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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25. 2024

여수 애양원에 가는 길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바람이 분다. 커다란 나뭇가지가 휘청이고 나뭇잎들이 나부낀다. 하나님의 손길이 되어 내 머리를 쓰다듬던, 여수 어느 산자락의 키 작은 나무가 생각났다.




그날은 마음에 몹시도 심한 바람이 불었다. 도망치듯 떠난 곳은 여수의 애양원이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을 읽고 손양원 목사님의 흔적을 찾아간 것이다. 손양원 목사님은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은 사람이다. 대학생이던 그때도 그랬고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다.


여수역에 도착해서 등이 굽은 할머님을 만났다. 할머니는 본인을 마중 나오러 오기로 한 사람이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며 전화를 대신 걸어달라 부탁하셨다. 어려운 일도 아니니 청을 들어드렸다. 남자분께서 전화를 받으시곤 당장 모시러 오기로 했다. 할머님이 오시는 날짜를 잘못 알고 계셨던 것이다.


전화를 건 남자분은 목사님이라고 했다. 목사님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목적지를 공유했다. 일흔이 넘으신 할머님은 목사님이 운영하는 기도원에 방문한 후 다음 날 애양원에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나는 당일치기로 애양원만 다녀갈 예정이었으나, 할머님과 목사님의 권유로 잠시 기도원에 들러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처음 만나는 분들이었지만 식사를 통해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다. 세 분이 묻는 말들에 차례로 대답하다 보니 당시 내가 섬기고 있던 교회와 특수사역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영혼을 사랑하는 세 분은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셨고, 할머님은 곧 개최될 소년원 성경학교에도 참석하겠노라 말씀하셨다. 일흔이 넘은, 등이 굽은 할머님께서.


밥을 먹고 나니 목사님께서 기도원에 한 번 들어가 보겠느냐고 물었다. 기도원에 왔으니 왠지 기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조용히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달아난 곳이 겨우 기도원이라니. 여기서도 만나네요 하나님. 심드렁하게 시작한 기도는 눈물과 통곡이 되어 터져 나왔다.


뒤에서 함께 해 주시던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등이 굽은 황 권사님은 조용히 휴지를 건네주셨다. 그리고 혹시 오늘 밤 기도회에 참석하고 내일 애양원을 함께 방문하겠느냐 물었다. 하룻밤 정도는 재워줄 수 있노라며. 나는 이 분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곳은 여수의 한 시골 마을이었지만, 쓰레기가 가득한 우리 집에서 자는 것보다는 불편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는 어떤 악기도 없이 우리의 목소리만으로 찬송과 예배를 드렸다. 기도회까지 마치고 나서야 평안하게 잠이 들었다. 그날 기도원에서 무슨 기도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답답하고 힘든 마음을 토로했던 것 같다. 하나님을 만나고 다른 세계로 들어왔는데, 그 세계 안에서도 나는 자유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지만 그 사랑이 내 삶에 드러나지 않았다. 내 말을 믿고 사랑을 찾아온 자들에게 퍼서 내어 줄 사랑이 없었다. 한없이 부어졌으나 빠르게 메말랐다. 밑 빠진 독처럼 나는 그 물길의 흔적만 보일 뿐이었다.


다음 날 새벽에 목사님은 산 기도를 가신다며 동행하겠느냐 물었다. 기도하기 위해 세워둔 작은 움막을 보수하는 일에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천장이 낮은 움막 속에서, 키가 큰 나는 어렵지 않게 목사님을 도울 수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을 오르는 길,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탓에 자꾸만 머리에 닿던 나뭇가지의 나뭇잎들.


"조이야, 잘 왔다. 여기까지 잘 왔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손길로 느껴졌다. 그때를 떠올리는 지금도 그렇다. 높지 않은 동산이었지만 나름 정상에 도착해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속으로 불렀던 찬양이 생각난다.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애양원에 방문했고, 할머님은 이후에 약속대로 성경학교에 참여하셨다. 그리고 우리 집에도 오셨다. 쓰레기가 가득한 우리 집에서, 불편한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심방 차원에서 방문해 주셨던 그 사랑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날 힘 있게 돋던 아침 햇살도 잊을 수 없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왔을까. 매일 그 자리에 섰는 산과, 힘 있게 돋는 태양과, 때마다 돋아나는 순과 열매를 맺는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때로 무력하고 무용하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 속에서, 자연의 섭리 앞에서 문득 미물에 불과하다고 느껴질지라도 나는, 우리는 분명 소중한 존재다. 그때의 만남처럼, 이후의 수많은 만남들도 주관해 주실 것을 믿는다.


*사진 출처: Pixabay, Роман Раскошны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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