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네, 끝이 없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있었다.
남들은 네살이면 깨지 않고 잔다던데, 우리 딸은 서너시간에 한번씩 깨서 나는 4년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사업은 겉으로는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고정비용이 너무 큰 탓에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았다.
남편과는 삐그덕 거렸지만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사이여서, 되도록 피하며 지냈다.
몸은 늘 아팠고, 늘 피곤했고, 늘 졸렸다.
시간이 좀 나면, 쉬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화려한 남의 인생을 구경하거나, netflix 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봤다. 늦게 자니, 늦게 일어났고, 아이 어린이 집도 늦게 데려다주니, 일을 늦게 시작했고, 그렇게 하루가 늘 늦게 시작되고, 늦게 끝났다.
집에 들어가면 피곤했고, 밖에 나와도 피곤했다.
술을 한번 마시면 죽자고 마셨다.
그래야 노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는 들어가기 싫었다.
그냥 다 피하고 싶었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데 도망갈 용기가 없으니, 남탓을 하며, 딱 해야할 것만 하면서, 그냥 살았다.
그 시절 나는, 그렇게 나를 학대했던 것 같다.
남들은 회사다니면서 일도 하고 애도 키우는데, 나는 그나마 시간이 유동적이라며 자위하면서, 나를 방치했다.
딸이 5살이 되던 해에 어느날, 나는 내가 나를 너무 함부로 대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내가 알아서 굳이 먼저 나를 낮추고 함부로 대했다는 것이 정말 충격이었다.
심지어, 33년동안 나는 그저 앞으로 내가 할 일이나, 내가 되어야 하는 역할에 대해 생각했지, 나에 대해서, 내 인생에 대해서 단 한번도 고민하지 않았다. 그게 정말 나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그렇게 나는 남탓을 했구나.' 생각했다.
그날부터 일주일을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미안해, 나야, 미안해, 나야' 하면서.
그날 이후, 내가 먹을 밥은 대충먹지 않고, 소중히 챙겼고 가능한 예쁜 그릇에 담아 먹었다.
시간 때우려고 드라마를 보는 대신, 운동을 하거나 무엇인가를 배웠다.
핸드폰을 보는 대신, 마사지를 하거나 잠을 잤다.
몇달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예전에는 일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하는지 고민했다면, 이제 일은 효율의 문제를 넘어서 절실한 것이 되었다. 잘 해 내야하는 것이지, 시간을 얼마나 투자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를 키워내는 일도 나에게는 무겁게 다가왔다.
오늘 한끼 아이가 밥을 잘 먹는 것, 오늘 하루 일찍 자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세끼를 먹지 않아도, 어떻게 하면 스스로 즐겁게 한끼를 함께 먹을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늦게 자도, 어떻게 하면 오늘 '행복하게 잠드는가'가 나에게는 훨씬 중요했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다가 오늘 또 느슨해진 나를 발견했다.
왜그런지, 이 찝찝한 우울감을 떨칠수가 없었다.
생리탓을 하기도 하고, 노화를 탓하기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삶의 태도가 문제였다.
사람이 참 간사한게, 인생이 잘 굴러간다 싶으면,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게 된다.
몇주 전부터 나는, 요새 배우는 중국어 수업도 빠지고, 쉬는 시간이 있으면 드라마나 보고, 어떻게든 애를 빨리 재우려고 하고, 대충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고르고 일기를 썼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이와 둘이서 게임을 하다가(요새 둘이 게임에 빠짐),
동아가 혼자 하는 샤워를 응원하고, 요새 유치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주었다.
지금 이순간에도 이렇게 음악을 들으며 하소연을 해대니, 인생이 풍성해진 느낌이다.
정말 나는 게을러서 긴장의 끈을 놓칠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