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HN SIHYO Apr 18. 2016

4등

참 기가 막힌 우연이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명동에 들렸고,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약한 영화는 주토피아였는데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깐 5분 정도 보여주는 광고인가? 짧은 영화인가 하면서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제가 예약한 영화였어요.

그것은 바로 '4등' 오늘 이야기할 '4등'입니다.




영화를 예매하고 '큐레이터'가 쓰여있어서 뭔가 했는데

영화 상영이 다 끝나면 CGV 큐레이터가 영화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주시는 시간이 있더라고요.




영화를 보기 위해 자리에 앉아 한참 궁금했습니다.

주토피아인데, 왜 사람이 8명밖에 안되지?

이 영화를 저녁식사하기 전 시간인데 8명밖에 안 보지??? 하며 많이 궁금했는데 

주토피아가 아니고 4등이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국가 인권위원회'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정말 혼란스러웠지만

영화를 봤습니다.


예매한 영화고,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의도하지 않은 관람이지만 새로운 의미를 안겨줄 것이라 믿고 봤습니다.


순간 2009년이 생각났어요.

SK 와이번스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해서 학교 선배들과 같이 한국시리즈 경기를 보기 위해 5장의 티켓을 예매하고 우리는 아무도 그날, 그 현장에 와서 

'이 티켓 어제 경기에요.'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 예매를 잘 못한 것을 알아채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프린트해서 하루종일 눈 앞에 두고 바라보기까지 했는데말이죠...





정지우 감독이 다시 시작했습니다.

모두 알고 있는 하지만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던 이야기...


이번에는 국가 인권위원회와 함께 스포츠 선수들의 아픔을 영화에 담았습니다.


정지우 감독은 '해피엔드', '사랑니', '은교'등 사회적인 통념과 금기를 아예 깨뜨리는 시도를 하는 등 이름만 들으면 작품이 기대되는 감독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주제로 전 세대에게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수영을 좋아하지만, 엄마는 1등을 할 수 있다고 계속 집착하며 아이가 4등 하고 오면 더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서 만나게 되는 수영코치와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특히, 엘리트 스포츠 정책이 곪아있고, 체벌도 있고, 이런 나쁜 것들을 모두 알고 있지만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았던 숨겨진 이야기를 정지우 감독은 어떻게든 섬세하고 밀도 있게 또 빛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와서 떨리지만 정말 떨리지만 이야기를 해나갑니다.


어떻게 보면 저도 피해자였고, 가까이 피해받고 있는 분들이 있어서 보는 동안 조금 힘들었습니다.

영화를 최대한 가볍고 따뜻하게 담아내려고 정지우 감독은 노력했지만 저는 살짝 무거웠거든요.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 하면서 말이죠.


이 영화, 지금은 작게 시작했지만, 충분히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어내 끝내 나중에 다시 이야기가 되겠지만 기대해도 좋은 영화입니다.



순위권에 들지 않은 모든 4등을 위로하는 따뜻한 시선이 담기고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 힘이 있고, 날카로운 메시지로 공감을 만들어갑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나는!!! 나는 그래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속으로 계속 질문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수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꼭 1등을 해야 한다는 준호, 1등이 되기 위해서라면 준호의 상처, 모르는 척할 수 있는 엄마, 그리고 자기가 피했던 그 상황을 대물림하는 수영코치 광수까지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보여주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쉽게 꺼낼 수 없던 이야기들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물에 쏟아지는 빛을 영상에 담아내며 주인공의 감성을 전하려 했던 정지우 감독.


“햇살을 보면, 이게 우주에서 온 거구나, 우주의 기운을 받아서 에너지가 생기는 거야.”

순수한 준호가 감정적으로 변화를 겪게 되면 영상을 통해 준호가 주인공으로 있는 공간에서 빛을 비추며 준호를 대변해줍니다.

등수, 시간을 위한 수영이 아닌 물속에서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자유로운 준호의 모습이 물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영상기법이 보이면서 인상이 크게 남았던 것 같습니다.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수중촬영으로 아름다운 순간들을 담아냈으니까요.



과정이 중요한데 결과를 더 중요하게 하는 그런 현실

꿈에 대한 두려움

성공에 대한 열망, 욕심

불안함

아픔

이기심


기성세대가 뿌리쳐내지 못한 것들로 인해 새로운 세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그것이 남아있고 아이들이 어른들의 감정에 의해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지금 이 나라의 교육 문제 

또 앞으로 내가 아이들을 교육하게 될 때 어떤 자세와 어떤 생각을 갖고 해야 하는지 새로운 질문들을 계속 끄집어 내줬습니다.


