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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Aug 23. 2024

30년 전 무대를 보고 통곡한 이유

수도꼭지가 터져버렸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가수 김민우라는 사람이 나왔다. 지금은 가수라는 직업을 내려놓고 자동차 영업사원 일을 하고 있는데, 과거에 어찌나 인기가 많았던지 MC들의 소개 멘트가 예사롭지 않았다. 한 MC가 그를 소개하며 그의 대표곡 한 소절을 불러주었는데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였다.


그대는 나의 온몸으로 부딪혀 느끼는 사랑일 뿐야


아, 이 노래를 불렀던 사람이구나. 지금을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에 먼저 그를 담았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호기심에 그의 옛날 무대를 찾아보았다. 내가 태어난 해에 가까운 시절의 무대였다. 지금은 안검하수 때문에 쌍꺼풀 수술을 한 것인지, 예전 쌍꺼풀이 없는 얼굴을 보니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군대 가기 전 그는 너무도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빠 양복 같은 무대의상을 걸치고 열심히 노래하던 그의 얼굴을 한참 보다가, 갑자기 이유 모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놓고 혼자서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시원하게 감정에 충실해보자. 수도꼭지를 완전히 개방해 버렸다.


"어헝엉엉."


그렇게 펑펑 운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울면서도 조금 어이가 없어서, 아무도 없지만 이 모습을 지켜보고 계실 하나님께 말을 걸었다.


"하나님, 저 왜 울어요...?"

"가 왜 우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사람 같았으면 이런 반응이었겠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셨을 것이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니까. 그렇게 펑펑 울다가 내 입에서 마침내 본심이 나왔다.


"하나님, 시간이 너무 빨라요. 두려워요..."


그렇다. 나는 30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을 그의 무대에서 느껴버린 것이다. 그 차이에서 오는 생경함이 두려움과 무력감으로 내게 다가온 것이다. 세상에 갓 태어났을 그때와 어느새 커버린 지금. 그 사이의 간격, 그리고 앞으로 30년 뒤의 나의 삶을 생각한 것이다. 시간은 너무 빠르고... 나는 그 시간을 붙잡을 수 없는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꾸준히, 성실히라는 단어조차도 힘을 잃은 채 시간의 기세는 나를 휘젓고 있었다. 어쩌면 육아휴직이 끝나가고 있어서 더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후회하지 않을 만한 휴직 기간이었다고 이미 마음속으로는 평가를 끝냈지만, 포기하고 내려놓은 부분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했다. 내가 살아온 삼십 년이 넘는 시간 앞에서도 나는 이토록 무력한데, 태초부터 시작된 역사 앞에서 나라는 존재 자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의 말처럼 태어난 김에 잘 살아보려는 의지는 내 안에 충만하지만, 나는 과연 내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시대의 요구에 발맞춰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쫓기듯 살고 싶지는 않았다. 크로노스의 시간에 갇혀있는 나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내 인생의 시간표도 하나님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눈물을 닦고 일어날 수 있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다가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혀 느끼는 수밖에 없다. 부딪혀 다치거나,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산산조각 나버린대도, 내게 주어진 삶을 그 자체로 끌어안고 사랑하는 수밖에.


그대는 나의 온몸으로 부딪혀 느끼는 사랑일 뿐야


절절한 노래 가사가 내게 파도처럼 다가와 마음을 흠뻑 적셔주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인생은 사랑이다. 사랑일 뿐이다.


*사진 출처: Pixabay,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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