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긴 글의 연재를 마치며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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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정의를 강의하는 명문 대학의 강의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강의실에 들어선 교수가 문득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에게 무서운 얼굴로 건조하게 말했다.
"자네. 지금 이 강의실에서 나가주겠나?"
교수의 황당한 제안 아닌 제안에 여학생은 잔뜩 긴장한 채 표정이 얼어붙고 말았다.
"네?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아니. 두 번 말하지 않겠네. 지금 자네의 짐을 모두 싸서 당장 내 강의실에서 나가주겠나?"
평소에도 단호하고 칼 같던 교수의 정중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에 여학생은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나올 듯한 억울한 얼굴로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여학생이 강의실을 나가자마자, 교수는 남아 있던 학생들에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법이라 무엇인가? 법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갑작스러운 상황과 맞물려 당혹스러워하던 학생들은 저마다 손을 들고 주춤거리듯 대답했다.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 아닌가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 아닌가요?"
"정의를 위한 것 아닌가요?"
마지막 정의를 언급한 남학생의 말에 교수가 눈을 번뜩이며 그 말을 받았다.
"정의라... 좋은 말이지. 그런데 지금 방금 이 강의실에서 벌어진 내 언행이 불공정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나?"
그러자 다시 학생들이 저마다 눈치를 보며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학생에게 그 어떤 이유나 항변도 듣지 않고 내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했네. 그런데 지금 정의를 논하며 이 강의를 들으러 앉아 있는 자네들 중에서 그 어느 한 명도 내 언행이 불공정하고 불평등했으며 부당했다고 지적하거나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현실로 마주했네."
"......"
학생들은 교수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아직도 감을 잡고 있지 못했다.
"자네들이 만약 그 여학생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지적받지 않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았으니 자신에게 닥친 일이 아니니 내 옆에 앉아 있던 학생이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건 교수의 권위에 대항해서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르네 어쩌네 머리를 굴려가며 버젓이 아무렇지도 않게 강의실에 앉아 정의를 입으로 나불대고 있지 않았나?"
"......"
머리가 좋아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의 인기 있는 법철학 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들은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불편함을 더 깊숙이 찔러댔다.
"내가 아무리 훌륭한 강의를 한다고 한들 자네들에게 법이 왜 있어야 하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법을 공부한다고 설명해도 말이네. 자네들이 그것을 마음이 담고 실천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지금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보고서도 아무런 행동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죽어있는 지식일 뿐 이 강의의 가치나 의미는 눈곱만치도 없다 생각하네."
"......"
"행동하지 않는 정의는 그 어떤 의미도 가치가 없다 말일세. 그게 내가 이 강의를 통해 자네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유일하 단 하나의 메시지였네. 그 어떤 대단한 지식이나 판례들의 나열도 도구일 뿐 결국 중요한 것은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실천이 없다면 그따위 지식나부랭이들은 자네들의 이익을 챙기는 무기가 될 뿐이라네."
그렇게 말하고는 교수는 강의실을 유유히 나가버렸다.
그 어느 누구도 교수의 말에 반박을 하지도 항의를 하지도 못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상황과 그에 대한 교수의 설명이 갖는 행간의 의미를 읽지 못한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