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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Aug 30. 2024

글자는 사랑을 싣고

나에게 와서 당신에게로 간다


얼마 전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서 나태주 시인의 인터뷰를 보았다. 인물 중심의 인터뷰와 토크쇼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가 그리워서다. 그의 인터뷰에서는 그가 지어낸 시만큼이나 진한 향기가 났다. 그의 시 중 하나가 내 마음에 불어와 심겼다.




혼자서/나태주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꽃보다
두 셋이서 피어 있는 꽃이
도란도란 더 의초로울 때  있다

두 셋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
오직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운 때 있다

너 오늘 혼자 외롭게
꽃으로 서 있음을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감히 위로할 수 없는, 인생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친구에게 이 시를 전달해 주었다. 내가 쓴 시도 아닌데 따뜻한 마음에 고맙다는 친구의 인사를 받았다. 역시 좋은 건 나눌수록 좋은 법이다. 그리고 시는 참 좋은 위로의 수단이다.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생의 파고는 모두에게 같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보려는 노력의 모양 또한 같지 않다. 같지는 않더라도 끌어주고 지지하는 마음이라도 있다면 좋을 것이다.


어차피 모든 고통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진정으로 공감할 수 없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통을 잠시라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다. 그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될 수도 있고, 우연히 마주쳤을 때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눈빛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때로는 모르는 척해주는 것이 깊은 배려일 때가 있다.


반대로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가 그에게는 불필요한 짐이 될 수도 있다. 이미 그가 지고 있는 짐은 너무도 무겁다. 그러므로 말을 건네기 전에 우리는 생각해봐야만 한다. 그 짐을 함께 지기는커녕 말로 짐을 얹는 것은 아닌지.


'이 안으로 먼저 들어와. 그럼 우리가 너의 짐을 나눠 볼 생각 좀 해볼게.'


교회에 나와, 우리 모임에 나와 봐. 좋은 뜻으로 하는 권면일지라도 상대방이 먼저 무언가 내려놓길 요구하는 방식은 아니었는지.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해도 듣는 사람에게 그렇게 들릴 여지는 없었는지. 시간적 여유를 갖고 교제하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돈 벌 시간도 부족해 쉴 틈 없이 일하는 친구의 생활은 배려받을 수 없는 것인지. 그럴 수밖에 없는 친구의 사정을 진정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는 물론 예수님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내려줄 수 없고 쉬게 할 수 없다.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이웃의 짐이 내 짐보다 가벼워 보인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며, 또는 무거워 보이니 그 짐을 가볍게 해 준다는 명목으로 가볍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가볍게 내려앉은 나비의 날갯짓에 겨우 버티고 있던 두 다리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얻는 위로가 있다. 이것은 짐을 대신 져준다는 신에게서 얻는 위로와는 다르며, 심지어 의 위로조차도 인생을 통해 얻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로 증명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요일 4:7),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셨고(요 14:15),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 22:39).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의 친구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해 이 글을 쓰면서도, 내게 사랑을 요구하는 남편에게 최선으로 응답할 수 없는 바닥난 마음을 본다. 사랑을 쓰며 사랑을 지운다. 사랑을 구하며 사랑을 버린다. 겨우 담은 사랑을 옮길 힘이 없다. 옮기다가도 깨진 그릇 사이로 사랑이 질질 새어나간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힘이 있다. 사랑은 살아있다. 깨진 그릇 사이로 새어나간 은 의도치 않은 곳에 흐른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된다. 새버린 탓에 얼마 남지 않았던 물은 메마른 항아리를 적신다. 그 역시 깨진 항아리일지라도 상관없다. 차오를 수 없어 오랫동안 메말랐던 벽 사이로 물이 흐르고 물방울이 튄다. 메마른 마음 한 켠에 사랑이 스며든다. 그러므로 사랑은 결코 헛되지 않다. 버린 사랑이라 할지라도. 물방울 만한 사랑일지라도.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그저 받았던 사랑을 세어보며 기리는 일, 내 가족을 위한 헌신과 희생, 친구에게 내어주는 품, 이웃 주민에게 건네는 인사, 직장 동료에게 표현하는 감사 등.. 모두가 나를 둘러싼 물리적 세계다. 너머에 있는 누군가에게도 나는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커피값을 아껴서 전달하는 기부금만으로는 어쩐지 충분치가 않다. 기부금이 커지면 충분해질까.


마음으로 써낸 글에 조용히 누르는 공감, 몇 줄로 남겨보는 응원의 댓글, 읽는 사람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쓰는 글. 이것으로도 사랑을 전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의 삶을 받아들이고 쓰는 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특별한 시선으로 해석하는 글, 미숙한 아이들의 순수함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글, 고통이 가득한 인생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글.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사랑은 글을 타고 전해진다.



*사진 출처: Pixabay, Berkan Küçükgü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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