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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18. 2024

나의 원픽은


"나, 작가가 되기로 했어."


꿈이 없어 내내 슬펐던 짐승이 낮게 포효했다.

어쩌면 유일했을 꿈, 그것을 제외하고 나니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져서 내내 꿈이 없었던 게 아닐까. 내가 책을 내든 안 내든, 작가가 되든 안 되든 나는 평생 글을 쓰며 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꿈이라는 게 반드시 직업을 의미하진 않지만, 직업적 일을 하는 정도까지 나의 시간과 마음을 쓰기로 결정하는 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 꿈을 꾼다는 건 괴리가 있다.

마치 내 원픽은 너야,라고 말하면서 데이트권은 투픽에게 쓰는 것 같은 괴리라고나 할까.


직업적으로 작가를 선택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 내가 버렸던 일이다. 작가가 돈 못 버는 직업이라고 했던 어머니의 말씀 때문만은 아니었다. 글로만 먹고살 만큼 나의 재능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이 업이 되는 순간, 내가 희미하게, 그러나 유일하게 좋아하는 글쓰기라는 행위가 미치도록 싫어지는 순간이 올 것 같았다. 그건 생각만 해도 슬픈 일이었다.


그렇게 소심하게 지켜오던 글쓰기에 대한 나의 애정은 결혼과 함께 종료되었다. 가장 힘든 순간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글쓰기는 아이로니컬 하게도 내가 행복해지는 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책상 앞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만날 수가 없었다. 서운한 마음에 지난날 나의 기록을 들춰보았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썼던 글들은 너무나도 어두웠고, 막막했고, 막연했다.


나는 결혼 후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행복과 안정감 속에 머물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릴 적을 제외하고, 내 인생에서 이토록 완벽한 순간은 없었다. 나의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을 하고 보니 그 이전의 삶으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암담했던 과거에 썼던 글, 그런 글은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그 시절 위로를 받고 치유가 되었다고도 생각했는데, 그 흔적들이 상처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제 밝은 데로 나아왔으니 새롭게 다시 시작해 보자 하여도 이상하게 글은 써지지 않았다.


나는 밝은 곳에서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인가? 나는 명랑한 글은 쓸 수 없는 사람인가? 나는 불행할 때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인가?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불행해질 수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글쓰기와 이별했다.


행복한 신혼생활에 이어 출산과 육아를 하던 중 난다의 에세이 <거의 정 반대의 행복>을 선물 받았다. 그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런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었다. 일상을 통통 튀는 문장으로 가볍고 산뜻하고 재미있게 기록한 글이었다. 내가 이제껏 주로 선택해 왔던 글과는 결이 달랐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런 글들을 감히 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삶을 여유 있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했고, 무엇이 옳은 건지 고민했고, 무엇이든 정의하려 했다. 삶을 살 만하게 여기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누릴 줄을 몰랐다.


아이들과 함께 주말 나들이를 하기 위해 서치 하다 블로그 후기글을 읽었다. 글에는 맛있는 것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행복이 묻어났다. 나는 그 후기글을 통해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 뿐 아니라, 어느새 미소 짓고 있었다. 문장이 호응되지 않고 ㅋㅋㅋ가 넘쳐나는 비문이었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글이었다. 꼭 무언가를 정의하거나 결론 내리거나 교훈과 깨달음을 뽑아내지 않더라도, 과거를 납득하고 현재를 설득하고 미래를 다짐하는 글이 아니더라도, 내가 보낸 시간의 가치를 담아낸 소중한 글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블로그 글쓰기. 블로그에 후기글을 써온 지 삼 년 째다. 나도 이제 즐겁고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저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쓰는 훈련을 했다. 그리고 이젠 꼭 '좋은 것들'에 대한 후기글이 아니더라도, 내가 겪어야 했던 '나쁜 것들'에 대한 후기글을 뒤늦게 써보려 한다. 내가 미처 음미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와, 먹다 뱉어버렸던,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던 과거의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보려 한다. 그리고 쓸 것이다. 나는 작가로 살 거니까.


그리도 돌고 돌아 다시 찾은 소중한 내 . 사실 네가 내 원픽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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