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에서 참으로 똘똘하기 그지없던 그 똘망똘망한 얼굴의 조디 포스터가 세월의 풍파에 늙어버린 것을 보며 내 젊은 날 역시, 그녀의 모습과 함께 흘러갔구나 하는 탄식을 내뱉게 하는 시간이었다.
'셜록'으로 유명한, 학생들에게는 '닥터 스트레인저'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출연으로 더 유명해진 영화였다.
그런데 결국 이 영화는 그 유명한 이들의 이름값에 빛나는 연기가 빛을 발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Tahar Rahim
주연이 그였고, 그가 이 극을 이끌어나간다.
영화가 특별히 울림이 깊거나 감독이 의도한 그럴만한 장면에서 마음이 우웅-하고 움직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실화가 주는 마음의 움직임은 단순히 감동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화는 동기화, 이른바 빙의가 되는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전달해주는 힘이 있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혹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불편했다.
미친 트럼프 정부 시대도 아닌, 인권을 소리 높여 말하고 떠들던 오바마 정부 시절에 벌어진, 아무런 죄 없는 아랍인을 가두고 8년 만에 무죄를 받았음에도 7년이나 항소를 통해 고통을 주고 가둬두었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내가 지금 초고를 탈고하고 출판하려는 3권짜리 장편소설은 우리나라가 아닌 곳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쓰는 내내 마음이 안 좋고 마음이 무거웠고, 불쾌했고 갑갑했다.
이 작품을 정식 출간하기 전에 브런치를 통해 먼저 연재를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 그 시작을 어떻게 할지 주저하고 있어, 더더욱 마음이 그랬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 히어로의 나라라고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힌 우리나라의 사람들에게,
과연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리고 그들이 갖는 정의가 우리나라와 이익을 달리할 경우 언제든지 미국은 그 선량한 가면을 과감히 벗고 총과 칼을 들이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영화는 그런 가정을 실화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라이오널 리치의 Say you, Say Me가 흐르는 '백야'를 만들며, 미국의 할리우드는 당시 소련을 비꼬았다.
그런데, 2020년에 할리우드는 과감하게 자신들의 치부를 유명 배우를 써서 영화로 만들어 반성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14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강탈한 미국정부와 관료와 군인들은 그 아랍인에게 어떤 사과도 보상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낸 책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을까?
영화로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자신들의 이웃이고 애국자라고 여겼을까?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사회의 한구석 양심을 가진 젼호사와 군법무관이 있어 정의를 지키고자 시도했고, 그 힘겹고 외롭던 이방인을 지켜주려 했다는 점이다.
곧 연재가 시작될 타이완에서의 만행은 그 어느 한 사람의 양심도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갉아먹는 존재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의 추악한 일 면 일 면을 글로 토해내면서,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불편함 이상을 내내 느끼고 있었다.
어디 억울한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싶지만,
억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 억울함이 반감되거나 사그라드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억울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 사회가 매우 심각하게 병들어있다는 반증이며,
내가 계속 현실 드러내보이기로 강조하는 바와 같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들어낸, 갑질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 만들어낸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 자신들이 서민이고 공정한 일반적인 대중이라며 자위하는 것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불의에서 비롯된 것이, 그 사유가 발에 치이도록태반이라는 사실에 다름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