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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원 Jul 24. 2024

모퉁이를 돌아서

모퉁이를 돌아서

                                               - 안창호

 60대 모퉁이를 돈 지 한참이다. 한 살 한 살 모퉁이를 마주할 때마다 어떤 일이 생길까, 어떤 사물을 마주할지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한다. 마침, 나 같은 시니어들이 즐길만한 한 모퉁이 앞에서 발을 멈춘다. 새로운 관점에서 대화하고 인생 여행 나눌 장(場)을 만들어줄 것 같은 ‘꿈꾸는 여행자’ 사이트를 만난 것이다.     

 세상사 다 생각하는 대로 되지는 않지만 10년 후의 나를 상상해 본다. 아마 과거의 틀을 벗어나 80대 초반에 수필가나 여행작가의 언저리에 몸을 담고 훨씬 자유롭게 인생의 후반 여행을 하며 살고 있을 테지. 그때 새로운 추억을 나누고 싶어서 이 편지를 쓴다.     

 12년 전, 나에겐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았던 경험과 여행기 출판이 있었다.

볕 좋은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 손자가 문득 나에게 “외할아버지는 중소기업 사장님으로 일을 하고 돈도 버는데, 할아버지는 왜 매일 놀고 계시는가요?”라고 물어왔다.     

 “어허! 이놈 봐라.” 하면서 손주의 사물을 보는 통찰력에 대견해했다. 2019년 12월 출간한 자서전 《균형 잡힌 내 삶을 살다》를 꺼내어 둘이 함께 책장을 넘겼다. 할아버지가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하였고 39년간 교단생활에 후진양성과 학교 공동체를 위해 무척 노력하였음을 주절주절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맛비 속 천둥 번개처럼 확 들어왔던 영감(靈感)이 있었다.

“이들에게 물질적 유산보다 소중한 정신적 물림을 주자.”

망설임 없이 나는 제주 한달살이 경험을 무료 출판해 책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제주 한달살이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 제주도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내 삶에 예지(叡智)를 주었다. 《제주, 어떻게 살았니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이 책은 제주에서 한 달을 살면서 느낀 감정, 사람들, 자연, 음식, 문화 등을 담았다. 그때 손주들과 나눈 얘기와 일상 사진도 서툰 일러스트가 되어 칼러로 잔잔하게 담아냈다.     

 “시니어들의 예행연습 없는 4월 봄날 제주 이야기가 ‘제주 한달살이’를 꿈꾸는 분들이 읽고 실천에 옮김에 있어 이 책의 ‘알고리즘’이 도움이 될 것이다. 여행을 통해 진정한 자아와 교감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께 강력히 추천한다.”라고 프롤로그에서 객기도 부러 봤다.     

 자가 출판 플랫폼을 갖춘 ‘부크크’ 출판사에서 찍었다. 그래도 짠돌이 내 노력과 인내심으로 쌈짓돈 한 푼 안 들이고 책을 낸다는 게 어디야. 또 실제 POD 출간 도서를 읽어보면 품질이나 구성 등 여러 면에서 기존 출판사 도서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점에 긍지도 컸다. 책 출생 번호인 ISBN을 달고 국립중앙도서관에 턱 하니 자리하고 인세도 받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였다.     

 더불어 한 달 내 보금자리 대정읍 일과리에서의 생활 풍경도 잊지 못한다. 그 감정은 글로 박아뒀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그곳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고요함이 흐른다. 아침 이슬을 밟으며 구멍 숭숭 돌담 틈 엿보면서 산책하는 발걸음 소리마저 마을을 가득 메운 정적 속에서 음악처럼 울려 퍼진다. 옆집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고, 눈인사 한 번으로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됨을 알 수 있는 곳. 그곳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마을 어귀 동백나무 아래 떨어진 붉은 동백꽃은 며느리 휴대전화 프로필 속에 수줍게 남아 있다.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나에게 큰 위안과 기쁨을 주었다. 대정읍 일과리, 그곳은 내게 평온함과 행복을 선사한 곳. 그리고 이제, 그곳은 나의 추억 속에 영원히 아름다운 곳으로 그리워한다.”     

 10년 후의 나야! 그건 네가 살아오면서 진짜로 ‘엄지척’ 잘한 일이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머리 한번 내어줘요. 고마워서 쓰다듬고 칭찬 한번 해줄게. 부디, 치매 같은 정신 놓는 일 없이 이 모든 추억의 향기를 잊지 말고 생이 다하는 날까지 두고두고 기억해 주길 바란다.

나야, 마주치는 모퉁이가 0(空)이 되는 날도 사랑하자.     

2024년 7월 10일, 타임머신 위에서 젊은 내가 보냄     


* 이 글은 10년후 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로써 '꿈꾸는 여행자' 사이트에 메일로 2024.07.10. 응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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