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한국 나이’는 한 살이 더 많은 건가요?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77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882


한국 사람들이 나이에 민감(?)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앞서 충분히 다룬 바 있는데요. 근본적으로 세계인들이 한국인을 만났을 때, 우연히 나이를 알게 되었을 때, 출생 연도에 따라서 외국과 한국의 나이 계산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신기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썼던 나이는, 태어난 해의 나이를 1살로 삼고 새해 첫날마다 한 살씩 더해서 나이를 세는 나이였기 때문에, 19세 이상인, 20살이 되는 자가 성인이 되는 셈법이었습니다. 나이를 세는 단위인 ‘~살’이라는 용어도 한 해를 의미하는 ‘설’에서 왔다는 견해에서 보면 태어난 지 이미 한 해가 지났으니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계산법이 나온 셈이죠. 한국인들에게는 이 당연하던 세는 나이가 서양인들과 나이를 말하면서 출생 연도에 따라 나이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는 1~2살의 차이가 생김에 서로 당혹스러워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었는데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한국에서는 태어나자마자 1살이라고 시작하는데 반해, 서구에서는 태어난 지 1년이 지나야 1살이 되었다고 카운팅을 한다는 점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서구에서는 태어나서 다음 생일이 오기 전까지는 나이가 없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한국과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search.pstatic.jpg

그래서 본의 아니게 한국에는 나이를 지칭하는 다양한 개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만 나이’라고 하여, 서구의 일반적인 계산방식대로 출생일 기준을 0살부터 시작하여 첫 생일에 1살이 된다는 방식으로 하는 것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죠. 또 ‘연 나이’라고 하여 한국의 공식적인 일부 법령에서 기준으로 삼고 있는 나이가 있는데요. 이는 태어난 생일과 관계없이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빼서 나오는 것을 나이로 삼습니다. 이는 <청소년 보호법>, <병역법> 등 일부 법령에 적용하기 위한 편의를 위해 설정된 개념입니다.


여기서 끝이냐? 아니죠. 전 국민에게 끊임없이 영업하고 있는 보험사가 주체가 되어 만든 이른바 ‘보험 나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는 보험가입 시점에서 피보험자의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생년월일을 뺀 다음 6개월 이상이면 1살을 더하고 그 미만일 경우에는 1살을 빼서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내는 보험료의 차이에서부터 보험이 가입되고 안되고의 나름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전 국민이 한 개 이상의 보험을 들고 있는 보험천국 대한민국에서는 이 역시 중요하지 않다고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정신 나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후, 기존 국회의 논의와는 별개로 뜬금없이 나이를 합리적으로 바로잡겠는 것을 공약이라고까지 내세우며, 2023년 6월 28일부터 '만 나이' 제도를 시행한 것처럼 알려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만 나이 기준은 새롭게 규정된 것이 아닌, 기존의 규정을 명확히 다듬은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법적인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면 공적으로는 1962년 1월 1일 시행된 민법에 따라 이때부터 만 나이가 표준이라고 규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1912년 4월 1일 시행된 ‘조선민사령’에도 만 나이가 표준이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같은 동양임에도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의 세는 나이가 아닌 서구의 만 나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야 원래의 세는 나이 방식으로 서로 나이를 계산했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는데, 국제화 세계화를 거치며 다른 나이 계산방식의 나라와 교류하고 세계에 나가서 나이를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서 “한국 나이로는~”이라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설명을 하고 듣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 나이는 0살이라는 출발점을 두지 않고 1살이라는 출발점을 두는 차이를 갖게 되었을까요?

search.pstatic.jpg

이 질문에 대한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견해 중에는, 의외의 ‘태교’라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인간이 아이를 뱃속에 두고 태어나기까지의 10달간의 기간을 이미 생명이 생긴 순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라고 보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태교인데요. 이미 뱃속의 아이가 엄마와 똑같은 공간에서 모든 것을 듣고, 보고, 느끼고 하기 때문에 그만큼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아이를 가진 순간부터 조심해야 한다는 한국의 전통적 사고방식이 바로 ‘태교’입니다.


