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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질고개 Feb 17. 2024

고등학교 첫 도전

헝클어진 입학 첫날


고등학교 입학식 날, 아침 등굣길에 나는 영문도 모른 채 2학년 선배에게 뭇매를 맞았다. 그날 아침에 공연히 여유를 부리다가 등교 시간이 늦어 버렸다. 초등학교와 접해 있는 학교 앞길을 따라 혼자 서둘러 숨 가쁘게 걷고 있었다. 학교 정문으로부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그가 갑자기 이유도 없이 나를 담벼락으로 밀어붙이더니 주먹과 발로 온몸을 때렸다. 넘어져 몸을 웅크리고, 당황한 상태에서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맞았다. 얼굴과 교복이 엉망이 된 채 나는 고등학교 정문을 들어섰다. 


그 수치심과 울분을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첫날부터 헝클어지고 뒤틀린 내 고교 시절은 그날의 분노가 더해지면서 엉망으로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학교 앞길을 걸으면 입학식 날 그 선배에게 얻어맞았던 그곳을 지나갔다. 내 등굣길은 그렇게 분노로 충전되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아올랐다. 한 달 동안 그 선배를 찾아다녔지만 명찰 색깔 외에는 생각해 낼 정보가 없었다. 수없이 다시 기억을 떠올려도 그의 이름을 기억할 수가 없었다. 너무 당황하다 보니 그의 명찰을 제대로 못 본 것을 수도 없이 후회했다. 그는 고등학교 입학 첫날 내게 분노를 가르쳐 주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사건 담당 형사였던 송강호가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영화가 끝난다. 그 사건의 살인범이 영화를 볼 것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제작 의도가 문득 생각난다. 나는 나를 때린, 그날의 ‘묻지마 폭력자’도 이 책을 보길 바란다. 

“향숙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1학년 첫 도전


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체육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운동장에 학생들을 모아 놓고 여러 가지 말씀과 지시를 하고 계셨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내 머리를 때렸다. 고개를 돌려봤지만 모두 히죽거리며 나를 놀리고 있었다. 신학기라 얼굴이 서로 낯설어 나는 그냥 그 상황을 외면했다. 그런데 잠시 후 또 한 번 더 세게 내 뒤통수를 때리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바로 뒤에 있던 친구의 멱살을 쥐었다. 그는 자기가 아니라고 했다. 분노를 이길 수가 없어 뒤에 있는 3명의 친구에게 방과 후 결투를 신청했다.


오후 수업이 계속되고 시간이 지나가자, 분노의 감정이 점차 사라지며 살짝 겁이 났다. 분노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지속되고 싸움의 긴장감을 즐기던 중학교 시절과는 달랐다. 사춘기를 지나는 시기에 벌어진 방과 후 싸움을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했다. 고등학생이 되니 행동에 따른 결과와 영향 등 여러 가지 생각할 것이 많아졌다. 일을 크게 벌인다는 것이 후회됐다. 사춘기의 파충류에서 이미 포유류로 넘어간 나는 점점 전투력이 떨어져 갔다.


그날 수업이 끝나갈 즈음, 체육 시간에 내 뒤에 있었던 두 사람이 찾아와 누가 때렸는지 내게 말해 주었다. 나는 그 친구 자리로 곧장 갔다. 

“네가 날 때렸다며, 왜 때렸어?”

“야! 그냥 장난친 거야, 인마. 제기랄! 너, 나한테 덤비는 거냐? 죽을래?”

그는 오히려 내게 건방지다며 화를 냈다. 순간 나는 분노가 다시 온몸으로 퍼지며 결투할 것을 재확인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그놈을 포함해서 몇 명은 함께 몰려다니며 쉬는 시간에는 교실 뒤에 모여서 떠드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레슬링과 유도 등 싸움 놀이를 하면서 학급 분위기를 험악하게 장악해 가고 있었다. 학기 초, 교실에서 정식 결투를 하는 것은 학칙으로 엄격히 금하고 있어, 잘못하면 학교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체육 시간의 장난이고 다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분노는 차츰 사라지고 있었다. 그 친구가 사과만 했어도 그냥 상황을 해제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나 수업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놈의 조력자들은 반 친구들을 시켜 책걸상을 모두 앞으로 밀어 교실 뒷공간을 확보했다. 교실 밖에는 창문을 열어 놓고 소문 듣고 모인 다른 반 학생들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결투를 시작했다. 역시 그도 겁을 먹었는지 목소리 높여 심한 욕만 하고 내게 공격하지 못했다. 

선제공격, 그리고 목을 힘껏 감고 비틀어 함께 넘어진 후, 끝까지 버티는 개싸움에 나는 이미 여러 차례 단련되어 있었다. 나는 준비된 방식으로 머리를 맞대다 떨어지면서 꽉 쥔 오른 주먹으로 그의 왼쪽 턱과 귀 사이를 겨냥해 비스듬히 올려 쳤다. 그런데 그가 바로 넘어지지 않고 교실 뒷벽에 부딪히면서 우리는 서서 싸우게 되었다. 벽을 등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나는 당황했다.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복부와 얼굴을 번갈아 가며 한참 동안 서로 주먹이 오고 갔다.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얼마간의 주먹이 더 오간 후 우리는 둘 다 바닥에 쓰러져 뒹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목을 힘껏 감고 움직이지 못하게 버티려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상체 힘이 엄청나게 셌다. 누워서 더는 버티기가 어렵다고 생각할 때쯤, 갑자기 몇 명의 2학년 선배들이 교실에 들이닥쳤다. 다행이었다. 우리는 황급히 일어나 복도에 구경하던 친구들과 뒤엉켜 어수선한 틈을 타서 도망쳤다. 


다음 날 아침 자습 시간에 2학년 선배들이 교실로 들어와서 나와 그 친구를 데리고 나갔다. 학교 화장실 뒷벽에 세워 놓고 뺨을 몇 대 때린 후 벤치에 앉혔다. 왜 싸웠는지를 묻고, 앞으로 조심하라며 몇 가지 훈계를 했다. 

“싸움은 이제 끝났다. 앞으로 보복하거나 증오심 갖지 말고 사나이답게 서로 사과해라.” 

뺨은 얼얼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비교해 뭔가 어른스럽고 남자다움이 있다는 걸 알았다. 조직의 선배가 왜 필요한 존재인지도 조금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선배다운 너그럽고 여유 있는 말에 공감했다. 학교에는 멋진 2학년 선배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싸움으로 인해 나는 더욱더 옳지 못한 길을 가게 되었다. 점점 더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만 생겼다. 학업에 소홀했지만 아무도 나를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시골 계신 부모님은 농사일로, 함께 자취하는 누나들은 공장일과 학업으로 바빴다. 가족들은 나를 믿었지만, 나는 이미 완벽한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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