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이를 뒤따라 나오던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을 휑하니 나가버리는 세찬이를 보고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렇게 좋을까?”
“원 녀석두…, 오늘, 무슨 날인가?”
출근하려던 아빠도 그런 세찬이의 모습을 보고는 신기한 듯 엄마에게 물었다. 평상시에도 늘 힘이 넘치고 밝은 아이지만 여느 때와 달리 저렇게 신나게 등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혹시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몰랐어요? 곧 겨울방학이잖아요, 벌써부터 할아버지한테 간다고 이것저것 준비다 뭐다… 아주 난리예요.”
“아! 벌써 그렇게 됐나? 녀석 하곤.”
방학. 그것도 여름방학보다 훨씬 긴 겨울방학.
세찬이가 방학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방학이면 언제나 안동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가서 지낼 수 있다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찬이가 겨울방학을 그 어느 것보다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세찬이의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안동에서 하회탈을 만드는 장인이다. ‘장인(匠人)’이라는 말은, 한국의 전통적인 물건을 만드는 전문가라는 말로, 할아버지는 안동 하회탈을 만드는 몇 안 되는 전통 계승자였다. 젊은 사람들이 탈을 만드는 기술이나 연구를 하지 않고 도시로 떠나기 시작할 때도 할아버지만은 고향에 남아 묵묵히 탈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할아버지는, 무섭고 괴팍한 사람으로 통했다. 물론 세찬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다정다감하고 자상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할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이고 어렵기 그지없는 까탈스러운 노인이었다. 마을에서는 물론이고 할아버지를 찾아오는 방송국 사람들이나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마저도 할아버지의 앞에서는 예의가 없다고 혼쭐이 나거나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흔했다.
대부분의 인간문화재라고 소개되는 전승자들은 방송에 나가거나 대중들에게 소개되는 일을 자랑스러워했는데 할아버지는 절대 자신의 공방은 물론이고 할아버지의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꺼리고 싫어했다. 옛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그래 왔다고 들었다. 하지만, 세찬이만큼은 할아버지의 공방에 들어가 할아버지의 작업을 구경할 수 있었다.
세찬이가 늘 목에 걸고 다니는 펜던트는, 할아버지가 세찬이의 한 살 생일에 선물로 만들어 주신 것이었다.
그 작은 탈 모양을 하고 있는 펜던트는 다른 하회탈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는데, 작고 아담한 것이 세찬이를 꼭 닮은 듯했다. 탈을 만드는 나무 중에서도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벼락 맞은 오리나무로 만든 그 펜던트는 어려서부터 세찬이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보물이었다. 할아버지가 여러 사람들의 끊임없는 요구에도 탈을 만들어 팔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안동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할아버지가 만든 탈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경우는, 마을에서 벌이는 전통 굿이나 전통 놀이에 쓰라고 놀이꾼들에게 주는 때 말고는 결코 없었다. 심지어는 만든 탈을 구경하는 것도 할아버지는 엄격하게 금했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는 공방은 물론이고, 그 마을을 떠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세찬이가 태어날 때 세찬 파도처럼 힘찬 아이가 되라고 ‘세찬(世讚)’이라는 이름을 지어 가지고 서울에 왔을 때만 빼고는 할아버지가 마을을 떠난 적은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늘 세찬이가 안동에 갔을 때뿐이었다. 그래도 세찬이는 할아버지가 공방이나 사랑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사실, 할아버지 댁에 가면 좋은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서울에는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여름에 물고기를 잡는다거나 겨울에 얼어 있는 호숫가에서 썰매를 탄다거나 언덕에서 비료포대 눈썰매를 만들어 타는 것 등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즐거운 일은 할아버지의 공방에서 가끔씩 할아버지가 만드는 탈을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와 함께 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장아장 걸음을 걸을 때부터 이렇게 씩씩하게 뛰어다니는 5학년이 되기까지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거르지 않고 할아버지 댁에 가서 할아버지와 함께 탈을 만드는 일이 세찬이에게는 방 안에서 만화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고 피아노를 치는 것보다 훨씬 즐거운 일이었다.
내일모레면 그 할아버지의 공방에 다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세찬이의 마음은 너무도 설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숙제를 모두 끝내고 일기를 쓰면서도 세찬이의 귓가에는 할아버지 특유의 너털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달력에 빨간 사인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그 밑에 큼직하게 ‘할아버지에게 가는 날’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서 세찬이는 빨리 내일모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찬아!”
어디선가 익숙한 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응? 할아버지?”
눈을 부비며 잠에서 깬 세찬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세찬아~!”
분명히 할아버지의 음성이었다. 주위가 뿌연 안개로 가득해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할아버지?”
아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멀리서 희미하긴 하지만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히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어쩐 일이세요?”
“우리 세찬이 건강하게 공부 잘하고 지냈니?”
“그럼요. 이제 내일모레면 할아버지한테 가려고 했는데…, 서울은 언제 오신 거예요?”
세찬이는 겨우 잠에서 깨어나 할아버지의 모습을 또렷하게 보려고 눈을 비볐다. 할아버지는 평상시와는 다르게 편한 복장이 아닌 외출할 때 입는 두루마기에 모자까지 쓰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외출복을 입는 경우는 참 드문 일이라서 당황스러웠다.
