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자국 더

in USA

by Mocca

파란만장한 하루가 지나고 날이 밝았다. 미국의 여름은 습하지 않고, 햇살이 따가운 날씨였다. 한국이었다면 여름에도 긴팔을 입는 나지만, 왠지 미국에서는 좀 더 과감해도 될 것 같아 한국에서 한 번도 못 입고 나갔던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밤에는 클럽과 펍의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시끄러웠지만, 날이 밝으니 그런 분위기는 없어지고 한적한 길가가 되었다. 중간에 가로질러가는 길에 공원이 있었는데, 도심 한복판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태닝을 하고 있었다. 워터파크에서도 잘 안 하는 태닝을 도심에 공원에서 하다니. 신선하고 그들의 문화는 꽤 쿨하다고 느껴졌다.


내가 머물렀던 이 동네는 미국의 연남동 같은 힙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동네였다. 벽에는 키스 해링이 떠오르는 그라피티가 잔뜩 그려져 있었고, 옆에서는 윗옷을 벗고 농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이거다. 내가 본 영화 속의 미국이란 바로 이거다.

미국의 감성을 한창 느끼며 걷고 있던 중, 한 홈리스가 '오늘 날씨 좋지 않아?' 이런 식으로 말을 걸었다. 순간 생각했다. '뭐라 하고 도망치지.' 그 이유는 홈리스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이유는 안부를 묻고 내가 말을 걸었으니 넌 나에게 돈을 줘야 한다라며 정당한 대가를 요구한다고 한다. 그래서 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좀 바빠서 미안'이란 말을 하고 무서워서 그 스트리트로는 지나가지도 않았다. 휴. 이렇게 처음으로 삥을 뜯길 순 없지.

그리고 대충 샌드위치를 파는 것 같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나는 어색하게 치킨 샌드위치와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밖에 엄청 큰소리로 지나가는 지하철, 농구를 하는 사람들, 말을 하며 걸어가는 미국의 10대들의 소리가 다시 한번 내가 미국에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해 줬다. 긴장감에 반강제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던 내 눈앞에 드디어 첫 미국에서의 음식인 치킨 샌드위치가 나왔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먹은 음식. 사진으로는 뭐 그럴듯해보일지는 몰라도 태평양 바닷물을 한 접시에 담아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그런 그림 같은 비주얼은 아니었다. 치킨 샌드위치를 아주 강한 불에 넣었다 뺀 듯한 비주얼이었다. 그래도 먹을 수 있는 거니까 파는 거겠지라는 생각으로 잘라서 입 안에 넣었다. 음. 역시 탄 맛이 난다. 하나를 다 먹었다가는 내일 죽어도 안 이상한 맛이었다. 탄 맛 때문에 쓰고, 짜고 그런 성인병을 불러일으킬만한 맛이었다. 그 레스토랑의 종업원은 나에게 다가와 음식은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영어 신생아였기 때문에 'Good~'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컴플레인을 잘도 거는 내가 참 우스웠다. 그렇게 12불짜리 성인병 치킨 샌드위치와 평범한 프렌치프라이를 먹고 다시 짐을 챙기러 숙소로 돌아갔다.


에어비앤비의 주인인 스테파니가 체크아웃 시간을 제한을 안 했기 때문에 나는 편안하게 5시쯤 기차를 타러 출발할 수 있었다. 전날의 충격과 공포가 담긴 지하철을 다시 타기에는 무리였다. 나는 처음으로 우버를 불렀다. 시작이 무섭다고 이 날을 시작으로 우버는 나의 발이 된다. 아마 우버에 400불 이상을 썼을 것이다. 그렇게 Union Station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내가 가본 기차역이라고는 서울역이 제일 큰 역이었다. 하지만 이 곳은 아주 긴 계단만이 존재했고, 또 캐리어를 집어던지듯이 들고 내려갔다. 내려가자마자 기차를 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상상 이상으로 규모가 컸다. 애플월렛에 담긴 기차표를 뚫어져라 쳐다보면 길을 알려줄 거라고 생각한 건지 기차표만 쳐다보며 승강장을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대충 눈치로 승강장을 찾았다.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건 눈치다.

기차에 탈 때도 같은 기차를 타던 어떤 백인 남자가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여기에서는 들고 도망갈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나는 그의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고, 고맙다고 말했다. 이미 난 길고 긴 계단에서 힘을 다 빼앗겼기 때문에 더 이상 들 힘도 없었다. 그렇게 도움을 받아 기차에 캐리어 보관하는 장소에 캐리어까지 넣었다. 무사히 제시간에 난 기차에 탔지만 기차는 제시간에 출발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빨리빨리의 민족인 한국인은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영어 신생아인 나는 물어볼 수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팝송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미국의 여유는 기차도 여유로운 것인가.라는 등등의 생각 말이다.

그렇게 약 30분 뒤에 출발했고, 속도가 느렸다가 빨랐다가 제 멋대로인 기차에 한창 신기해하고 있었다. 약 2시간 정도의 거리여서 7시쯤이 되었을 때 난 영어 발음을 못 알아 들어서 못 내릴까 봐 도착시간이 약간 지난 후 미리 캐리어를 꺼내 문 쪽으로 서있었다. 어찌 보면 속도가 제멋대로인 기차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한 건데 혹시 못 내릴까 서있었다. 여기서 가장 충격적인 것을 보았다.


미국의 기차 문은 수동이었다. 달리고 있는 기차의 문을 승무원 남자분이 직접 내려가서 손으로 열었다. 21세기에 태어난 나는 살면서 처음 본 수동문 기차였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전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기차 문은 수동이라니. 스파이더맨인 톰 홀랜드가 아이언맨을 처음 만난 것보다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기차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도착지에 내렸다.

캐리어도 기차 문을 수동으로 여는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 내렸다. 내가 도착한 곳은 나를 이 곳으로 부른 친구가 사는 Normal이라는 곳이었다. 확실히 시카고의 도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출구를 나와 서성이고 있었는데 익숙한 아시안이 한 명 보인다. 바로 나의 친구이다. 친구를 보자마자 나는 '이제 머무는 동안 죽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반가웠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으면 딱 이런 기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보자마자 친구에게 캐리어 하나를 넘겼다.

그렇게 친구의 집으로 가서 친구의 홈메이트들과 인사를 하고 밥을 먹으러 갔다. 그곳에서 본 친구의 모습은 한국에서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세상에 나 혼자 던져진 것 같은 미국에서 만나서 더 반가웠고,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너무 새로운 모습이었다. 한국말의 소중함을 친구를 만나 깨달았다. 그렇게 한국말의 소중함을 6시간 정도 느끼고 미국에서의 긴 여정 중 3일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