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 엄마와 아빠가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쉽사리 눈이 떠지지 않았다. 겨우 눈을 뜬 것은 시끄럽게 우는 까치소리 때문이었다. 어느 사이엔가 화창한 아침햇살이 얼굴까지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어?”
눈을 뜨고 밖을 보았을 때는 이미 날이 훤히 밝은 후였다. 할아버지 댁이 아니었다. 그제서야 세찬이는 할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아빠 엄마와 함께 병원에 달려왔다는 것이 기억났다.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달려가 할아버지를 만나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엄마,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병원 현관으로 엄마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차 안에서 밖을 보고 있던 세찬이는 얼른 차에서 나와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할아버지는요? 할아버지는 어떠세요?”
“으응. 그게…, 세찬아…. 괜찮으셔.”
엄마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저도 할아버지 만나볼래요.”
“그래. 세찬아. 올라가 보자. 대신 절대 소란 피우거나 울면 안 된다.”
엄마의 다짐에 약속을 하고서야 세찬이는 엄마와 함께 할아버지가 계시는 중환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빠가 할아버지의 곁에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빠의 눈시울이 저렇게 붉은 것을 보면 아빠도 분명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산소호흡기와 여러 가지 이름 모를 기계들에 둘러싸여 누워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 꿈에서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외출용 두루마기를 입고 건강하게 서 계셨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 흑흑.”
“세찬아!”
엄마가 옆에서 세찬이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괜찮아요. 저 안 울어요. 할아버지랑 약속했는걸요. 할아버지는 곧 깨어나실 거예요. 저랑 약속까지 하신 걸요.”
세찬이는 눈물을 꾹 참고 억지로라도 웃어보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이제까지 감기 한번 걸려서 고생하신 적이 없던 할아버지가 아무런 의식도 없이 이렇게 쓰러지신 모습을 보는 것이 세찬이로서는 견디기 힘든 충격이었다.
“당신은 세찬이 데리고 나가서 아버지 집에 좀 다녀오지? 여긴 내가 있을 테니까…”
“알았어요. 다녀올게요.”
엄마가 세찬이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가 안 계신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기 위해 병원을 나섰다.
엄마가 운전하는 차가 할아버지 댁의 골목으로 들어서자 낯익은 풍경이 들어왔다. 아직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은 흙길이 나오면서 옆으로 펼쳐진 산과 길게 눈이 쌓여 반짝이는 강이 보였다. 겨울인데도 새도 몇 마리 정도 날아다니고, 황량하긴 했지만 풀숲 위로 쌓인 눈들이 제법 멋져 보였다.
그 안쪽에 자리 잡은 할아버지의 공방은 그것들 중에서도 가장 멋져 보였다. 눈이 쌓인 산골짜기 가운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보면 금세라도 할아버지가 나와서 ‘우리 세찬이 왔니?’하며 반겨줄 것만 같았다.
“누가 와 있나?”
엄마가 차에서 내리며 집으로 들어서는데 골목 끝 쪽에서 세찬이를 보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제법 몸집이 커 보이는 아이였는데 여름방학 때만 하더라도 보지 못했던 아이였다. 엄마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따라 들어가려는데 팽-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돌이 날아왔다.
순간, 본능적으로 피하기는 했지만 그 돌은 정확히 할아버지의 집 대문에 맞고는 튕겨져 나왔다. 놀라서 돌이 날아온 곳을 바라본 세찬이는 아까부터 자신을 보던 아이의 손에 새총이 쥐어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뭐야! 위험하잖아?”
세찬이가 아이에게 대고 소리를 질렀다.
“넌 뭐야? 뭔데 이런 시골까지 차를 타고 와서는 거들먹거리냐? 로봇이나 가지고 놀지, 무슨 볼일이 있어서 이런 시골에 그런 빤짝이 구두까지 신고 왔느냔 말이야?”
뚱뚱한 몸집을 하고 있던 아이는 구두에 정장 차림을 하고 서 있는 세찬이의 복장이 못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내색을 하며 새총을 다시 들어 위협해 보였다.
“얼른 꺼져버려. 너희같이 컴퓨터 게임이나 하는 것들은 우리 마을에 올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이번엔 제대로 이 돌을 맞을지도 모른다구.”
“뭐야?”
세찬이가 막 달려들려는 순간, 한 여자아이가 달려 나와 둘을 멈춰 세웠다.
“우람아! 그럼 못써!”
여자아이는 뚱뚱한 몸집을 한 아이를 보며 쐐기를 박듯 무섭게 쳐다보았다.
“뭐야! 할아버지가 그렇게 되신 걸 보고도 저런 녀석을 두둔하는 거야?”
