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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무 Oct 12. 2024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3번째 런던 집. 아늑한 거실과 널찍한 다이닝 테이블이 있는 키친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 이사 온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키친에 있는 커다란  밖으로 보이는 이웃집 커다란 나무는 지난봄 진한 분홍빛의 꽃을 맺었고,  자체로 너무 아름다운 우리  오브제가 되었다.  4월의 찰나가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보고 싶을 만큼 눈에 선했다. 어느새 계절은  번이 바뀌고 가을이 되었다. 꽃이  후엔  나무에 감흥이 떨어졌는데 9월의 끝무렵부터 점점 나뭇잎의 색이 변했다. 단풍이 들고 있는 거다. 가을이 오고 가는  키친에서 바로 지켜볼  있다니, 예상치 못했던 호사구나. 그래, 이사할  집을 아무리 찾아가서 살펴봐도 직접 살아봐야 알게 되는 집의 모습이 있다. 불편한 것도, 훨씬  좋은 것도.


초록에서 빨강으로 변하는  앞에서 정말 오랜만에  페이지를 열었다.  그런지 모르겠는데 일상이 불만족스럽거나  자신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질 때면 나는 글이 쓰고 싶어 진다. 얽힌 감정과 생각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일기장에 무언가를 빼곡히 적지만 어쩐지  공간은  다르게 느껴진다.


런던이라는 곳에서  지도 어느새 5년을  채워간다. 이렇게 오래 있을  몰랐는데. 영국에 가고 싶다고 꿈꿨을 , 여기서 사는  얼마나 재밌는지, 그리고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구체적으로 알았다면 나는 선택했을까. 직접 경험해 봐야 아는 것들, 그리고  경험 속엔 분명 좋은 선택과 좋은 것만 있진 않다는 것도, 이젠 너무나  알겠다. 이곳에 처음 왔을  그저 좋은 마음만 품었는데, 이젠 너무나 달라졌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고, 무엇이  즐겁게 했는지 알았기 때문일까. 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아직 남아있는  있어서, 나는 여전히 이곳에 조금  있기를 원한다. 그래, 이게  지금  마음이 원하는 이구나.


이런 마음을 가늠하기 어려워  자신을 다그치곤 했다. 자꾸만 흔들리는 마음을 남에게 보여주고  흔들리거나, 벽을 쌓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선을 넘어버리는 충고와 조언, 평가와 판단.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도 그렇게 들리는 말들에 지치기도 했다. 이럴   안으로 파고들어 내가 나와 대화하는 수밖에. 그래서  페이지를 열었다. 내가 나와 대화하고 싶어서, 자주 흔들려서 알아채기 어려운  마음을 똑바로 바라보고 싶어서. 겹겹이 여버린 마음을 글을 통해 마주하고 싶어서, 그래서 펜을 손에 쥐지 않고 대신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쏟아내는 게 아니라 바라보고 싶어서.


창문  나뭇잎은 초록과 빨강, 주황과 노랑이 아주 적절하게 섞여있는 지금, 10월의 중간. 언제쯤 완전히 붉어질까? 그리고 언제 떨어질까?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겨울의 모습은 어떠려나. 올해는 런던에 눈이  쌓였으면 좋겠다.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그땐  마음을   선명하고, 섬세하게 바라볼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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