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임신부가 어색했던 나, 그리고 우리
임신하고 나서는, 스튜디오에서 출연 대기를 하고 있을 때면 주눅이 들곤 했다. 의상실에 있던 평범한 정장들은 내게 맞지 않았고, 익숙했던 '평범'에서 홀로 튕겨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 배가 불러오면서 입게 된 펑퍼짐한 옷, 그 아래로 점점 나오는 배, 낮은 굽을 신고 스튜디오에 올라설 때면 잠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기분이 들었다. 스튜디오 조명 아래, 배불뚝이 기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나부터 하고 있었다.
생각을 바꾼 건 오히려 배가 더욱 불러왔을 때다. 임신한 것이 티가 많이 나기 시작하자, 되레 용기가 났다. 임신한 직장 여성도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임신을 했지만 방송을 하는데 문제없고, 그 자체로도 때론 괜찮아 보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의상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한주가 다르게 더욱 불러오는 배에 나도 자신은 없었지만. 그렇게 31주 차 마지막 방송 때 '임신한 여성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한 건, 나부터도 처음부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말한 반성문이기도 했다.
누가 봐도 임신이 확실해질 무렵 댓글에선 논쟁이 붙기 시작했다. 어서 들어가 쉬었으면 한다는 쪽과, 응원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전혀 몰랐던) 나는 적어도 36주까지는 방송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취재도 더 신경을 썼다.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냥 임신을 했을 뿐 원래 하던 일이기도 했으니깐.
하지만 '임신한 사람도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내 다짐이 무색하게 31주가 될 무렵 급작스럽게 방송을 그만두게 됐다. 29주 차에 병원에서 갑자기 조산기가 있다고 했다. 무조건 누워서 지내라고 했다. 아기가 나오는 길인 경부 길이가 너무 짧다며 앉거나 일어서서 압력을 주면 더욱 짧아져 아기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느낌도 없는 경부 길이가 언제 짧아질지 몰라, 잠시라도 일어서면 꼭 아기가 나와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방송을 그만두는 게 생각만큼 쿨하게 되진 않았다. 임신을 한 후부터 이미 끝이 정해져 있지만, 예상보다 고작 몇 주 앞선 시기였는데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그만두려니 아쉬움이 앞섰다. 임신을 하고도 30주를 보냈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 안지현이 어색했고 '기자' 안지현으로 내 몫을 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느껴지지도 않는 경부 길이가 짧아졌다니 믿기지도 않았다. 마지막 방송날, 보도국 휴게실에서 누워서 기사 작성을 하면서 어떻게든 더 버티고 싶었지만, 서있는 모든 순간이 불안해졌고, 결국 그날 방송을 끝으로 급히 휴직을 했다.
그리고 그 이후 0.1cm라도 사수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 누워만 있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서 경부 길이를 쟀는데, 어떤 때는 3.5cm였던 게, 또 어떤 때는 2.7cm까지 줄어있었고, 급기야 입원했을 땐 측정기기에 0.7cm라고 적혀있는 걸 어렴풋이 보고 절망했다. 나는 그렇게 태어나서 걷기 시작한 이후로는 가장 오랫동안 직립보행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 먹을 때는 반쯤 누워서 먹었고, 매일 하던 샤워도, 2~3일에 한 번, 그마저도 일어나 있는 시간이 길어질까 두려워 후딱 씻고 나와 드러누웠다. 사람들은 내게 '그렇게 누워서 있는 것도 이제 없을 일'이라며 마음 편히 있으라고 했지만, 마치 육신에 갇힌 영혼처럼 답답하고 초조했고, 그 와중에 시간은 더디 가기만 했다.
그렇게 '배불뚝이 기자'는 하루아침에 누워있기만 하는 임신부가 됐다. 곧 끝날 줄 알았던 누워서만 지내던 그 시간도 6주간이나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