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에 와인 먹다 발견한 인생의 진리

파리지엔느 워킹맘의 장기미해결 고민의 참 쉬운 해결방법

by 그르누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를 만난 것도 오랜만이지만, 남편의 친구가 아닌 ‘나의‘ 친구를 만나,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 것이 참 오랜만이다. 우리는 즉석 떡볶이가 맛있다는 15구 한식당 안에 도착했고,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핑 흘렸다.


그 친구는 내가 스물여덟 살에 혈혈단신으로 파리에 와서 만난 또 다른 혈혈단신 여자로, 우리는 20대 말 30대 초를 자주 같이 보냈다. 그때를 생각하면 치열하고 막막하고 환상에 젖어 있었으며 마치 찬란하고 뜨거운 여름 같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10년이 지나, 이제는 초가을을 지나 쌀쌀한 바람이 느껴지는 인생의 가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서로의 얼굴만 봐도 그때의 뜨거움이 되살아나고, 마치 잊지 못할 여름 바캉스이야기를 꺼내면서 행복해하듯이, 추억 이야기라면 이미 했던 이야기를 꺼내고 또 꺼내도 행복한 감정이 느껴진다.


우리는 이제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있고, 직장이 있고,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쳐내야 하는 무거움을 어깨에 지고 살고 있다. 고향과 가족, 옛 친구들을 떠나와 외로움이라는 것이 뇌 속에 디폴트값으로 설정이 되어 있다. 그러면서 육퇴 후에는 인터넷으로 사는 방법을 검색해 보지만, 세상에는 너도나도 성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들의 콘텐츠들로 넘쳐나는데 어느 하나 와닿는 것은 없다. 학위를 여러 개 가진 잘 난 교수님들이나 기업가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내가 그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인성교육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고, 오히려 잠이 안 올 때 수면제용으로 그들의 영상을 본다.


그런데 오늘 친구를 만나서 이 친구가 나이 들면서 온화해지고 내면이 강해지는 것을 보면서, 나 스스로를 다시 살펴보고 나도 이 친구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야말로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운 키워드인 ‘인성‘이고, 나에게 당장 필요했던 인성교육이다.


나는 한국 공공기관의 프랑스 지사에서 일을 한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물론이고 다른 공공기관 분들도 만나보면 하나같이 며느리나 사위 삼고 싶을 인상과 인성을 가지고 있다. 중학교 때 허리가 꼿꼿하고 머리모양이 항상 똑같은 전교 1등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친구를 생각나게 하여 가끔은 뭔가 흩트려주고 싶다는 괘씸한 생각이 든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또 사기업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것을 목숨 걸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가끔은 어린애 같기도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런 회사에 10년 이상 근무하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은 능력보다는 ‘인성’이라는 거다. 착하고 인사 잘하는 그런 인성뿐만 아니라, 결국은 폭발하고 싶은 것을 참을 줄 알고, 좆같은 주문이 들어와도 참고 참고 디플로마틱한 언어로 답을 할 줄 아는 능력들이 있고, 그런 능력이야말로 책이나 학원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뚝배기 같은 부모님들의 가정교육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결국 그런 성품을 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렇지 못한 나부터 배우고 정화되고 교화돼야 한다는 생각들이 나의 출퇴근 길 머릿속에 들락날락 한지가 오래되었다. 무엇으로 찾아보아야 할지 몰라 불어로 검색했다가 영어로도 검색해 보았는데 결국 내가 해결을 원하던 고민들은 ‘인성교육’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이 되었다.


오늘 6살 먹은 첫째 아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 안 한다. 아마도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학부모가 보이지 않는 손가락질을 많이 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해도 고쳐지지 않는데, 그러면서 인성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국은 내 인성이나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이의 인성교육을 위해 거금을 들여 예스 24에서 책을 주문하고, 해외배송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아이가 오늘 난생처음으로 ‘베스트프렌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라씸이라는 알제리계 친구인데 우정이 뭔지 친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개념이 없었는데,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을 보니 이제 이해를 할 나이가 되었나 보다.


내가 더 기쁜 것은 내가 오랜 친구를 만나서 내가 그 친구처럼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 것처럼,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것이 인성을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통해 그들이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자기 스스로에게 적용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


이래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나보다. 한국 여자 중에 3퍼센트밖에 없다는 엠비티아이를 가진 자로써, 매우 개인적이고 객관적이고 공감능력은 부족한 사람이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살면서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내 속에 있는 호랑이 같은 성격과 스티브잡스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과한 자신감을 감추고, 그저 말 잘 듣고, 시키는 거 잘하는 지방출신 셋째 딸이라는 프레임에 나를 맞춰야 해서 한국에서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나라는 사람에 요구하는 것이 결국 순한 동양여자인 것 같아서 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꽤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나의 이미지와 상대가 인정하는 나의 이미지가 같을 때 나는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낀다. 나에게 칭찬만 해달라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아는 나의 장점과 단점을 각자의 필터나 색안경에 적용하지 않고 그대로 봐주는 사람을 만나면 편안함을 느낀다. 나의 가족이 나에게 대하듯이, 나의 단점은 단점대로 내버려 두고 장점은 살려주는 것이다.


그 친구가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장점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판단하지 않고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그 친구를 만나고 나서 내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본다. 나를 잠 못 자게 만들고 힘들게 하는 것은 보통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후회들 때문이었다. 내가 그대로 듣지 않고 가르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나면 자기 전에 후회가 된다.


이제 나는 누가 나에게 물어보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판단해 달라고 하기 전에 판단하지 않을 것이며, 쓸데없이 감정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내 아이들에게도 내 생각이나 세상의 지식들을 고집스럽게 가르치는 엄마가 되기보다는,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지지해 주고 이야기하고 싶을 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시골 마을에 하나씩 있는 커다란 나무 같은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사 안 하는 아이를 통해 인성교육이라는 것을 생각했고, 인성교육을 위해서는 지식 주입이 아이라 엄마인 나 스스로 인성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심리상담도 받아보았지만, 결국 답은 오래된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찾게 되었다. 이런 생각의 씨앗은 나의 앞으로의 인생과 우리 아이들의 사회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아무튼간에 고마워 ㅇㄹ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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