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101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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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가 넘는 한국인의 특징에 대한 에피소드를 언급하면서 음식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적지 않은 포션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까지 이 칼럼 시리즈를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아주 잘 알고 계실 듯합니다.
굳이 새삼스럽게 강조하지 않더라도 의식주가 그것을 공유하는 민족의 특성을 드러내는 아주 좋은 바로미터가 된다는 것은 문화인류학이나 사회학을 공부한 이들에게는 기본 상식 중에서도 기초에 해당하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시대를 거듭하면서 공유해 온 문화가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사는 공간에 묻어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제 이 칼럼이 100회를 넘겼으니 조금은 상급 단계의 학습과정으로 진화한 논의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음식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요소가 아닌 이른바 음식 궁합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개념에서부터 한국음식만이 가지고 있는 음식 조합(하모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한국인이라면 너무도 쉬운 퀴즈죠. 라면을 먹을 때는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할 반찬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김치’라는 대답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편의점에서 사 먹는 삼각김밥은 컵라면과 당연히(?) 함께 먹는 조합을 이룬다고, 한국인들은 생각합니다. 치킨과 함께 해야 하는 음료는 맥주라고 공식처럼 만들어(?) ‘치맥’이라는 용어는 한류 드라마를 본 전 세계인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한국 음식의 순위에 항상 올라갑니다. 그 귀하다는 제주도 흑돼지는 제주도 특유의 ‘멜젓’이라 불리는 멸치젓갈에 찍어 먹는 것이 국룰(?)이고 삼겹살을 굽고 난 뒤에는 반드시 묵은지를 그 불판에 구워 마지막 볶음밥까지 김을 올려 볶아먹는 것이 한국인의 음식 즐기기의 완성입니다.
본래 음식궁합이라는 것은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있어오긴 했습니다. 예컨대, 삼계탕이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도 닭과 함께 인삼을 넣어주는 보양식으로서 그 음식궁합의 상성이 맞기 때문에 선택된 음식이었고, 기름진 삼겹살과 함께 하면 최상의 조합을 이끌어내는 미나리가 닭과 함께 먹게 되면 상성이 안 좋아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는 주로 오래된 민간의학과 체계화된 한의학에서 정리된 개념으로 이어져온 것들이 많은데, 이후 서양의학이나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대부분이 정설로 증명되어 무시할 수 없는 내용들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예컨대,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음료인 수정과에 언제나 함께 띄워 나오 잣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잣에는 철분이 많기 때문에 수정과에 잣을 띄우면, 빈혈을 예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전통적인 방식으로 곶감을 넣어서 수정과를 만들 경우, 잣을 넣으면, 곶감에 함유된 탄닌 때문에 발생하는 변비를 예방해 주어 조화롭게 해주는 효능을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음식조화의 가장 한국적인 형태 중 하나는 바로 쌈문화입니다. 고기나 밥, 된장 등을 비롯한 먹거리들을 잎채소에 한 데 싸서 먹는 것을 가리키는 ‘쌈’은 무조건 아무거나 넣어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우러짐과 동시에 하나만 먹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맛을 내는 조합의 특성을 나타내줍니다. 앞서 살펴본 김밥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러한 쌈문화의 변형된 고정형태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쌈을 싸기 위해 사용되는 잎채소로는 대표적인 상추에서부터, 배추, 쑥갓, 깻잎, 취, 케일 따위가 있으며, 쪄서 부드럽게 만든 다음에 싸 먹는 호박잎과 양배추 같은 것은 잎채소로써의 특징을 더욱 강조한 형태인데요. 삶지 않고서 생채소로는 쌈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없이 딱딱하거나 거칠기 그지없지만 삶게 되면 그 특유의 향과 맛이 더욱 진해진다는 점에서 콩잎을 장아찌로 담가 싸 먹기도 하고 머위잎도 같은 방식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바닷가로 가게 되면 잎이 아닌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해조류도 쌈의 종류에 들어가 음식 조화의 한계는 한반도 자연 모두가 하나가 되게 만들지요.
그렇게 고기도 싸 먹고, 회도 싸 먹고, 아무것도 없지만 된장이나 쌈장에 채소 본연의 맛과 밥이 어우러지도록 하여 담백하게 싸 먹기도 하죠. 절대 아무거나 되는대로 싸 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쌈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최상의 조합으로 하나만으로는 오르지 못하는 맛의 단계를 더 높은 단계로 완성시키는 역할을 해주게 됩니다.