이 태교의 개념에서 본다면, 아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생명을 얻기 시작한 순간이 0살인 것이고 세상에 나오면서 열 달을 준비하는 과정을 거쳤으니 그만큼의 나이를 계산해 준다는 차원에서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뜻 과학적이라고 보이는 이 견해는 오히려 비과학적인 근거일 뿐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임신 기간자체가 꽉 찬 1년도 아니거니와 한국만 태교의 개념에 의해 신생아가 생명을 얻은 시점부터 인격체로 본다는 설명은, 마치 서양에서는 출생 시점부터 나이를 계산하니 태아시절은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식의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에 잘못된 오해라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죠. 그 근거로, 동아시아권에서는 낙태를 죄로 여기지 않았던 반면에, 고대 로마법에서는 200년경 세베루스 황제 시대부터 낙태를 죄로 보고 처벌하기 시작하였고, 중세 교회법에서도 (생명 부여 시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지만) 신이 부여한 생명에 대한 도덕적 죄악으로 간주했다는 점을 듭니다.

search.pstatic.jpg

거기에 더해 이런 식의 설명이, 한국식 나이가 1살부터 시작되는 이유는 될 수 있어도, 연초 출생자는 거의 완전히 1년 동안 1살인데 그런 논리대로라면 연말에 태어난 사람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2살이 되어버리고 마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즉, 한국식 나이는 태어나서 1년을 꽉 채우고 한 살을 더 먹는 방식이 아니라 해가 지나면 한 살을 더해버리기 때문이라는 이유에 대해 논리적인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는 맹점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식 나이에 대한 또 다른 견해로, 그 이유를 동아시아권에서 0(zero)의 개념이 희박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설명이 등장하게 됩니다. ‘0’이라는 개념자체가 없었던 것까지는 아니지만, 아라비아 숫자 중에서는 만들어진지 400년밖에 안 되었을 정도로 비교적 신생(?)에 해당하는 숫자이며, 동아시아권에서는 원래 대응하는 한자조차도 없다가 서양의 수학이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零’ 혹은 ‘空’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존재하지 않는 숫자를 나이로 셀 수조차 없었기 때문에 숫자의 첫 개념인 1살부터 시작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물론 이 칼럼에서 문화와 역사적 상식을 소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닌 것은 잊지 않으셨겠죠? 여타의 이유로 한국식 나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한 살이라는 점과 같은 동양임에도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벌써부터 만 나이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만이 계속해서 한국식 나이를 고수하게 되었던 것에는 다른 한국인들만의 사정과 특성이 깔려 있다는 것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 이 글의 목적이죠.


전술한 바와 같이 존비어 문화와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사회생활의 기본을 이루는 한국사회에서 나이를 가장 먼저 확인하고 그렇게 관계를 설정하는 것에서 인간관계가 시작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해하셨을 텐데요.

search.pstatic.jpg

이러한 과정을 거치기 위해 한국인들에게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생기는 학교라는 조직문화에서 1학년은 기본적인 한국 나이로 8살이라고 계산을 하는 기준 잣대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 나이보다 먼저 학교를 들어간 이른바 ‘빠른’이라는 개념이 붙으며 족보가 엉키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말이죠.


그렇게 되면 중학교 입학하는 1학년은 14살인 것이고, 고등학교 입학하는 나이는 17살이라는 기준점이 확고하게(?) 잡히는 이치입니다. 당연히(?) 대학을 입학하는 신입생의 ‘한국식’ 나이의 기준은 성인이라고 사회적으로 통칭하는 20세가 되는 것입니다. 그 정규교육의 학생 학년과 한국식 나이기준은 나이가 들어서도 몇 학번인지를 묻고 그 학번이라면 나이가 몇 살이겠구나 하는 것을 따로 묻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빠르게 상대방의 나이가 도출되고 그것으로 관계의 설정을 따지게 되는 것이죠.

search.pstatic.jpg

성인인 20살부터 술과 담배가 허락되고, 19세 이상 관람불가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이 학년에 맞춘 한국식 나이가 결부되어 고등학생까지는 성인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고 대학생부터는 성인으로 인정되어 불과 한 살 차이임에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허용도의 범위가 확 달라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렇게 결정된 한국식 나이의 편리함(?)때문에 한국에서 ‘서열문화’가 더욱더 공고해졌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만 나이로는 한 학급에서도 한 살이나 심하게는 두 살의 차이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나이라는 기준에 별로 큰 관심을 안 두어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를 사귀기가 용이한 반면, 한국식 나이는 그러한 자유로운 분위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설명인 셈이죠.


참으로 신기하게도, 학교와 상관없이 말년의 노인이 되더라도 한국에서는 다툼이 발생하고 말소리가 커지게 되면 바로 “너 몇 살이야?”라는 뜬금없는 호구조사가 진행되곤 합니다. 여기서 만 나이로 대답하는가 한국식 나이로 대답하는가의 차이에서 한두 살이 확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싸움의 향방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search.pstatic.jpg

해외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어만 잘한다고 한국인을 이해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 능청스럽게 “저 토끼띠인데요.”정도는 해야, 아 얘는 외국인 수준을 넘어서는 한국의 이해도를 가지고 있구나 하는 인식을 받게 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실 수 있겠죠?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888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