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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Jun 30. 2022

05. 방 한 칸   

프로젝트 [런던이라서, 그러나]


(1)

며칠 전, 아마존에서 방에 둘 트롤리를 하나 샀다. 타이트한 버짓으로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는 건 꽤 품이 드는 일이어서, 그리고 짐을 늘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구를 사는 속도는 어쩐지 더디기만 하다. 하지만 자꾸 널브러지는 짐들을 보니 안 되겠다 싶어 구매한 물건이었다. 가격은 30파운드, 약 5만 원. 이만하면 적당한 가격이다. 아마존엔 참 없는 게 없지. 색과 모양이 다양한 트롤리 홍수에 나는 침착하게 방을 스윽 둘러본 후, 이곳과 어울릴만한 색을 신중히 골랐다. 연한 머스터드색 당첨! 검은색이나 하얀색은 이 방과 어울리기엔 좀 진부하니까. 그리고 며칠 후 트롤리가 도착했다. 가구 조립쯤이야, 어렵지 않겠거니 호언장담하며 부품을 펼쳤는데 웬걸, 이번 건 쉽지가 않았다. 혼자 끙끙대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방 한편에 방치해두고 숨을 돌리니 어느새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미완성 트롤리를 보니, 조금 짜증이 났지만 이것도 곧 완성되겠지 뭐. 그래도 내가 이 방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즐겁기만 하다. 처음 이곳을 들어온 날엔 막막하기만 했는데.




두 번째 런던 살이가 시작된 올해, 나는 2월 1일에 이곳 배터시(Battersea)로 이사를 했다. 캐리어 두 개와 큰 회색 배낭, 그리고 쇼핑백을 이고 지고 들어왔던 하얀 방. 매트리스와 4단짜리 서랍장만 덩그러니 있던, 그 외의 가구들은 아무것도 없던 이곳은 꽤 썰렁했다.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자마자 두꺼운 코트 속으로 땀이 삐질삐질 흘렀던 나는 시트도 안 깔려있던 매트리스 위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누워 잠시 숨을 돌렸다. 과연 이 공간에서 내 몸과 마음을 편히 내려놓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여기를 내 공간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이토록 하얗기만 하다니. 거울도 없잖아? 나는 마치 이 방이, 아무것도 그려져있지 않은 하얀 도화지 같아서 난감했다. 동그라미를 그려봐, 보다 마음 가는 대로 아무거나 그려봐, 가 가끔은 더 막막한 법이니 말이다. 이사하자마자 다시 이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던 내 푸념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 거기에 곧 적응할 걸?"


생각해보니 이런 드로잉은 내게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 방에 대한 경험' 말이다. 온전히 나만 누릴 수 있는 공간의 의미는커녕 그곳을 꾸미는 것조차도 내겐 어색한 일이었다. 다시 이사 가고 싶다는 말은 아마 이곳을 내 공간으로 만들 자신이 없다는 뜻이었겠지.



(2)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집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별다른 의미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그냥 집. 가족과 함께 사는 공간 그쯤이었다. 아마 어려워진 집안 사정 때문이었을까. 우리 가족은 여러 번 이사를 했다. 새로운 곳에 이삿짐을 푸는 일은 솔직히 말하면 설렘보다 실망감에 가까웠다. 아파트에서, 단칸방, 단칸방에서 빌라, 그 뒤로 계속 여러 군데의 빌라들. 네 식구가 머물기엔 공간은 늘 좁고 낡았다. 내 방에 대한 로망 따위는 마음속에 구겨 넣고, 그저 엄마가 요리하는 부엌이 한 뼘이라도 넓었으면, 작아도 좋으니 거실이 있었으면, 우리 집도 침대가 있었으면, 하고 속으로 원하고 바랐다. 나이의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뀌고 나선 나는 본가를 빠져나왔다. 그곳에 웬만하면 안 가려고 했다, 아니 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는 기숙사부터 친한 언니 집까지 여러 군데를 옮기며 지냈다. 자유롭게 살고 있는 거라고 나를 달래 가며 거처를 옮기는 수고 따위는 무시했다. 그땐 남고 남는 게 체력이어서 사실 이사는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가뿐히 짐을 싸고, 버릴 건 버리고, 움직이고 움직이던. 나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 언젠가는 꼭 떠나고 말 거라고, 속으로 되뇌던 시절이었다.