“세찬아~! 할아버지가 멀리 좀 떠나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우리 세찬이 얼굴을 꼭 보고 가려고 들렀단다.”
“네? 멀리요? 어딜요?”
세찬이의 질문에 할아버지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는 듯했다. 늘 세찬이를 향해 웃어주시던 너털웃음이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어두워 보이는 할아버지의 표정은 세찬이가 늘 기억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어딜 가시는데요? 저두 데리고 가세요.”
세찬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를 겨우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렇게 갑자기 할아버지가 나타나서는 멀리 떠나신다는 말을 하시니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아파 왔다.
“세찬아! 잠시 이 할애비가 없더라도 절대 기운 없어 지내거나 슬퍼해서는 안 된다. 이 할애비는 꼭 돌아 올 테니까…, 할애비가 없어도 우리 세찬이가 세찬 파도처럼 용기 있게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사나이가 될 거라고 약속해줄 수 있겠니?”
“하…,할아버지”
자꾸만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세찬이는 할아버지가 내민 손가락에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때, 어디선가 가느다란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찬님! 울어서는 안 돼요. 이제 할아버지는 가셔야 한답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할아버지의 옆에 아주 고운 얼굴을 한 누나가 한 명 다가와 있었다.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누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낯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찬아! 그럼 할애비는 이만 떠나야 하겠구나. 참! 그리고 할애비가 네게 주었던 선물을 잊지 말거라.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우리 세찬이는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게다.”
할아버지와 걸었던 새끼손가락에 힘이 풀리며 할아버지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약속… 할게요. 할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전 절대 눈물 흘리지 않고 씩씩하게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할아버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뭔가 걱정하지 마시라는 말을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세찬이는 주먹을 꼭 쥐어 보이며 사라지는 할아버지의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은 이미 안갯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옆에 있던 누나만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어디로 가신 거죠?”
“세찬님! 시간이 없어요.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이건 할아버지가 세찬님에게 남기신 선물입니다. 이것이 세찬님을 지켜 줄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누나의 손에 탈이 하나 들려있었다. 하지만 ‘탈’이라는 느낌만 있었을 뿐, 그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질 않았다. 탈이 누나의 손에서 세찬이에게 넘어오는 순간, 강한 천둥번개가 온몸을 때리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손에 들려있는 탈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려는 순간, 휙 하고 탈에서 검은 회오리바람이 일어나서는 세찬이의 온몸을 휘감아버렸다. 세찬이는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 속에 우뚝 서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곤 깜짝 놀랐다.
“우왓!”
세찬이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 형상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시커먼 도깨비의 형상이 온통 붉은색으로 온몸을 휘감은 채 우뚝 서서 제 얼굴을 세찬이에게 불쑥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안돼!”
소리를 지르며 깨어난 세찬이는 자신도 모르게 이불을 꼭 쥐고 있었다. 할아버지도 누나도 그 도깨비도 없었다. 그저 아까 잠들었던 침대에서 악몽에 놀라 소리치며 일어난 것뿐이었다.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직도 아까 보았던 눈이 4개나 되고 커다란 귀를 가지고 있던 그 도깨비의 모습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때, 밖에서 전화 벨소리가 들리고 엄마와 아빠가 소리치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운 소리에 밖으로 나온 세찬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무슨 일이에요?”
아직 새벽 4시를 조금 넘은 시간인데, 거실 불을 켜고 아빠는 이리저리 전화를 하고, 엄마는 어디론가 외출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세찬아! 일어났니? 얼른 씻고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아무래도 할아버지 댁에 가봐야겠구나.”
“네? 갑자기 왜요?”
“응? 그게…”
엄마가 당황한 듯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세찬이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세찬아! 지금부터 아빠가 하는 얘기, 잘 들어라.”
엄마 대신 아빠가 식은땀에 젖어 멍하니 서 있는 세찬이의 어깨를 잡고서 말했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단다.”
“네?”
“놀라지 말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 모르니까 지금 아빠랑 엄마랑 할아버지 댁에 갈 거야. 그러니까 얌전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싫어요. 저두 갈래요.”
세찬이는 아까 꿈속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던 것이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문득 겁이 덜컥 났다.
“여보. 학교에는 제가 얘기할 테니까, 세찬이도 데리고 가요. 집이 비면 세찬이를 어디에 부탁하기도 그렇고…”
엄마는 세찬이를 데려갈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아빠는 잠시 주저하는 듯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빠가 뭔가 깊이 생각할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데…”
“갈래요, 아빠. 그래도 할아버지한테 갈래요.”
아빠가 결심을 한 듯 세찬이의 어깨를 꼬옥 잡았다.
“좋아. 준비해라. 같이 가자.”
서둘러 아빠가 차고에서 차를 빼는 동안 세찬이는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작은 탈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억지로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있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안 돼요. 지금 세찬이가 할아버지한테 갈게요.’
할아버지 댁으로 내려가는 차 안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아빠도 엄마도 세찬이도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할아버지가 무사하시기만을 바라는 기도만이 마음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