브리또나 타코, 혹은 베트남의 월남쌈에도 그런 것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는 분들도 있겠으나 한국음식에서의 쌈이 위에 설명한 것처럼, 조화로운 새로운 맛의 단계를 열기 위한 것이라면, 다른 나라의 쌈의 형태는 안에 들어가는 음식들을 하나로 담아내고 묶어줄 형태로 사용된다는 특징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같은 동양권이면서도 전혀 다른 음식문화를 가진 중국과 비교해 봐도 한국의 음식문화에서 조합이 갖는 특징은 도드라집니다. 중국의 음식이 ‘융합’을 표방하는 형태라면, 한국의 음식은 ‘조화’를 기반에 두고 있습니다. 중국의 전통적인 코스 요리를 보게 되면, 한 테이블 위에 다양한 음식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한 자리에 모여 다양한 맛을 누리지만 하나의 음식에 다른 것이 결합되거나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음식으로 결합된다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죠.
반면에, 한국음식은 주식과 부식의 확연한 차이가 있어 주식만을 먹을 수 없고, 또한 부식만을 따로 먹을 수 없기에 한국음식에서는 주식과 부식이 항상 모두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한국음식에서 주식과 부식은 조화로운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기본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김치의 종류만도 여러 가지고 한 상에 그 김치가 한 종류만 올라가지 않고 김장김치를 베이스로 하되 그 시기에 나오는 제철 재료로 담은 다양한 김치들이, 그리고 각 지역의 특산에 해당되는 김치들이 어떤 밥상 위에도 올라가게 됩니다.
아울러, 미역국을 끓이더라도 기본적인 미역국에 소고기를 넣을 수도, 혹은 굴, 황태, 전복이 들어가면서 똑같은 미역국이 아닌 전혀 다른 맛의 미역국으로 변신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는 전혀 다른 음식이 아니면서도 기본적인 미역국의 성향은 그대로 두고 지역에 따라 혹은 제철에 따라 어떤 음식재료가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과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하겠습니다.
한국 음식의 조화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 중 하나는 비빔밥을 빼놓을 수 없지요. 비빔밥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식문화에서 끊임없이 진화해 온 요리 중에서도 대표적인 음식으로 손꼽힙니다. 본래 비빔밥은 궁중 및 양반 사회에서 상류층에서 즐기던 음식으로 시작했습니다. 각종 잔치나 명절뿐만 아니라 특별한 날에 준비되어 그날의 의미를 더해주는 역할로 활용되곤 했지요.
비빔밥의 핵심은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져 조화롭고 균형 잡힌 맛을 내는 데 있습니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각종 나물과 고기, 그리고 양념은 하나하나만을 보자면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 그릇에 모여 조화를 이루며, 한국 사회가 다양성 속에서도 하나로 어우러져 특유의 힘을 발휘하는 것과 같은 역사의식과 문화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서로 다른 음식과 재료들을 가지고서 하나의 독립된 요리를 만들면서도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내는 한국의 음식문화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인식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한국인들은 ‘혼자서’보다는 ‘함께’했을 때 그 성과가 훨씬 더 크고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크다는 공동의 힘을 본능적으로 아주 잘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로는 완성할 수 없었던 것들도 그 곁의 또 다른 하나하나가 함께 했을 때 본래 가지고 있는 능력 이상의 것을 도출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효율성을 기반으로 하되, 음식문화가 갖는 특징과도 맥락을 함께 하면서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 혼자서 즐기는 것보다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 듯합니다. 둘이 먹을 때보다 셋이, 셋보다는 여럿이, 그렇게 여럿이 함께 하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되고 그 슬픔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체험적으로 한국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 반드시 국이 있어야 하는데, 그 국에 밥을 말게 되면 국밥이 됩니다. 서민들의 경우 국과 밥이 따로 나오지 않고 아예 말아서 토렴(찬밥에 뜨거운 국물을 반복적으로 부었다가 따라내는 과정으로, 밥을 따뜻하게 만들고 국물 맛을 스며들게 해 풍미를 높이는 전통 조리법)해서 내는 방식도 그러한 조화의 또 다른 변용형태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한정된 상황에서 늘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방식도 한국의 음식조화에서 증명되었다 볼 수 있는데요.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늘 좀 더 나은, 혹은 새로운 그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한국인의 탐구의식이나 발명의식은 새로운 엄청난 지원이나 풍족한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제한되고 한정된 지원 상황에서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성향을 보여줍니다.
끼가 넘쳐 혼자서 춤을 엄청나게 잘 추는 아이돌은 전 세계 어디에도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K-POP의 아이돌 그룹이 인기를 구가하는 데에는 이른바 ‘칼군무’라는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 여럿이서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음악에 맞춰 손끝하나까지도 맞춰가는 모습에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희열을 느끼고 환호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모든 동작이 똑같은 한 명의 형태로 맞춰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같은 음악에서 변용되며 다양한 여럿이었다가 다시 온전한 하나의 퍼포먼스를 갖춰가는 K-POP에서만 볼 수 있는 그 특유의 매력은 한국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조화’의 오리지널리티가 분명히 있는 것이죠.
유행하는 과자나 라면 하나를 먹어도, 무엇과 무엇을 함께 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히다는 것을 발명(?)하고 만들어내는 한국인의 DNA가 문화, 예술 그 모든 측면에서 한국인만의 색깔을 확연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가시나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