여자아이는 긴 머리의 가느다란 몸집을 하고 있어 ‘우람이’라고 불린 아이와는 대조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세찬이는 앞에 서 있는 여자아이를 보면서 차분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가 공부도 잘하고 말도 조리 있게 잘하는 모범생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
“미안해. 우람이가 원래 이런 아이는 아닌데, 할아버지가 쓰러지셔서 괜히 심통이 나서 그래. 너한테 유감이 있는 건 아니니까 이해해.”
“응.”
갑작스레 나타난 여자아이의 중재로 세찬이와 우람이의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람이는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그냥 휑하니 몸을 돌려 마을 쪽으로 달려 나갔다.
“우람아!”
여자아이는 우람이의 이름을 부르며 따라가려다가 세찬이 쪽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니가 세찬이지? 난 고운이라고 해. 할아버지한테 얘긴 많이 들었어. 나중에 또 보자.”
“어떻게 내 이름을…?”
알려주지도 않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면서 놀란 표정으로 뭔가 물어보려고 했지만, 여자아이는 모른 척하곤 어느 사이엔가 멀어져 갔다. 세찬이는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침착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분위기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이름이나 자기소개를 하지도 않았는데 여자아이는 이미 자신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매년 두 번씩이나 내려오는 이 마을에서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아이들을 둘이나 만나게 된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이 마을에 와서 자기가 모르는 또래 아이들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이구! 이게 누구야! 세찬이 아니니?”
할아버지의 집에 들어서면서 부엌 쪽에서 나오는 아줌마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이웃집에 사시는 아줌마였는데 할아버지가 편찮으시거나 할 때 가끔씩 와서 도와주시곤 해서 세찬이도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에구! 우리 세찬이 왔구나! 놀랬지?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얼른 들어와라. 날씨가 많이 차다.”
“네.”
“아줌마 조카도 이번에 마을에 왔는데 세찬이랑 동갑인데… 나중에 아줌마가 소개시켜 줄게.”
엄마가 할아버지의 옷가지와 미음 같은 것을 아줌마와 준비하는 동안 세찬이는 오랜만에 보는 할아버지의 공방에 먼저 가보고 싶었다. 원래대로였다면 할아버지가 동구 앞까지 나와서 세찬이의 손을 잡고 둘이서만 들어가는 것이 순서였는데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쓰러지시면서 그렇게 될 수 있었을 그림이 날아가 버리고 만 것이다. 막 할아버지의 사랑방을 나서려는데 마당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계십니까?”
“누구세요? 엄마! 아줌마! 손님이 오셨어요.”
세찬이가 낯선 이들을 바라보고는 부엌의 엄마와 아줌마를 불렀다.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 나온 엄마와 아줌마는 갑작스러운 사람의 방문에 약간은 당황했다. 서울에서나 볼 수 있는 잘 차려입은 양복을 입고 머리도 똑같은 모양으로 빗어 넘긴 남자들이었다.
그들을 가만히 보고 있던 세찬이는 이런 복장을 한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안마당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4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영화에서나 하는 것처럼 양복 안주머니에서 신분증 같은 것을 내밀며 엄마와 아줌마에게 자신들이 누구인가부터 밝혔다.
“저희는 문화재 관리청에서 나왔습니다. 오늘 새벽에 박 기철 옹께서 쓰러지셨다는 말씀을 듣고 혹시 무슨 사고라도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시찰차 나왔습니다만…. 박 기철 옹께서는 어떠십니까?”
“아, 네. 그러시군요. 아버님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셨어요. 지금 병원에 계신데…”
그 사람들 중에 뒤쪽에 서 있던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가 말을 하던 사람 앞에 나오며 말을 이었다.
“심려가 크시겠군요. 저희 문화재 관리청에서 수시로 박 기철 옹의 건강이나 공방의 안전에 대해 계속해서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예? 무슨 일로…?”
엄마가 다시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에게 물었다.
“아, 예. 아시다시피, 박 기철 옹께서는, 본인이 거부하시긴 하셨지만 인간문화재급의 장인이시고, 그 분의 작품들은 문화재 측면에서도 그렇고 아주 소중하기 때문에 도난 우려도 있고, 혹시 그로 인해 사고를 당하시지는 않을지 여러 가지 저희가 보호를 해 드려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 그렇군요.”
세찬이는 할아버지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더욱더 할아버지의 너털웃음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여름방학 이후 만든 탈들을 보고 싶어졌다. 공방을 바라보던 세찬이가 시선을 돌리려던 순간, 문득 공방 쪽을 바라보고 있던 매서운 눈초리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시였지만 섬뜩하리만큼 강한 인상을 가진 그 남자는 공방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기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공방이라면 제가 잘 알아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따라나서는 세찬이를 맨 앞에 있던 남자가 제지하고 나섰다.