아직도 남아 있을법한 체벌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다루며 일상까지 녹아든 정당한 폭력(?)에 대해 짚고 넘어가며 매를 드는 것, 휘두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뜨끔하게 할 것입니다.


어린 광수가 그렇게 수영을 잘하고 유망주였지만 주변 어른들에게 배우고 물려받은 도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사회와 약속한 준비기간에 일탈을 하고

그 일탈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한 감독의 체벌,

그리고 그 체벌을 피해 나왔지만 

어른이 되면서 그 체벌이 더 강해야 했고, 나를 붙잡아 줘야 했다고 믿으며 현실을 힘들게 살고 있는 광수.



우연히 4등만 반복하는 준호를 만나게 되고, 

억지스럽게(?), 순위권에 집착하는 엄마는 준호가 겪는 아픔은 눈 감아버리고 

광수가 수영을 그만두게 했던 그 상황을 준호에게 물려주고


준호는 자연스럽게 동생에게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내면서 


나쁜 것이 대물림되는 것을 소름 돋게 그려냈습니다.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이 있는 그런 구조가 아닌 

누구 한 사람을 가해자로 매도하는 접근이 아니었기에 영화에서 다루고자 했던 내용들을 따뜻하게 보여줍니다.


등장인물마다 주는 공감

자식 잘돼라고,

말로는 1등을 못하니까라는 이유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계속 보여줍니다.


체벌과 폭력이 어른에게서 아이에게로 그리고 다시 또...

전염되는 것들을 보며 준호 엄마는 자기 아들이 맞는 것보다 4등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아들이 순위에 드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있고

지금 때려 주는 사람이 진짜 자기를 생각해주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폭력에 도망친 광수

또 순수하게 맞고 하니까 잘하는 거냐, 예전엔 맞지 않아 4등 한 거냐고 말하는 동생...

이렇게 우리 모두 폭력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던 것들이 영화를 통해 드러납니다.


스스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 해내겠다. 잘하겠다는 이런 의지를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실. 이 영화 말 많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며 학부모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큐레이터도 저희에게 바로 전에 관람하신 분들이 대부분 학부모였는데 그분들이 해주신 말들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군기' 이건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을까요?

스포츠뿐 아니라 요즘 아직도 말도 안 되는 그런 신입생 군기도 있고, 체대 군기도 남아있다고 하던데

매년 새 학기가 되면 충격에 휩싸이게 만드는 것 같아요.

학부는 이렇게 노출이 되지만 

스포츠는 더 심하겠죠? 우리가 모르는 부분들이 되게 많으니까요.

고질적인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감독도 제작진도 또 국가 인권위원회도 정말 심도 있게 연구한 흔적이 보입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보는 분들 그리고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이고요.

또 현실과 차이가 없듯 표현된 장면들은 1등을 위해서라면 때려서라도 해내겠다는 썩은 악습, 뿌리 깊은 문제들을 보여주며 보는 도중 힘들게 하곤 했습니다.

이제는 그만 이제는 그만하면서도 결과주의에 물들어가고 있었고, 과정은 중요하지 않고 결과만을 위해 달리게 하는 우리나라의 문제를 그대로 녹여내며 관객들에게 딜레마에 빠뜨려버립니다

체벌을 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계속 말하면서 그 체벌을 어린 배우에게 하고 있고, 또 그걸 보여주고 있다...


때린다고, 맞는다고 그 상황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는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죠.

더 나쁜 상황을 만들어 낸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그랬기에, 광수가 중간에 때려준 그리고 바로 잡아주려 했던 자기를 잊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저는 말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고 생각을 했고

그동안 제가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문제들을 다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 또한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힘들어했으니까요.


극심한 무한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한번 봤으면 하는 영화였습니다.




겉으로 화려한 모든 상황들, 

하지만 그 뒷모습...


사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고, 너무 자세했던 이 영화,

빛나는 스포츠 스타, 그리고 그 이면의 가족, 또 뒷받침해주는 코치의 노력들 

알리고 싶지만 참는 관계자들

모두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어내 '4등'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국가 인권위원회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부분인 스포츠 인권을 정지우 감독이 그려냈습니다.


4등.


꿈. 목적. 그리고 현실.

 



18.04.2016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