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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Mar 19. 2022

가장 슬픈 날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영어 학원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 평소와 다르게 집 앞에서 서성거리는 엄마를 발견했다. 심상치 않은 표정이 역력했다. 어색한 침묵 이후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는 “소연아 아빠가 이혼하쟤”였다. 이어서 “이번엔 진짜로”를 덧붙였다. 엄마의 굳은 표정과 결연한 말투가 “이번엔 진짜로”라는 말에 힘을 보탰다. 


엄마의 말을 들은 직후 나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당혹스러움을 감추고 침착하려고 애썼다. 이후 이어진 엄마의 한 마디. “소연아 너가 뭐라도 좀 해봐.” 서글프고 절망 어린 엄마의 눈빛. 엄마의 눈빛에 서린 생생한 감정이 찌를 듯이 온몸을 관통했다. 


머릿 속이 일순간 텅 비었다가 이내 한 가지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어떻게든 이혼을 막아야겠다는 것. 아빠를 보면서도 아무런 내색을 않다가 아빠가 나를 화장실로 불러 이혼에 대해 이야기한 직후 나는 눈물샘이 고장 난 사람처럼 엉엉 울었다. 사실 그때의 감정이 어땠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슬퍼서 운 것인지, 어떻게든 이혼을 막아보겠다고 운 것인지, 어쩔 줄 몰라서 운 것인지. 아니면 위 세 개 모두 해당하는 것인지. 그저 나는 눈물과 물아일체를 이루었다. 


하지만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확실히 기억나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내가 아빠한테 이혼만은 안 된다고 정말 싹싹 빌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눈물 범벅이 된 채 이혼은 안 된다고 포효하듯 말했다. 논리적인 근거를 차분하게 제시할 리 만무했다. 그냥 이성을 잃고 울부짖었다. 여태까지도 잘 참아오지 않았냐며. 엄마는 어떻게 사냐며. 우리 둘이 산다고 행복해지겠냐며. 대충 이 정도의 내용이 아니었나 싶다. 


두 번째는 애절한 눈빛으로 내뱉은 아빠의 말이다. 바로 “소연아 이제 우리 좀 행복해지자.” 아 아빠도 많이 힘들었구나. 지금까지의 삶이 아빠가 기대하던 삶의 풍경과는 매우 달랐다는 점. 오히려 집안 구석구석에, 일상의 찰나에 불행이 스며들어 아빠의 삶 전체가 잿빛이었다는 점. 아빠의 가정 생활을 압축적으로 요약한 한마디에 가슴이 아려왔다. 


눈물 대환장 잔치가 한바탕 벌어진 후 아빠의 이혼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이혼의 가장 큰 훼방꾼은 바로 나. 이것은 세상의 중심이 ‘나’ 였던 청소년기의 사고방식을 한꺼풀 벗긴 후 성인의 시점에서도 충분히 일리 있는 해석이었다. 이혼 직전까지 가서 눈물 소동이 펼쳐졌고, 그 직후에 ‘이혼’이라는 말 자체가 자취를 감췄으니까. 장장 네다섯 시간에 걸친 눈물 폭포는 부모님께 꽤나 큰 충격이었나 보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눈물을 거의 보이지 않던 내가 오열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이 사건의 과정은 내게 슬픔 그 자체였고 사건의 결과는 복잡다단한 감정의 실타래였다. 이 슬픈 사건은 내 마음에 다채로운 감정의 자국을 남겼다. 그 당시의 내 마음은 슬픔 일색이었지만, 소동이 휘몰아친 이후의 마음은 여러 감정들로 얼룩덜룩했다. 슬픔을 눈물로 어느 정도 토해낸 이후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얼굴을 내민 것이다. 


복잡한 감정들의 면면은 이러했다. ‘행복한 가족’이라는 유니콘을 상정해놓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해 안절부절 아등바등하는 나 스스로가 한심했다. 결혼 따위 절대 하지 않겠다며 결혼을 비아냥거리는 냉소는 진짜 내 마음이 아니었구나. 나는 사실 (그런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화목한 가정이 간절했구나, 하는 새삼스럽고 진부한 깨달음. 다른 한편으로는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엄마의 말에도 불구하고 ‘침착하려고 애쓰는’ 의식이 ‘두려움과 경악스러움’이라는 무의식을 이겨냈다는 점이 슬펐다. 찰나에도 나는 아이가 아닌 어른이었다.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의 처절한 신경전을 잠재우는 중재자를 자처했는데(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중재자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죄책감을 느꼈다. 감당할 필요도, 감당할 수도 없는 무거운 무게를 스스로 짊어져놓고 죄책감의 수렁에 빠졌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그 사건에 대한 감정이 어느 정도 식었을 때에는 다른 결의 죄책감을 느꼈다. 그 당시의 시점에서 이혼은 무조건 나쁜 것이었지만 어느 정도 생각이 자란 후의 시점에서 이혼은 어쩌면 좋은 것이었다. 서로 맞지 않은 둘이 평생 삐거덕거리며, 온갖 파열음을 내며 함께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이 삐걱거림을 단순히 ‘가족’이라는 이유로 덮어버려도 되었던 것일까. 각자의 행복을 위해서 이혼은 최선은 아니더라도 어쩌면 차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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