“됐다. 꼬마야. 이건 어른들의 일이야. 이곳 공방에 대해서는 우리들도 잘 알고 있으니까 너는 여기서부터 들어오면 안 된다.”
그리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뒤이어 설명을 보충했다.
“죄송하지만, 박 기철 옹이 돌아오실 때까지 저희가 공방의 중요 문화재급의 작품들은 수거해서 보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저희 문화재 관리청의 방침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영감님이 아시면 싫어하실 텐데… 여간해서는 아무도 공방에 들이시지 않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곁에서 도와주시는 아줌마가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하지만 남자의 단호한 설명은 아줌마의 질문을 도리어 무안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가 문화재의 보호 차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행여 선생님이 안 계신 동안 분실이나 도난이 되기라도 하면 그건 정말 큰 문제니까 말이지요. 아마도 박기철 옹께서도 이러한 저희들의 보호 방침에 동의하셨을 겁니다.”
그렇게 남자들은 공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찬이가 그들의 뒤를 따라나섰지만 다른 남자 한 명이 공방의 입구에 서서 세찬이를 막았다.
“여기서부터는 따라 들어와선 안돼!”
“왜요? 여긴 우리 할아버지가 저만은 언제든 들어가도 좋다고 했던 걸요. 전 괜찮다고 하셨다구요! 근데 왜 아저씨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거죠?”
세찬이는 자신만은 공방 출입하는 것을 자유롭게 허락해줬던 할아버지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고 싶어 남자에게 항변했다. 하지만, 남자는 차갑고 무거운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세찬이를 막고 서서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쳇! 그렇게 한다고 내가 안 들어갈까 봐서?’
잠시 뒤로 물러나 공방에 들어가기를 포기하는 것처럼 하고는 몰래 공방의 뒤쪽으로 나있는 야산으로 통하는 길을 타고 언덕으로 올라갔다.
세찬이가 만든 비밀 장소이기도 했던 공방의 바로 뒤 언덕은 야트막하긴 했지만, 공방의 바람을 통하도록 만든 창을 통해 안에서는 뒤가 처마에 걸려 보이지 않았지만 위에서는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다 보이는 곳이었다.
가끔 할아버지를 놀라게 해 드리려고 할 때 요긴하게 쓰였던 비밀장소이기도 했다. 맞바람이 불어 조금 춥긴 했지만 이상한 남자들이 자기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할아버지의 물건에 손을 댄다는 것이 세찬이는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그들이 도대체 뭘 하길래 자기를 들여보내주지 않는 것인지 몰래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어떻게 된 거야? 없어?”
한쪽에서는 물건을 챙기는 듯했는데 할아버지의 공방에 탈들이 그리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이상하네? 그냥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작품들을 가져가는 게 아니었나? 뭘 찾고 있는 거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까 엄마와 아줌마와 얘기할 때는 분명히 남아있는 할아버지의 작품들을 챙긴다고 했었는데 그들은 계속해서 뭔가 다른 것을 찾고 있는 듯했다.
“여기 아니고는 있을 곳이 없잖아. 그리고 그 영감이 갑자기 쓰러졌을 테니까 감추고 뭐하고 할 시간이 없었을 거라고 했잖아! 빨리 찾아! 오래 시간을 끌어봐야 우리에게 좋을 거 없으니까.”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던 남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머지 남자들에게 지시를 했다. 그들은 할아버지의 공방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작업 중이던 나무들이나 공구들을 이리저리 발로 차고 온통 공방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평상시에 할아버지가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들을 함부로 발로 차고 작품들을 마구 섞어 대강 싸서 가방에 넣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찬이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아무리 문화재 관리청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상식적인 범위를 벗어난, 할아버지가 그렇게 싫어하시던 무례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야… 읍…!”
세찬이가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를 지르려던 순간, 누군가 세찬이의 입을 막았다.
“무슨 소리야? 어디서 나는 소리야?”
안에 있던 남자들이 흠칫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밖을 지키고 있는 남자에게 확인 전화를 하는 듯했다.
“무슨 소리가 났어. 제대로 망을 보고 있긴 한 거냐? 주위에 사람이 나타나는지 잘 살피란 말이야!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곤란해.”
순간이긴 했지만 소리가 크게 터져 나오기 직전 누군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언덕 아래로 머리를 숙여주지 않았더라면 밖에서 망을 보던 다른 한 남자에게 들킬 뻔한 순간이었다. 자신의 입을 감싸고 있던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의 주인공이 세찬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