행이 나만 따라다니는 것 같은 좌절감과 패배감에 젖었다. 다들 잘나가는데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난 왜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


 밝게 빛나는 세상에서 나 혼자만 칙칙한 삶을 사는 것 같아서 한없이 쪼그라들고는 했다. 그리고 야멸찬 세상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후의 반항으로 퇴사를 선택했다.





 퇴사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대면하고싶지 않은 의문이 솔솔 피어났다. 남들은 회사 잘만 다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적응을 못하는 걸까. 역시 나에게 문제가 있나? 내가 이렇게 이직을 자주 하는걸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역시 내 성격이 모나서 그런걸까. 내게 문제가 있는거겠지.



 

https://m.blog.naver.com/0166646666/222205156832



 입사면접을 보게되면 꼭 그놈의 근속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왔다. 주홍글자 같은거였다. 잦은 이직과 퇴사사유에 대한 질문은 나를 당황케 했다. 어떤 이유를 들어 말하더라도 그것이 왠지 내 탓, 내 부족함의 결과인 것 같았다.


 아무리 예쁜 포장지를 씌워 말해도 그 초라한 속을 다 들키는 것만 같아서 수치스럽고 창피했다. 역시 내가 좀 더 참았어야 했나. 2년은 다녔어야 했는데. 내가 참을성 없고 사회성 떨어진다고 생각하겠지?


 면접관들이 두려웠다. 강한 척, 도도한 척 하려고 했지만 글쎄, 아마 그들은 나의 이런 감정상태까지 다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2020년 7월부터 약 1년 6개월 근무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오래 끓은 복지문제였다.


 입사 당시, 나는 최저임금에 계약했는데, 그때는 일의 양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이라는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하게될 일의 경중이나 복지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고, 그저 내 가치를 알아줄 회사가 절실히 필요했다. 삼일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지원했고, 면접에서는 노예처럼 굴려달라고 나를 낮췄다.


 그러니, 내 명함에 '팀장'의 직급이 적힌 것은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다. 기획부터 결과보고까지 하나의 사업을 오롯이 담당해 처리하고, 상사의 비서역할을 겸하며, 모두가 자연스레 내게 총무 일까지 떠넘겨도 별 불만을 갖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능력을 펼치면서 사는것이 행복했다. 일에 치여 퇴근 무렵이 되면 말할 기운도 없이 지쳐도, 그만큼의 일을 맡고 있다는게 뿌듯했다.


 적어도, 애초에 내가 사무보조로 채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건 오직 내게만 적용된 불운이었다. 나와 같은 '팀장'들은 알고보니 나보다 훨씬 많은 월급과 명절보너스, 휴가보너스까지 받고 있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인건비는 사무보조 채용 수준으로 할당되어있는데, 실제 필요한 직무능력은 팀장급이니 이 월급에라도 일할만한 사람이 있다면 뽑아서 쓰자는 생각으로 공고를 냈던 모양이다. 거기에 마침 내가 지원한거다.


 뭐, 급여수준도 업무내용도 알고 지원했으니 속았다 할 만한건 없다. 단지 배알이 뒤틀릴 뿐이지. 서운함은 있었지만 잊고 일에 매진했다. 열심히, 사명감으로 일했다.


 하늘이 -그보다는 윗선에서- 이런 내 열심을 알아줬는지 21년도 재계약을 앞두고는 팀장급 처우로 개선해주겠다는 희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마땅히 받아야할걸 이제야 받게 된 것에 대해서,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들어왔다며 무척 감사해 했고 담당자들은 미안해하면서도 기뻐해주었다. 가족에게 이 일을 말했다.


 그간의 노고를 인정받은 기분, 그리고 이제 좀 더 기 펼 수 있게되었다는 안도감 같은걸 느꼈던 것 같다. 좀 더 풍족해지면 할 수 있을 많은 것들을 생각하며 들뜨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https://m.blog.naver.com/dkomdol2/221501745414

 21년도 한 해동안 통장에 찍히는 액수가 한번도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만을 말한적은 없었다. 오직 내게만 또다시 적용된 이 불운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는 순간, 같은 직급으로 적게 일하고도 많이 받는 이들은 불편함을 느끼게 될테고, 그것으로 나는 불쌍한 동료에서 미운오리새끼가 될 것이 뻔했다.


 가급적이면 침묵할 것, 그것이야말로 안정과 평화를 바라는 모두가 내게 암묵적으로 요구한 처세술임을 모르지 않았다.


 21 12월이 되면서 완전히  들어갔던 나의 처우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다. 동료들은  됐으면 좋겠다고 응원의 말을 건넸다. "맞아요. 정말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면서 맑게 응수했다. 과하게 비관적인 태도도, 반대로 너무 들뜬 태도도 적합하지 않다. 기대의 결과로 실망한 경험이 있다면 이후로는 쉽게 기대를 품지 않게 되는 법이다.  한번 우스워지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그리고  일은  다시 일어났다.








+ 많이 흐린 날이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라이킷은 용치에게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줍니다. 그것은 마치 야식으로 먹는 치킨이자 우울할때 먹는 떡볶이 같은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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