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서막
우리는 이제 마흔이 넘은 세명의 친구들이다.
우리는 청춘이 빛나던 20대부터 같은 회사 동기로 입사해서 매일 고난을 나누고, 욕을 하고, 술을 먹으며 20대를 지나, 30대를 지나 40대에 도착해버렸다.
함께 보낸 시간만큼 서로에게만큼은 방구석 여포처럼 으르렁 대지만, 이 무리만 떠나면 그 누구에게도 큰소리를 내지 못한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그 어느곳에서도. 왜냐면 우리는 쫄보니까.
사실, 우리에게는 90명이 넘는 동기들이 있었고, 그 중에 단 20명만이 동성의 동기들이었다.
이 와중에 술을 좋아하는 5-6명만 남았고, 그 중 3명인 우리는 스키를 잘 타지는 못하지만 몇년째 정말 열심히 타고 있다. 이정도 타면, 하늘이 도와서 잘 탈 법도 한데 아쉽게도 아직 하늘이 우리를 돕지 못했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세 친구의 무리중 유일한 기혼자이자 워킹맘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셋 중에 체력이 가장 좋고, 위가 가장 거대하다. 셋중 가장 먼저 퇴사해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보나는 우리 중 미세하게나마 가장 스키를 잘 타고, 술을 제일 잘 마신다. 그리고 아직까지 우리가 입사한 회사를 다니고 있다.
한나는 우리가 입사한 회사에서 퇴사해서 본인이 꿈에 그리던 외국계회사를 다니고 있다. 놀고자 하는 의지는 크나, 안타깝게도 의지를 담는 그릇이 작아 매일 체하고, 숙취에 시달리는 귀여운 친구다. 운동은 오로지 스키 하나만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 중 유일하게 레벨1이라는 스키 자격증을 섭렵하였다.
사실,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는 스키를 타지 않다가 2-3년전부터 스키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한나는 거의 30년이 넘게 스키를 꾸준히 타고 있었다. 사실, 한나와 나는 대학 동기이기도 한데, 회사 입사동기로 만나기 전에는 스키캠프 상급자반의 유일한 여자멤버로 서로를 알고 있었다.
아무튼 우리 중 스키 열정이 가장 큰 친구는 한나였고, 한나의 주도 아래 2024년 1월 어느날, 우리는 니세코에 가서 파우더 스키를 타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며 우리의 2025년 대망의 니세코 스키캠프를 기획한다.
2024년 설날에도 어김없이 스키를 타던 우리는, 다같이 콘도 쪽방에 모여 삿포로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남들은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며 우아하고 고귀하게 긴 여행을 준비하겠지만, 우리는 돈이 없으니까 알뜰살뜰 모은 마일리지를 써서 가야했다. 심지어 우리는 회사에 다녀야하니, 그나마 연휴가 가장 긴 설날연휴에 연차를 붙여 여행을 가야만 했다. 그래서 1년 전부터 2025년 1월 24일에 출발한다 했다, 25일에 출발한다 했다 2달을 쌩쑈를 하며 티켓을 예약했다 취소했다를 몇차례 했고, 결국 2025년1월24일 출발, 2월2일 귀국으로 일정를 확정했다.
비행기 티켓의 산을 넘자, 숙소 예약이라는 두번째 산이 우리를 기다렸다. 좋은 숙소를 예약하기 위해 2024년 7월부터 3개정도의 숙소를 미리 예약해두었다. 그리고 니세코 통인 내친구 여름이가 강추한 하쿠운소라는 숙소의 예약을 위해 2024년 9월1일 00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예약을 시도했다. 평소 황금손으로 불리우던 내가 예약에 실패했지만, 각종 콘서트에서는 손가락을 절며 고전을 면치못하던 한나가 3인 실 예약을 극적으로 성공했다. 우리는 모두 방방뛰며 다른 숙소들의 예약을 취소하며 내친구 여름이의 추천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하체강화훈련에 돌입했다. 매일 아침, 뵐클 스키아카데미 1일 선생님이었던 강지영 데몬의 지상훈련영상을 보며 앞으로 뛰고 옆으로 뛰며 하체근력운동에 매진했다.
그러다 드디어 한국의 스키 시즌이 시작됐다. 12월 첫째주 뵐클 스키아카데미 오픈과 동시에 우리는 온요네 스키복을 맞추고 스키 시즌을 시작하며 매주 스키를 탔고, 니세코의 파우더스키와 경사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 스키 아카데미 멤버이신 유하상박사님과 홍선의원장님의 지도 아래 눈 쌓인 웰리힐리와 용평에서 스키를 탔다.
한나와 내가 국내에서 스키를 타고 있을 때, 짬을 내어 체코 스키원정을 다녀온 보나는, 렌탈스키가 얼마나 구린지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는 우리의 스키를 이고지고 가겠다며 개 큰 스키백을 사게되었다.
이때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는데, 돈 몇푼 아껴보겠다고 3개의 스키를 2개의 스키백에 나눠담겠다는 획기적이고 구린 아이디어를 실천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출국 전날 내 스키는 보나의 집으로 보내지게 되었고, 한나와 보나는 출국 전에 미리 만나 3개의 스키와 부츠, 헬멧을 두개의 스키백에 나눠담고, 이고지고 끌고 출국장으로 오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