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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15. 2024

취향의 몰락

취향: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듯 삶의 방식도 제각각, 물건도 가지각색이다. 이처럼 다양성이 스펙트럼처럼 공존하는 세상에서 나는 무색무취의 인간으로 살아왔다. 옷 입는 것마저 평범한 스타일을 선호했으니 그저 무난한 것이 취향인가.


왜 그런가 했더니 내겐 취향을 알아갈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나마 한껏 취향을 뽐냈던 건 초등학생 때 팬시점에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용품을 구매할 때였다. 문구용품과 차원이 다른 팬시용품을 한참 구경하며 신세계를 맛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곳은 애초에 돈이 별로 없는 학생들을 타깃으로 한 공간이었기에 오래 머무르며 구경할 수 있었다. 팬시용품의 가격은 어쩌다 사고 싶은 것이 생기면 돈을 모아 구매할 수 있는 수준었다. 그러나 특정 캐릭터나 유행 아이템에 민감했던 학창 시절에 나의 오롯한 취향을 발견하기는 무리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취향이라는 것은 구경으로만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구경을 넘어서 소유하고 사용해 보고 경험해 봐야만 진짜로 알 수 있는 것이 취향이다. 나 너 좋아하네, 나 이거 좋아했네.라는 식의 고백들도 직접 경험하기까지는 미처 몰랐다는 표현이 아닐까.


물건에 대한 취향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취향이란 본질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을 의미한다. 단순히 이런 디자인, 런 색상의 물건을 고를 때만 발휘되는 게 아닌 것이다.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어떤 방향으로 내 삶을 추구할지 고민하는 데 있어서 마음을 살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고민들은 너무나 막연하지만, 이때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나는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살피는 일이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즉 취향을 따라 선택한 횟수가 많을수록 이정표가 많아지고, 결국 내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 걸어갈 수 있을 .


그래서일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취향이 간절해진다. 취향이 없는 것만큼 불쌍한 인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색무취의 인간은 어디에도 있지 못하고 어디서나 증발해 버린다. 몰취향의 인간으로 살아온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추구하고 종국에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조차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나님을 만난 후 큰 틀에서 인간의 존재 이유, 인생의 목적은 깨달았지만 '나'라는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세세한 선택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내게 그 선택들은 너무나 어려웠다. 정답은 없었고 어려울 것도 없었지만 지나고 보니 이해도 된다. 마치 손병호게임처럼 접고, 접고, 접었더니 남는 건 내 의지와 상관없는 결과다. 그 안에서 선택하라는 건 좀 가혹하지 않나. 어릴 적 형성된 나의 세계는 너무나 좁아서, 선택권이 생긴 어른이 되어도 좀체 넓히기가 어렵다.


성장할수록 스스로 선택지를 하나씩 늘려가는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인생도 못 되었다. 아버지의 핀잔처럼 키만 멀대같이 컸다. 몸집은 컸지만 내면까진 성장하지 못해서, 쇠사슬에 묶인 코끼리처럼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손바닥에 욱여넣은 나의 선택들이 세세하게 동의되지 않았다.


그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가며, 둘레둘레 방황하며 물레방아같이 돌고 도는 인생을 살다가, 나는 결심했다. 방향을 다시 찾아보기로. 믿을만한 사람에게 길을 물었더니 다른 길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방향을 잃었다. 그렇다면 다시 되돌아가보기로 한다. 처음부터 길은 없었다. 이번엔 내가 나를 믿어주기로 한다. 내가 '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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