그 언젠가가 진짜가 되었던 스물여덟, 나는 저 멀리, 런던으로 떠나버렸다. 과거의 모든 것들을 지워버리고 키 작은 동양 여자가 되어 다시 시작해보았던 인생살이. 낯선 그곳에서 나의 보금자리가 된 동네는 윔블던(Wimbledon)이었다. 아, 밝고, 안전하고, 없는 게 없는 내 런던 고향. 우연히 정착하게 된 46번가 가정집은 예상치 못한 선물과도 같았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내가 바라던 것이었다. 누구에게 신세를 지지 않고 내 힘으로 번 돈으로 집세를 지불하고, 당당하게 내 방이라고 부를 수 있던 방. 가족이나 룸메이트 없이 욕심껏 독차지해도 그 누가 뭐라 하지 않는 공간. 침대와 책상과 화장대가 있는 평범한 방, 그러나 결코 내게는 평범하지 않았던 방. 그 방은 주인아주머니의 취향대로 소녀소녀 했지만 아무렴 괜찮았다. 청소하기 불편한 카펫 바닥, 단조로운 가구들도 모두 다 괜찮았다. 처음으로 써보는 더블 사이즈 침대 위에 이 한 몸을 누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으니까. 분홍분홍 한 방에 짐을 풀고 나니 곤두서 있던 신경들은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고, 나는 어렸을 적, 마음속에 깊숙이 구겨 넣어둔 종이를 꺼내고 싶어졌다. 그리고 꺼냈다. 도대체 얼마만인지. 오랜만에 펴 본 종이는 누렇게 바래지도 않고 새것처럼 빳빳했다. 그리고 그 안엔 생경하지만 낯설지 않은, 별 거 아니지만 별 거인, 해보진 않았지만 꼭 하고 싶었던 것들이 쓰여있었다.



바질 모종을 사서 키우기. 그래서 토마토 파스타 위에 얹어 먹기.
뒷마당에서 아침 커피를 마시며 잠깨기.
스탠드로 내 방을 아늑하게 만들기.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기.
오븐 이용해서 요리 하기.
욕조에서 러시 입욕제 넣고 반신욕 하기.
내 방에 둘 꽃 사기.
 


내 보금자리를 요람 삼아 나는 종이에 적힌 글자들을 쭉쭉 지워가며 조금씩 달라지고, 새로워졌다. 주인아주머니의 취향이 잔뜩 묻어나 있던 그 방도 시간이 지날수록, 침대 옆의 한 구석쯤은 점점 날 닮아가고 있었다. 2년을 꽉 채워 살던 그곳을 떠나 난 귀국을 했고 어쩌다 보니 10년 만에 본가에 들어가게 되었다. 바깥에서 방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번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달까? 아버지 말대로 영국 갔다 오더니 애가 변했나, 본가가 다르게 보였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내 눈에 여기저기 보였다. 버릴 것과 낡은 것 투성이들. 그래서 어떤 날엔 5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 여러 장을 사 그곳에 물건을 잔뜩 버리기 시작했다. 고민도 하지 않고 버리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게 사람 사는 집구석이냐고. 좀 깔끔하게, 우리도 좀 사람답게 살자면서. 버리고, 정리하고, 또 버렸다. 아직도 바꿀 것 투성이지만 내가 그곳에 머무는 유효기간은 1년 반이었나 보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매가 맺힌 것 같다. 버리는 것을 아까워하던 아버지가 그의 공간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유지하는 걸 보니.




(3)


두 번째 런던 살이는 왠지 레벨이 올라간 느낌이다. 원래 그전의 안다고 자부하는 모든 경험들을 내려놓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니까. 내가 고른 하얀 방도 마찬가지였다. 분홍분홍 했던 방과는 전혀 다른 하얀 도화지. 오히려 누구의 취향도 묻어있지 않아서 더 어려운 곳. 막 이사했던 그날, 막막하던 내게 '자, 이제 이곳을 너답게 꾸며봐' 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일단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던 하얀 벽에 마음의 안정제들을 제일 먼저 붙였다. 친구들의 사진과 편지들, 사랑하는 친구의 드로잉. 우리 강아지 짱아와 같이 찍은 사진. 그다음 가장 먼저 필요한 것부터 하나둘씩 구비했다. 침대 시트, 전신 거울, 데스크, 행거. 방이 사람 살만 한 곳으로 바뀌어가니 막막함은 점차 사그라들고 즐거워졌다. 침대는 오른쪽에 붙이는 게 좋을까, 행거의 위치를 바꿔볼까. 데스크는 어디에 둬보지? 서랍장 위는 셀프 케어존으로 만들어야지. 포스터는 어디다 붙일까, 이 화병은 어디다 두지.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건축학자 윤현준은 이렇게 말했다. 공간은 기억의 총합이며, 공간에 애정이 드는 순간은 내가 그곳에 규칙을 만들 때라고. 나는 어떠한 규칙을 만들어가고 있는 걸까? 이 기억들의 총합은 어떤 모습을 띄게 될까? 이곳을 떠날 때쯤, 내 방은 날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방을 꾸미는 것이야 말로 달콤한 결과보다, 과정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건 결국 나 자신을 돌보고 가꾸는 시간들의 축적일 것이다.

며칠 전, 친구가 도와준 덕분에 드디어 트롤리 조립을 끝냈다. 드라이기, 요가링, 아침마다 먹는 사과, 자칫 방을 지저분하게 보이게 하는 짐들을 몽땅 트롤리에 넣고 나니 이제야 속이 좀 후련하다. 그러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전신 거울의 애매한 높이가 여전히 불편하다. 다음 달엔 거울을 올려둘 만한 베드사이드 테이블을 사야지. 그 위엔 룸 스프레이와 성경책과 노트를 올려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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