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76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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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우리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특이하게 여기는 사항 중에서도 한국의 카페나 공공장소에서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두고 자리를 맡아도 아무도 그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 치안이 정말로 잘 되어 있는 안전한 나라라고 칭송(?)하는 현상의 이면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해당 내용을 분석하면서, 실질적으로 한국에서는 카페는 물론이고 가게 앞 골목골목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통해서 모든 범죄장면들이 실시간으로 증거수집이 되기 때문에 함부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려고 해도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보다 훨씬 선진국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프랑스의 파리나 이탈리아의 로마 등지에서 판을 치며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소매치기들은 유럽의 선진국들이 그 저렴한 CCTV를 설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안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어차피 소매치기들이 CCTV에 찍힌다고 하더라도 신분자체가 등록되어 있지 않은 망명인이거나 천애고아출신의 기록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라는 등의 여러 가지 구체적인 이유에서 차이점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결국 마스크와 복면을 쓰고 범죄를 저지른다면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킬러라고 하더라도 도저히 잡을 길이 없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30여 년 전이나 된, 중국 상하이에 잠시 머물렀을 때의 일입니다만, 일반 가정집에 잠을 자고 있는데, 버젓이 어린 소년으로 보이는 두 도둑이 집을 털어가는 것을 현장에서 잡으려고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과 비교하면 CCTV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방범 시스템조차 없던 상황이기도 했지만, 내국인이어도 심드렁했을 공안들이 하물며 피해자가 외국인들일 경우 중국 공안들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아 버젓이 그들을 잡을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을 기억합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뭐가 달랐을까요? 중국의 일부이면서도 굳이 자기네가 나라라고 우기는, 한때 싼 맛에 한국인들이 많이 찾았던 차이니즈 타이베이도 마찬가지인데요. 예컨대, 수많은 한국 지방도시에서 그곳을 여행 간 이들이 현지인들과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당연히 한국 관광객이 무비자로 렌터카를 사용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대인사고가 99%입니다.)에 현지 경찰은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말도 안 되는 명분 하에 제대로 형사조치를 통해 가해 운전자들을 처벌한다거나 그것을 근거로 한국 관광객들이 민사적인 보상을 받는 일은 5%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임을 경험자들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자국민이든 외국인이든 결국 치안과 관련된 가장 큰 관건은 경찰에서 해당 범죄자들을 수사해서 검거하는 이른바 검거율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 결국 그 도시와 나라의 치안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뺑소니 범죄. 이 뺑소니 범죄의 검거율은 대한민국에서는 100%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이 글의 표제어에 등장한 CCTV와는 또 다른 맥락으로 움직이는 전 국민 감시카메라인 차량용 블랙박스의 영향력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자동차 보험을 가입할 때조차 블랙박스가 장착되어 있으면 할인율을 더 가산해 줍니다. 한국의 아줌마들이 안방에서 수백억씩 수익을 올려주는 홈쇼핑에서조차 블랙박스는 버젓이 방송을 통해 매진임박이라는 문구를 팍팍 날립니다.
전방카메라는 물론이거니와 후방카메라에 최근 블랙박스의 진화는 사각지대까지 모두 찍히는 것을 자랑하죠. 넷플릭스 등의 OTT는 물론이고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전 세계인들을 TV앞에 앉힌 한류 콘텐츠를 보면, 범죄 스릴러물에서 형사가 수사를 하는 기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주변 차량 블랙박스를 요청해서 증거자료 확보해!”
맞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차량에 블랙박스가 장착되지 않은 차는 찾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보험료를 할인해 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원론적인 부분부터 생각해 볼까요? 굳이 보험사에서 차량에 블랙박스를 장착했다고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오늘 이야기하려는 한국인의 기질과 관련된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교통체증의 천국(?)이 되어버린 원흉인 대한민국의 자동차의 수와 증가추세를 살펴본다면 모든 자동차가 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그 모든 사고에 두 보험사의 직원이 현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차량수만큼 어마어마한 보험사의 수익도 늘어가지만, 사고가 늘어가고 보험사에서 지불보증해줘야 하는 비용이 정비례식으로 늘어난다면 보험사가 웃을 수만은 없겠지요. 그래서 블랙박스가 없던 그 시절, 쓸데없는 실랑이를 통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면 그야말로 답이 없어지는 상황인데, 블랙박스 영상으로 객관적인 증거가 버젓이 있다면 보험사간의 분쟁의 시간과 비용이 훨씬 줄어들게 된 거죠.
