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58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818
이번 주제는, 제목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을 듯하여, 사전 설명이 좀 필요할 듯합니다. 외국에 나가게 되면, 즉, 외국인들이 자국민인 외국에 한국인들이 나가서 살게 되면 일종의 한국 커뮤니티가 형성되게 됩니다. 그 흔한 코리안타운이 그러하고, 코리안 타운이 없는 나라의 경우에도 주재원들이나 한국에서 막 외국으로 살러 오게 된 사람들이 살 곳을 찾을 때 늘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 어디인가요?’라는 대답으로 정해지는 지역이 바로 그 커뮤니티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고 이전에 한번 다루었던 주제, 한인교회라는 이름의 기묘하고도 오묘한(?)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주제에 대한 사전설명이라더니 무슨 말이냐구요? 이번 주제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에 한국인들만 모여사는 이들의 특징이 도드라짐에도 도드라져 보이지 않을 때, 그것이 외국에 던져지게 되면 명확하게 도드라지는 특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외국인들의 눈에는 더할 나위 없이 기이하기 이를 데 없는, 외국까지 나와서 사는 한국인들이 왜 그렇게 자기 나라 사람들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 난 사람들처럼 자기들끼리 싸워대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특징은 외국에 나가 사는 한국인들의 특징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특징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나와 살면서 그렇지 않은 생활방식을 가진 외국인들의 눈에 너무도 명징하게 드러나는 특징임을 사전에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무려 20여 년 전인 2004년 9월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70개국의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9,939명을 대상으로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는 무엇인가”라고 묻자, ‘패거리문화’라고 대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던 것만 보더라도 외국에서 한국인들이 보인 ‘특징’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0258729
외국인들의 눈에도 너무도 신기한 이러한 행태를 정리하는 외국 한국인 커뮤니티의 명언(?)
“한국인의 적은 다름 아닌 바로 한국인”
외국에 사는 한국인 커뮤니티의 카더라 통신에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종말을 맞는 사건들을 보면, 대개 별것 아닌 것 같은, 서로 간에 헐뜯는 말에서 시작되는 경우를 많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개인대 개인 간의 싸움이나 다툼이 아닌 무리를 지어 무리가 한쪽을 린치하는 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요. 이는 한국의 학교에서 힘없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진아이들이 혼자가 아니라 무리를 지어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경우도 유사한 케이스에 해당됩니다.
사회학적으로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위에서 보이는 ‘패거리 문화’는 여러 가지 이유로 생겨납니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인데요. 내가 혼자서 나쁜 짓(동급생을 괴롭히거나 범죄행위를 하는 것)을 할 때 나뿐만 아니라 곁에 있는 이들도 함께 공범으로 만들어 공범의식을 통해 내 죄책감을 나누려고 하는 악한 본능(?)이 꿈틀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나쁜 짓을 여럿이 하게 되면 나는 주동자가 아니었다고 포장하려는 나쁜 마음도 거기에 작용한다고 볼 수 있죠.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이러한 패거리 문화의 안 좋은 모습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재현되곤 하는데요. 일단 주동이나 선동을 하는 이는 자신감이 없거나 혼자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심리상태라서 주변을 선동하거나 자신의 패거리를 만들어 자기 자신의 몸집이 커지기를 끊임없이 시도합니다. 자신이 혼자서 무언가를 계획하거나 자신의 명확한 대의명분이나 논리를 가지고 상대를 반박하거나 공박할 수 없는 사람들이 주로 벌이는 행동패턴으로 이미 심리학에서는 이것이 병리적인 문제임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대부분 정신병의 이력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요.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그들에게 선동되는 이들의 심리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동하는 자의 연약하고 비열한 심리는 그렇다 손 치더라도 그들에게 선동당하고(실제로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잘 알면서도 선동당하는 척), 나중에 더 나서서 행동대장이나 엑스트라를 넘어서 무리를 지어 나대는 그들의 심리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심리는 인간의 일반적인 본성과는 조금 달라, 흔히 말하는 대중심리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동하는 자들이 이용하는 첫 번째 방식은 무리를 짓지 않으면 그 무리에서 자신이 왕따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협박하는 패턴입니다. 즉, 자신들의 무리에 속해있으려면, 그리고 다음 공격 타깃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방식의 가스라이팅을 하는 것이죠.
실제로 이것을 가장 적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학부모입니다. 자기 아이가 문제가 생겼을 경우,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다니는 학부모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엄마들을 선동하는 것으로 학교나 상대 아이, 혹은 부모를 압박합니다. 예컨대, 자기 자식이 잘못한 행동이 있어 선생님이나 학교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그녀는 버젓이 다른 학부모를 선동하여 되레 선생님이나 학교를 공격하고, 단체행동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보이겠다며 후안무치하게 목소리를 높입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그녀의 행동에 동조하는 학부모들입니다. 선동을 하는 이들은 언제나 당근과 채찍을 함께 적절히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아이가 선생님에게 안 좋은 대우를 받는다’라던가 ‘이번에 이 선생님의 수업을 거부하지 않게 되면 당신의 아이를 포함하여 우리 아이들의 내신이 확 깎이고 담임 평가도 생기부에 안 좋게 기록될 수 있다.’ 등이죠. 그리고 당근인지 채찍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말을 남깁니다. ‘이번 우리 단체 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엄마들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페널티를 적용하겠다. 목소리를 내지 않는 자와 함께 갈 수 없지 않은가?’라고 말이죠.
이것은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던, 강남에서 한때 일하는 엄마들을 왕따 시키며 학원이나 입시정보를 공유하는 전업주부 스크럼에서도 자연스럽게 일어났던 방식인데요.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고급정보이고 해당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대학입시에 결정적인 불이익을 받게 되는 양 행동하고 믿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조선시대 내내 나라를 좌지우지했던 당쟁과 사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조선시대 당쟁과 사화를 분석하면서 당시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그리고 그들이 판결자인 왕에게 서로를 비방하며 올렸던 상소를 살펴보게 되면 이름만 대면 알 수 있을법한 가문의 유명한 인물들이 이렇게까지 조악하고 유치하게 상대방을 음해했는가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힘없고 자존감이 낮으며 정의는 고사하고 양심조차 없는 대다수의 소시민이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서 보이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그 원인분석과 대안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으나, 만약 그 부모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줘야 할 학교에서 처음 잘못된 그런 행태들이 있었을 때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저열한 짓이고 통용될 수 없는 일인지를 단호하게 단죄하였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거짓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는 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쁜 짓을 하든 말든 세월은 무심하게도 계속해서 흘러갈 것입니다. 언제나 후회는 때가 늦었을 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만, 후회된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고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만이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회적 분위기가, 혹은 대세가, 혹은 다들 그렇게 사니까 등등의 구차하고 궁색한 변명을 입에 달면서 진실을 회피하게 된다면 결국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맞땋뜨렸을 때 당신을 도와줄 사람은 그때의 당신처럼 당신을 외면하게 될 겁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