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명화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Jun 20. 2021

이탈리아 아제의 라떼이야기

영화 'LUCA'를 보고

토요일 저녁 PIXAR의 3부작 완결 편이라고 할 수 있는 'LUCA'를 가족과 함께 보았다.

언제나 집에서 영화 소개를 책임지고 있는 역할인지라 이번에도 가족들은 아무런 고민 없이 따라와 주었다.

앞서 말한, 'PIXAR의 3부작'에서 지칭하는 두 작품은 'COCO'와 'SOUL'이다.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보면, 사실 3D 방식의 애니메이션은 약간의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2D만을 고집하던 지브리에서 이번에 3D 작업 결과물을 처음으로 내놓다는 것을 보면 여지없이 시대의 조류 같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갖고 있는 태생적인 거부감과 고민을 어제 'LUCA'를 보면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이냐고?

분명히 3D 애니메이션의 방식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Pixar에서는 나와 같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을 결과물로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해결방법으로,

캐릭터에 이미지적 개연성을 부여하고,

3D 애니메이션에서 2D 요소를 살려 수채화 같은 부드러움과 애니의 스토리가 그림에 투영되어야 할 서정성을 살리는 것으로

위화감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무엇보다 함께 작업한 디즈니의 공식, 이른바,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뭔가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이 교훈적으로 생각해야 할 만한 거리를 제공하고 남긴다.'는 디즈니와 픽사의 공동작이 갖는 성공 법칙으로 준수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만했다.


굳이 촌평을 남기자면 대강 이런 느낌이랄까?

색감이 예뻤고,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일 만했으며
음악이 크게 부각되려고 나대서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았으며
과장되지 않은 내 주변의 자연스러움이 편안했다.

미국에서 만들었지만 'COCO'에서 멕시코의 전통과 이야기, 음악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LUCA'에서는 이탈리아 리비에라 해변의 오래된 마을이, 그리고 잠깐식 터져 나오는 이탈리어 어가, 그 마을을 내가 자라난 마을의 골목 어딘가로 환치시켜주는 마법을 부리는데 충분한 조건을 만족시켜주었다.

리비에라 해안 절벽 마을

감독인, 엔리코 카사로사는 감독이기 이전에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유년시절 상상과 경험과 아쉬움을 이 작품 하나에 차곡히 쌓아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꼭 필요한 것들만으로 적절히 여백을 남겨 서두르지 않게 붓을 만지작거린 느낌을 주었다.  

다소 황당할 수 있는,

'바다괴물'이 물밖로 나오는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물에 닿으면 바다괴물로 돌아가는 기본 설정이 이야기의 시발점이다.

그렇다고 오래된 '인어공주'의 클리셰를 불러온 것도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이탈리아 아제가 겪었던 여름이야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판타지이다.

주인공은, 위의 그림에 나오는 세 친구 알베르토, 루카, 줄리아의 아주 짧은 여름방학의 추억 이야기이다.


범생으로 살아와 룰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루카,

자신을 돌보던 아빠가 어느 날 사라져 버린 세상 만렙 허풍쟁이 알베르토,

엄마가 없지만 씩씩하게 혼자서 제노바에서 학교를 다니는 줄리아.


자신을 걱정하며 찾으러 다니는 부모가 있는 루카에 비해, 알베르토의 아버지 이야기는 구체적인 설명도, 왜 아빠가 떠났는지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안 나온다.

줄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쪽 팔이 없는 아빠 마시마의 사연 있어 보이는 한 팔도 '원래 태어날 때부터 없었어.'로 설명 끝이고,

줄리아의 엄마가 왜 없는지 역시 알베르토의 경우처럼 부러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엄마가 없는 줄리아가,

부모가 없는 알베르토가

그 부재로 인해 비뚤어졌다던가

그에 대한 서글픈 뒷이야기가 있다던가의

신파로 빠지지 않는다.

정해진 러닝타임에 맞춰 착실한

이 이야기는, 루카가 자신의 성향과 전혀 다른

알베르토를 만나 변화하고 성장하는

극적 계기를 차분히 보여준다.

자신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학교를 가고 싶어 하는

루카를 통해

너무도 당연한 그 또래의 배움에 대한 욕구를

고스란히 여과없이 그려준다.


사회가 정한 룰에서

부모님이 정해진 룰에서

스스로 안된다고 그었던 한계를 깨고 넘고

벗어나며 루카는 한 뼘 더 자란다.


이탈리아 리비에라 해안을 부드러운 2D감성의 3D로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중간에 툭툭 나오는 이탈리아어는 나를 어느 사이엔가 리비에라 해안으로 옮겼다.

리비에라 해안의 해변

알베르트가 주저하는 루카에게 말한다.

언제나 안된다고 하고, 안될 거라고 하고

죽을지도 모를 거라고 하는

그건 어리석고 바보 같은 브루노의 말일뿐이라고

그러면서 그는 렇게 외치라고 알려준다.


닥쳐, 브루노! (Silenzio, Bruno!)


너무 시원스럽고 통쾌한 대사.

이미 다 큰 어른이 되어

이것 때문에 못하고

저것 때문에 주저하는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며

아무 걱정 없이 자전거를 타며

언덕을 내달리던 그때로 돌아가

회상한 이 한 마디는

이탈리아어로 했기에 더욱 맛이 살아난다.

감독이 어렵게 기억해내고

흐뭇하게 웃으며 눈물지었을

그 한 마디.

이탈리아 태생으로 미국에서 살면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그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었을 그가 추억했던 그날.

그리고 그가 가장 만들고 싶었을

하고 싶던 그 이야기.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이탈리아 아제의 여름방학 추억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가족은

토요일 밤

이탈리아의 정취에 푹 빠져

행복했다.


그 행복감을

당신도 느껴볼 수 있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