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64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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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어디에서나 공통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살 집이 있죠. 집이 없는 사람은 없죠, 다만 부동산의 개념에서 온전히 자신의 돈으로 자기가 산 집인, ‘자가(自家)’가 없는 사람들이 많을 뿐인 것이죠. 전 세계적으로도 부동산 문제는 공통적으로 벌어집니다. 그것이 선진국의 인구가 조밀한 수도를 중심으로 한 대도시 위주로는 더더욱 크게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모두가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에서 살고 싶어 하고, 비싼 땅값과 월세를 부담하면서 자기 집을 사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심지어 상상도 못 할 만큼의 월세를 주면서 살 엄두를 못 내기 때문에 점차 그 중심에서 멀어져 가게 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한국은 앞서 여러 주제에서 살펴보았던 이유로, 그러한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나라 중의 하나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특히나 젊은 세대들은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집을 사는 일이 불가능해진 시대가 되고 말았죠. 그래서 결혼을 하기 전에 부모가 자식에게 집을 턱 하니 사줄 수 있는 상황이 된 이들 말고서는 평생 번 돈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도 수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버젓한 집 한 채 장만하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죠. 그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전세라는 제도가 한국에만(물론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몇몇 나라가 있기는 합니다) 있는 것처럼 한국에만 특히나 젊은 세대들의 집 구매 혹은 투자를 조장하는 대한민국의 신조어가 탄생하여 외국인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곤 합니다.
바로 ‘영끌’이라는 신조어가 바로 그것인데요. ‘영끌’이란, 본래의 사전적인 의미는 ‘본연의 몸매를 감추고 매력을 최대한 부풀리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는 다소 생소한 뜻이었습니다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의미는 주택담보대출이니 신용 대출등 공식적인 대출부터 각종 사채에 이르기까지 대출하거나 부모나 친구로부터 돈을 꾸는 것까지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기세로 모든 자금을 당겨서 그것으로 무리하게 집을 사거나 주식 등의 투자 상품에 몰빵 하는 일을 뜻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투자처는 다름 아닌 집이구요. 한국의 영끌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것을 전 연령층에서 하는 것이 아닌 이른바 MZ세대로 대비되는 20~30대의 젊은 세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결혼적령기의 나이이기에 살 집이 필요하다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돈을 모으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그 나이대가 당연히 주류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외국인의 눈으로 밖에서 이 상황을 보게 되면 영끌 현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한두 부분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외국인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부분은, 왜 돈이 없는데 무리하게 남의 돈을 끌어와 허리가 휘는 이자까지 감당하며 집을 등에 짊어지고 사는 달팽이로 전락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돈이 없으면 그 형편에 맞춰 그냥 그냥 그 경제 수준에 맞춰 집을 구하는 외국인들의 실리주의와는 상당히 많이 어긋나있는 행태이기 때문에 그런 의문은 그 폭이 깊어만 갑니다. 게다가 그 집을 사서 정작 들어가지도 못하고 일단 다른 사람이 살게 전세를 주는 방식으로 투자비용을 최소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의문은 이제 의아함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직접 들어가서 살 것도 아닌 상황에서 자신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이자만을 갚아가면서 집을 사는 이유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죠.
대한민국이 가까스로 IMF의 위기에서 조기 졸업장을 따내며 경제가 회복되었을 때, 한국은 그야말로 웰빙족의 전성시대였습니다. 외모를 꾸미는데 돈을 아끼지 않아 결혼하고도 처녀처럼 꾸미며 사는 미시족, 결혼한 남자가 미혼처럼 보이고자 자신을 꾸미는데 투자하는 우모족 등이 경제위기를 벗어나 바뀐 소비생활행태를 반영했었습니다. 당시 그들의 우선순위는 결코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이 아니라 당장 남에게 보일 수 있는 그럴싸해 보이는 외제차였고, 당장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경향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시대적 흐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과 관련하여 신조어 ‘영끌’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부동산의 호황시대가 아닌, 2017년 부동산 광풍 즈음 정부의 8.2 부동산 정책에 의해 LTV와 DTI 등 규제로 대출이 어려워진 바로 그 상황이었습니다. 단어의 뜻을 잘 보면 그도 그럴 것이, 대출이 원활하고 어디서고 쉽게 돈을 끌어올 수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표현의 신조어는 나올 필요가 없었겠죠.
즉,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부동산을 쉽게 살 수 있는 시장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투자가 몰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사회심리학적으로 살펴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부동산 광풍을 비롯해 빚투라고 통칭하는 묻지 마 투자가 대한민국을 몰아치는 시기의 공통적인 특징이 보인다는 것이죠. 그것은 바로 주변 사람들이 집을 사서 짧은 기간에 엄청난 시세차익을 누리는 에피소드들이 여기저기서 터진다는 공통점입니다. 주식이나 코인도 정점을 치달을 때의 주변 상황을 살펴보면, 나만 빼고 모두가 투자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루에 몇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씩을 모두 챙겨가는 듯한 현상들이 영끌과 빚투로 사람들을 조금씩 몰아가게 됩니다.
먹지 않고 쓰지 않은 채 모으더라도 도저히 평생 가야 집을 살 수도 돈을 뻥튀기할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들은 거기서 불안감을 넘어 심리적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즉, 영끌과 빚투는 패닉상태에서 소비하게 되는 이른바 패닉 바잉(panic buying)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실제로 전국의 집값이 최고점에 도달했던 2022년 과도한 은행대출을 일으켜 집을 산 사람들의 수만도 139만 명에 이른다는 공식 통계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합니다.
엊그제, 그러니까 2024년 6월 기준으로 한 달 새 주택담보 가계대출은 5조 원 가까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두 달 새 9조 원 가까이 늘어난 것을 보면 잠잠했던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다시 ‘영끌’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예상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이 인하 시점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최근 2년여간 주담대 금리가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바람잡이들의 언론 플레이도 한몫을 한 것이겠지요.
영끌족들의 평균 대출금액은 자신의 소득보다 2~3배 정도가 넘는 상황이라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4~5명 중의 1명은 영끌족이며, 아예 빚이라고는 없는 젊은이들을 빼더라도 일인당 한국 젊은 세대들의 빚은 평균 1억 1,511만 원이라는 통계가 나온 것이죠.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영끌세대가 현재 MZ 세대일 뿐, 베이비붐세대부터 X세대를 거쳐 현재의 MZ세대가 가지는 세대별 특징과는 무관하게 ‘영끌’ 민족의 특성에는 하나같이 공통된 한국인으로의 특징이 발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름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을 넘보는 수준까지 올랐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영끌족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그전 세대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선진국의 국민적 특성은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입니다.
베이비부머시대의 부모들은 오로지 자신의 영혼을 모두 끌어다가 자식의 성공을 위한 뒷바라지에 올인을 했었습니다. 한국인의 특성 중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닌 집단, 그리고 그 집단은 나의 가족인 경우 당연한 부모로서의 희생이 상식처럼 통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대는 바뀌었지만, 젊은 세대들은 역시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갖기 위해서는 희생을 할 수밖에 없는 공식에 동의한 듯 버거운 이자를 감당하고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는 것에 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이것은 한국인의 가치가 집단주의이면서도 개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면서도 특정 목적을 위해서는 희생과 목적의식이 맞닿아 있다는 미묘한 관계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