이것은 보험사의 실리만을 보장하기 위해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성격이 급한 한국인들은 차사고가 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싸움이 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블랙박스가 생활화되기 시작하면서 현장에서 차를 세우고 서로 누가 잘못인지를 뒷목 잡고 싸우는 일이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두 차의 블랙박스 영상이 증거로 버젓이 있으니 그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경찰과 보험사에서 명확하게(?) 사안을 정리하게 된 거죠.
흔히들 법정다툼인 소송이 증거주의라고들 말합니다. 서로의 말이 맞다고 싸우는 사람들도 변호사를 통해 최대한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를 증거로 제출하여 법원의 판단을 받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의 최종 다툼의 보루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당장 누가 잘못한 것인지를 객관적이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 확인받고 싶어 하는 심리와 그 과정에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명백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인의 성향과 맞아떨어진 것이 바로 차량용 블랙박스의 일반화를 이끌게 된 것이죠. 물론 주차 중인 블랙박스의 화면이 골목골목에 배치되어 한국의 치안을 전 세계 최고 안전한 나라로 끌어올려준 것은 덤이겠고요.
이것은 한국인들의 통화녹음 경향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한국의 현행법상 통화 중 대화 당사자가 본인일 경우에는 통화 상대방의 동의를 얻지 않더라도 녹취가 가능하며 그 녹취는 법정에서 효력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다른 제삼자의 대화를 몰래 녹취하는 경우에는 불법이기 때문에 증거력이 없지만, 당장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굳이 상대방과의 통화를 녹취하는 이유가 뭘까요? 심지어 아예 모든 통화를 녹취하도록 설정해 두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명확한 증거가 아니고서는 쉽사리 자신이 그런 언행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꼼짝없이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잘못을 인정하게 만들려면 내가 그 증거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인식이 이 행동의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상대방을 믿지 못한다거나 사회가 불신으로 가득 차있다는 논리와는 조금 다르게 보아야 합니다. 만약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 가득한 사회라면 공권력인 경찰이나 재판을 주재하는 사법기관을 불신해야 하는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한민국에서 뺑소니범은 반드시 잡힌다는 치안논리와 다른 사람의 물건을 몰래 가져가더라도 CCTV와 블랙박스의 영상으로 현행범과 똑같은 최후를 맞게 된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조금 슬픈 이야기 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이 치안이 안정되고 안전한 나라라는 인식의 근간에는 한국인들이 너무도 선하고, 다른 사람의 물건에 탐욕스러운 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CCTV와 블랙박스, 그리고 곳곳에서 빵빵 터지는 와이파이를 통한 구글 타임라인 등을 통해 단순한 범죄행위조차도 불과 며칠이 지나기 전에 검거된다는 경험칙의 결과물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공무원이나 판매원, CS부서의 콜센터 직원 등이 내가 통화상으로 이야기한 내용이 녹취로 남는다는 사실은 그들이 반강제적으로 자신이나 자사의 이익을 위해 함부로 거짓말을 하거나 감언이설을 할 수 없도록 원천봉쇄를 하는 기술적 배치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빨리빨리’로 설명되는 급한 성향과 시비를 확실하게 가리기 위해 법원까지 가지 않더라도(혹은 법원에 가는 것을 전제로 해서) 객관적인 증거를 내가 이미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상대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쓸데없는 다툼이나 논쟁을 없애버리게 된 새로운 한국인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경찰이나 법원, 혹은 보험사, 관공서 등등에서 반대로 진상을 피우는 이들이 말을 바꾸거나 하는 것에 대해 명확한 증거를 내밀어 그들의 억지주장을 원천봉쇄하겠다는 흐름과 맞물리면서 비논리적인 우김이나 드러눕기 싸움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외견상으로는 합리적인 대한민국으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SNS에 올리기 위해 어딜 가나 셀피를 찍고 그것을 기록하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문화는 이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니 이 부분은 따로 뒤에서 논하기로 하죠.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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