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치 Mar 15. 2022

세상이 나만 저격하는 것 같아서(2)

니가 아무리 그래봐야 난 안져!




"일단은, 기존대로 계약하고 좀 기다려보다가.."




 어물거리는 인사담당자의 말을 담담하게 들었다.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역시, 너무 들뜨지 않은 덕분에 조금이나마 덜 우스워질 수 있었다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일을 앞두고 계약은 해야하는데, 나를 또 엿먹이는 말을 하자니 그도 어지간히 곤란했을거다. 나참, 지금 누구 사정을 봐주고 있는거야.


 퇴사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좋아했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봐야지 마음먹었던 일이다. 올해는 더 잘해봐야지, 나름의 각오도 굳히고 있었는데. 참 안 따라주는구나.


 씁쓸한 미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면서, 딴청하느라 애쓰는 동료직원들을 스쳤다. 내가, 뭔가 부족하고 못나서 이런일이 벌어지는걸까.




 

 어쩌면 내가 원인일지 모른다. 지난 1년간 나를 기만하는 행동에 맞서지 않고 침묵한 것, 가만히 있으면서 착한 회사가 알아서 밥을 떠먹여주길 기다린 것이 실수다.


 진작에 내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이제 나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침묵, 아니면 퇴사. 어느쪽을 선택해야하나. 무엇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각자 뭔가를 행함에 있어 삶의 가치관과 기준이 다르겠지만, 현재의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다. 이혼을 해내면서 앞으로 그 어떤 경우에도 나의 자존을 해치는 상황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불운으로 나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나는 부당한 처우에 맞서지 못하는 바보가 아니다. 나는 귀한 사람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뿐더러 이제는 만회해야 하는 타이밍이다.


 다음날,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내 결정을 두고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해할만한 상황이다. 억울하고 화날만한 상황이니 붙잡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업무 누수가 치명적인 상황에 응원할 마음도 들지 않는 것이다.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누구의 의견도 만류도 듣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것, 그리고 위축되지 않는 것. 내가 결정권을 갖고 있는가, 그걸 스스로 행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자존감과 직결되기에 아주 중요하다.


그만두고나서 당장 갈 데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그리 갑갑하지 않았다. 나는 능력이 있으니, 여기가 아니라도 기본급에 훨씬 더 편한 자리는 널렸다. 그러니 내 유일한 동아줄인 것처럼 으스대지마. 누구도 내게 갑질할 수 없다.





 12월 31일자로 퇴사처리가 되었다. 분명히 놀라자빠질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한주 가량을 쉰 후에 1월 둘째주에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오래 희망했던 한라산 설산을 올라, 백록담을 보고싶었다. 할수 있을지 없을지 같은건 생각 안했다. 마음먹었으니 이번에 기필코 하고야 만다.

 딱 이생각만 했다.


03.17. 관음사코스


 정해둔 목표를 달성해보면 사람이 크게 달라진다. 혹자는 그걸 '성장'이라고 부르지.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이루는 경험은 큰 자신감을 키워낸다. 그건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는다. 남의 관심이나 칭찬에서 오는게 아니라 그 뿌리가 나한테 있으니 쉽게 손상되지 않는거다.


 생전 처음 올라본 설산, 7시간을 걸려 한라산 왕복에 성공했다. 이건 나에게 정말 큰 소득이었다. 그 장엄한 풍경도, 구름위에 선 기분도. 말끔하게 보였던 백록담도. 다 나를 축복하고 응원하는 것만 같았다.



 아. 세상에 못할 게 없구나.
나는 정말 다 할수 있구나.
나는 이렇게나 당차고,
한다면 하는 멋진 사람이구나.


 

 나는 이제 필요하다면 누구와도 싸우고, 힘든일을 견뎌낼만큼의 체력과 자존감이 있다. 내 마음밭에는 아름드리 싱그러운 나무가 자란다. 이 나무가 가지를 뻗고 계속 잎을 피워내는 한, 나는 주눅들지 않는다.





 설연휴에 이어 2월 한달을 에니어그램 공부와 글쓰기, 운동을 병행하며 보냈다. 어쩌면 회사에 다닐때보다 더 바쁘게 지냈던 것 같다. 게으름을 두려워하고, 페이스를 잃어버릴까 불안한 심리가 나를 더 챔질하는지도 모르고.


 그렇3월이 되었다. 이제 슬슬 취직을 해볼까 싶던 차에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심지어 팀장도 아니고 과장급 인사가 개인번호로 연락을 해오니 그게  재미도 있고 꼬숩더라(?).


 혹시 아직 남해에 있냐고 묻기에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평소 깐깐하고 굽힐줄 모르는 분이 전화 너머에서 어설프게 따라웃고 있을걸 생각하니 어색하기도 하고, 뭔가 승리감도 들었다. 아버지뻘 되는분한테 이런 마음 갖는게 죄스럽기도 하고. 뭐 어때. 지금은 내가 갑인데.



"이제 우리가 공고를 다시 낼껀데,

지원해주실 수 있나요?"




 기다렸던 말이다. 또한 내 가치를 믿었기에 반드시 듣게 되리라 자신했던 말이다. 바로 어제인 3월 14일. 나는 무탈히 면접을 거쳤고 원하는 조건을 모두 계약서에 넣어 입사했다. 고작 이틀차인 오늘도 일이 너무 바빠 잠시 숨 돌릴틈도 없지만, 좋아하는 일을 다시 하게 되어서 정말 행복하고 신난다.


너무 지저분하게 지웠네;;;;



 올해의 시작이 좋다. 내가 이루고 다져나갈 올해가 무척 기대된다. 세상이 내게 그리 친절하지만은 않지만, 뭐 상관없다. 무슨일이 생기든 난 좌절하지 않는다. 나는 강한 사람이니까.

 세상아, 니가 아무리 그래봐야 나는 절대 안 져!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그렇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오늘도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모두들 힘내세요!

+라이킷은 용치의 마음밭을 더욱 기름지게 한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이 나만 저격하는 것 같아서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