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마음을 고치는 이야기

“하나님만이 고치십니다”라는 말 앞에서– 한 청년의 간증 앞에서

by 안유선

하나님과 마음을 고치는 이야기 1화


본 글 [하나님과 마음을 고치는 이야기]는 건강 선교 잡지 [건강과 생명]에 투고한 글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마음의 치유를 원하는 분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주일 예배에 한 청년이 간증을 하러 나왔습니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이 지나온 길을 말했습니다.

“저는 20대 초반에 조울증 진단을 받고 1년 넘게 약물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약이 전혀 듣지 않았어요. 부작용만 남고 몸은 더 지쳐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말씀을 읽으며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치유하시는 걸 느꼈습니다. 지금은 약을 끊고,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 중입니다.”

회중들은 놀라운 회복의 고백에 박수와 함께 큰 ‘아멘’을 외쳤습니다. 그의 간증은 큰 감동을 안겨주었고, 예배당 안은 은혜의 공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저는 정신과 심리상담실에서 우울증, 조울증, 성격장애, PTSD를 겪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 중에는 교회에서 자란 청년도 많고, 기도와 예배를 통해 삶을 버텨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약을 먹고, 상담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서서히 일상을 회복해 갔습니다. 그 청년의 고백을 들으며 내 마음속에는 두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마음의 병은 하나님만이 고치실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정신의학과 심리치료는 무용한 것일까?”

상담실의 시간은 느립니다. 회복은 기적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처음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내담자의 눈빛은 대개 무겁고 얼어 있습니다. 그들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자기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앉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냥 무기력해요.”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이 말들은 어쩌면 “하나님, 왜 저만 이런가요?”라는 고백의 다른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한 내담자는 극심한 조울증으로 응급실을 세 번 넘게 다녀왔습니다. 조증일 때는 밤새 글을 쓰고, 갑자기 대출을 받아 가게를 열었고, 우울기가 오면 자살 충동이 밀려왔습니다. 약물치료와 상담을 병행했고, 몇 년간의 오르내림 끝에 자신의 증상 리듬과 방아쇠(trigger)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차츰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귀신 들린 줄 알았어요. 하나님이 저를 벌주시는 줄 알았고요.

그런데 이제는, 제 뇌와 몸이 살아남기 위해서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저를 이 병 속에서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도요.”


저는 이 고백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약이 없었다면 그는 여전히 증상에 지배당했을 것입니다. 상담이 없었다면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왜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도우셨기에, 그는 그 모든 과정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천히, 구체적으로,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만이 고치십니다”

그 청년의 간증이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의 회복은 분명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백이 다른 이들의 회복 여정까지 무시하게 된다면, 그 말은 때때로 누군가에게 치료를 거부하게 만드는 울타리가 됩니다.


많은 신자들이 기도만으로 회복되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상담을 받는 사람, 예배 중에 울고 있지만 밤엔 불면으로 뒤척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도 회복 중이고, 그들도 하나님 안에서 자라고 있는 중입니다.

그 간증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정말 치료가 무의미했을까?”


간증을 한 청년이 경험한 1년간의 약물치료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면, 그건 치료 자체가 무가치해서라기보다, 그 치료의 여정 안에 회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제거되지 않았거나, 회복을 위한 자원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치료는 단순히 ‘약을 먹는 것’이나 ‘상담실에 앉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지지적인 가족 환경, 낙인을 줄이는 공동체 분위기, 삶의 구조적 안정감, 스스로에 대한 긍휼한 시선…이 모든 것이 치유의 조건이며, 하나님이 환경과 사람을 허락하실 때,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어쩌면 그 청년에게 가장 큰 회복은, 자신의 병을 부끄럽지 않게 고백할 수 있게 된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간증의 자리가 오히려 하나님의 새로운 치료의 통로였을 수도 있겠지요.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으로 고치십니다. 하나님은 치료라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도구를 통해, 시간과 관계를 통해 고치십니다. 믿음은 병을 한 번에 없애는 능력이 아니라, 천천히 나아가는 여정을 버티게 해주는 힘입니다.


치료받는 내담자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고치십니다.

그리고 그 고치심은, 당신이 오늘 이 치료실 문을 연 그 순간부터 시작된 거예요.”

그 청년의 간증을 들은 그날, 나는 아멘 대신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고침의 방식은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기도로 회복되고, 어떤 이는 치료와 사람을 통해 회복됩니다. 어떤 이는 평생 약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당신께로부터 온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제가 오늘 만나는 사람들 역시 그 은혜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믿음이란 하나님의 기적만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내 곁에 주신 도우심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오늘도, 그 믿음을 품고 기도하며 상담실 문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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