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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17. 2024

고수리와 박완서를 읽다가

사랑하기 위한 몸부림


고수리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가 울었다. 잊고 있었던 따뜻한 마음과 풍경이 나를 울렸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그리웠던 것도 같다. 그 마음을 알아본 나에게도 저 깊숙한 곳에나마 따뜻한 마음이 남아 있어서였다고 위로해 본다.


작가의 첫 번째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를 읽고 한동안 먹먹했다. 나도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작가의 또 다른 책 <선명한 사랑>을 상호대차 신청하여 받아보았다. 에세이 특성상 작가의 글을 읽을수록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작가는 글로만이 아니라 실상도 사람을 사랑하고 친절을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문득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자신 없어졌다.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않잖아. 내겐 이런 어머니가 없잖아. 어느새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그녀와 나를 비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직은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타인과 세상을 향해 눈을 들어보지만, 사랑이 없는 텅 빈 눈빛은 힘알대기 없이 자꾸만 떨어졌다.


지난날들을 정직하게 지나오지 않고 지르밟고 도망쳐온 까닭일까, 글로써 게워내야 할 감정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당장은 그녀와 같이 사랑이 담뿍 담긴, 사랑스러운 글은 쓰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그녀의 글은 꾸준히 읽어나갈 것이다. 그녀의 시선에 담긴 사랑을 글로나마 배우기 위함이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한 번씩 사전적 의미를 찾게 되는 낯선 단어들이 있었다. 학창 시절 처음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으며 사전을 들춰 보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박완서 작가의 책을 오랜만에 집어 들었다. 공교롭게도 두 책을 번갈아 읽고 있는데 위로가 된다.


자식들 여럿 시집보낸 일, 손주와의 에피소드가 지금 내 나이를 훨씬 뛰어넘은 오육십 대의 기록이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조금은 더 관조적인 문체 속에서 치열하고 뜨겁게 사랑했던 시절의 흔적을 느낀다. 그것을 그리워하는 작가의 마음도 느껴진다. 약간은 씁쓸해하면서도 여전히 따뜻함을 지향하는 작가에게서 또 다른 형태의 위로와 공감을 받는다.


나는 지금 어디쯤일까. 나의 부모를, 나의 이웃을 치열하게 사랑했던 때가 있었던 것도 같고 없었던 것도 같다. 사랑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날들은 분명 있었다. 그러나 내게 사랑은 늘 어려운 숙제 같았다. 미완성으로 끝난 사랑이다. 제 풀에 지쳐서 끝낸 사랑이다. 어쩌면 나를 사랑하지 못했기에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받아쓰기>라는 매거진을 발행하며 수시로 떠오르는 불편하고 외롭고 쓸쓸한, 반갑지 않은 감정들을 기록해 본다. 예쁘지 않고 모난 감정들이 떠오를 때마다 버려두고 자주 외면했다. 그러나 받아쓰기를 통해 좀 더 민낯의 나를 받아들이고, 쓰는 연습을 한다. 나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이 나는 이렇다.라는 현재 모습에 대한 절망과 자책으로 남지 않고, 지난날을 돌아보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나는 왜 이럴까? 열린 질문으로 실마리를 찾는다. 엉켜있는 삶을 풀어내는 쓰기의 시간을 통해 나는 지금 이렇구나. 그래서 불편했구나. 그래서 쓸쓸했구나. 하고 나를 알아주고 안아주는 읽기의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고수리와 박완서를 읽다가, 나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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