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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칼럼 식당에 걸린 타인의 그림, 저작권 침해일까?

by 안영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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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식당 벽에 걸린 그림 하나가 수많은 법적 쟁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브랜드 통일성의 책임은 어디까지이며, 개별 가맹점의 행위가 본사 대표의 형사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이 판례는 '저작권 침해'라는 객관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형사법적 증명의 기준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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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의 서막: '객관적 침해'라는 덫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H'의 본사 대표 A와 B는 2012년부터 2013년 사이 전국 10여 개 가맹점에 무단으로 복제 및 변형된 작가 I의 그림(‘J’, ‘K’, ‘L’ 등)을 전시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검찰이 피고인들을 기소한 논리는 확고했습니다.


객관적 침해 사실 및 광범위성: 전국 10개 가맹점에서의 동일한 저작물 무단 사용은 피고인들이 이를 승인하거나 최소한 묵인했다고 볼 수 있는 강력한 정황 증거입니다.


브랜드 통일성 유지 의무: 프랜차이즈 본사 대표로서 인테리어 도면을 승인하고 브랜드 이미지의 통일성을 관리해야 할 최종 책임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저작물 사용을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동일성유지권 침해: 일부 그림이 비율이 조정되거나 모서리가 잘린 채 사용된 명백한 변형 행위는 저작권 침해의 고의를 더욱 짙게 만들었습니다.


요컨대, 검찰은 대표의 지위를 근거로 총괄 책임론과 인테리어 업체와의 공모 또는 간접 정범 가능성을 주장했습니다. 침해라는 객관적 결과가 명확한 상황에서, 검찰의 기소는 논리적 귀결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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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핵심 쟁점: '누가 했는가?' - 형사 책임의 귀속


본 사안의 본질적인 법률적 쟁점은 "누가 이 저작권 침해 행위의 주체인가"였습니다. 형사재판의 대원칙상,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범행에 가담했다는 사실, 즉 **'고의(故意)'**가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엄격하게 입증되어야 합니다.


가. 가맹점 전시 행위의 주체성 입증


프랜차이즈 본사 대표라는 지위만으로 개별 가맹점의 인테리어 행위에 대해 형사 책임을 질 수 있을까요? 쟁점저작물을 복제·전시한 행위가 피고인들의 지시나 공모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명이 필요했습니다.


나. 인터넷 게시 행위의 고의성


본사 홈페이지에 가맹점 사진이 올라간 것을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있는지의 여부도 쟁점이었습니다. 사진이 인테리어 소개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쟁점저작물을 홍보/전시하기 위한 목적이었는지에 따라 침해의 고의성 유무가 달라집니다. 특히, 저작권자가 항의하자 즉시 사진을 내린 행위는 고의성 입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결국, 모든 쟁점은 '피고인들의 직접적인 가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느냐로 수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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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법원의 판단: '엄격한 증명'이 무죄를 선고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엄격하게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며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을 고수한 결과였습니다.


가. 본사와 인테리어 행위 주체의 분리


계약 주체의 분리: 법원은 인테리어 공사 도급계약이 가맹점주와 M 인테리어 업체 사이에 체결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본사는 인테리어 도면 승인 및 최종 모습 확인 정도에 그쳤을 뿐, 개별 인테리어 계약의 세부 사항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인테리어 업체의 증언: M 업체 직원은 쟁점저작물 부착과 관련하여 피고인들에게 보고한 바 없으며, 도면에도 구체적인 그림이 특정되어 있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즉, 그림을 선택하고 출력하여 전시한 주체는 인테리어 업체였다는 점이 입증되었습니다.


공모 또는 지시 증거 부족: 법원은 피고인들이 그림 전시를 직접 지시했거나 인테리어 업체와 공모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전혀 없다고 명확히 판단했습니다.


나. 인터넷 게시 행위의 '부수성' 해석


홈페이지 게시 사진은 쟁점저작물의 홍보가 목적이 아니라 실내 인테리어 전반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쟁점저작물은 거기에 부수적으로 찍힌 것에 불과하다고 해석했습니다. 또한, 저작권 침해 항의를 받은 즉시 사진을 내린 조치는 피고인들에게 저작권 침해의 고의가 없었음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작용했습니다.


다. 자백의 신빙성 탄핵


피고인 B가 일시적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했으나, 법원은 이를 진정한 유죄 인정 자백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당시 변호인 없이 혼자 출석한 상태였고, '도의적으로 잘못'을 인정한다는 취지였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기에, 법원은 그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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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사점: 프랜차이즈 '총괄 책임론'의 한계


이 판결은 프랜차이즈 본사 대표라는 지위만으로 가맹점의 모든 법률적 문제, 특히 형사 책임을 자동으로 져야 하는 것은 아님을 명확히 한 판결입니다.


검찰이 주장한 '총괄 책임론'은 민사적인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질 수 있으나, 형사법에서는 피고인의 행위(Action)와 그에 대한 고의(Intent)가 결합되어야만 유죄가 성립됩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본사가 인테리어 '컨셉'을 관리할 수는 있지만, 개별 소품의 저작권 문제까지 직접적으로 지시하거나 공모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기업 운영과 법률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제시합니다. 피고인들은 객관적으로는 침해 행위가 발생한 프랜차이즈의 수장이었으나, 형사 재판에서는 그 침해 행위를 '누가 계획하고 실행'했는가의 문제로 책임 소재가 분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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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문가 조언: 사전 검증과 초기 대응의 중요성


이 판례는 기업이 의도치 않게 저작권 관련 형사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가. 사전 리스크 관리


프랜차이즈 본사는 향후 유사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가맹점 인테리어 도면 승인 단계에서 저작권 관련 사전 검증 절차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특히 장식용 그림이나 사진 등의 소품에 대해 '저작권 클리어런스(Copyright Clearance)'를 반드시 확인하고, 해당 내용을 인테리어 시공 계약서 및 가맹 계약서에 명시하여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 초기 형사 대응의 중요성


본 사건에서 변호인은 프랜차이즈 계약 구조와 인테리어 업무 관행을 면밀히 분석하여, 실제 침해 행위 주체가 가맹점주와 시공업체이며 피고인들에게는 공모나 지시가 없었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또한, 피고인 B의 '도의적 잘못' 인정 진술을 법적으로 탄핵하여 유죄의 증거로 사용되지 않도록 한 것은 변호인의 핵심 역할이었습니다.


저작권법 위반 사건의 핵심은 ‘고의’와 ‘행위 주체’의 명확한 입증에 달려 있습니다. 객관적인 침해 사실이 있더라도, 형사적인 책임 유무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기업 법무팀이나 전문 변호사의 초기 조력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무죄를 이끌어내는 데 필수적입니다. 이 판례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법률적 책임 범위를 가르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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