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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Aug 28. 2017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워킹대디를 위한 변명

연애시절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와 싸운 적 거의 없습니다. 둘 다 큰소리 내는 걸 싫어하는데다 크게 부딪힐 일도 없었습니다. 결혼해서도 평온하고 부드럽게 살 것 같았습니다. 


웬걸요. 결혼하니 ‘이 남자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은 왜 없나 싶었고 아이가 태어나고는 ‘아, 이래서 남의 편이라고 하는구나’ 한숨만 났습니다. 복직을 하고는 ‘내가 시간이 없어서 못 싸운다’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부부싸움은 평일보다 주말에 더 많이 하는데, 평일에는 서로 얼굴 볼 일이 없어 싸울 수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우리부부가 그랬습니다. 퇴근해서 달려드는 결이를 한 팔에 안고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면 언제 퇴근할지도 모르겠다는 남편이 야속했고 아이들 재우고 있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애들 잠 안자게 왜 지금 오는거야!' 욱 했습니다. 



같이 계획해 같이 부모가 되고, 경제활동도 같이 하는데 왜 나만 살림을 하고 왜 나만 아이를 키우는 것 같은지, 솔직히 말해 억울했습니다. 집에 더 일찍 오는 사람이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돌보자고 약속했지만, 집에 먼저 도착하는 건 매번 저였습니다. 우리 회사라고 야근과 회식이 없는 게 아닙니다. 남편 회사도 우리 회사도 상황은 비슷했지만 눈치를 보며 칼퇴근하는 건 항상 저였습니다. 점점 남편과의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남편이 야속할수록 회사에선 웅이 결이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남자 동료들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정신없이 일에 빠져있는 모습을 볼 때도, 술냄새 풀풀 풍기며 사무실에 들어서는 걸 볼 때도 남편이 떠올랐습니다. 워킹대디들이 불시에 야근 회식이 잡혀도 당황하는 기색없이 야근을 하고 회식에 따라 나설 때면 한 편으론 부럽고 또 한 편으로는 '아이들은 누가 돌보지' 궁금했습니다. 


어느 날 (언제나 그렇듯) 불시에 회식이 잡혔습니다. 워킹대디인 동료는 회식에 참석했고 워킹맘인 저는 죄송하다며 빠졌습니다. 다음날 그 동료와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뜬금없이 묻더군요. 


"웅이 결이는 어때요?"

"엄마가 출근하는 걸 좋아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진 않아요.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애들이 잘 따라요?"

"껌딱지죠."

"부럽네요. 우리 애는 '아빠 저리가'라고만 하는데…"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습니다. 아이와의 관계는 함께 한 시간에 비례합니다. 그걸 알기에 워킹맘이어서 아이와 하루 24시간을 함께 할 수 없는 게 항상 마음쓰입니다. 출근시간 1분 전에 도착해 퇴근시간 땡하면 퇴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이틀이라도 일찍 들어가면 많이 좋아질 거예요."

"마음이야 매일 칼퇴근하고 싶죠. 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이니까요."



가족을 사랑하는 만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고, 또 그 만큼 가족을 지키고 싶다고 했습니다. 가족을 지키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회사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워킹맘인 저는 엄마와 직장인 중 엄마 역할에 더 큰 책임을 느끼는 반면 워킹대디인 동료는 아빠와 직장인 중 직장인 역할에 더 큰 책임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복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복직하며 집에서 회사로 한 걸음 나아간만큼 아빠인 당신이 집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와줘야 한다고요. 그래야 당신과 내가 올라 선 '일과 가정이라는 균형대'가 평행을 유지할 수 있다고요. 남편도 동의했지만 선뜻 올라오진 못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거라면? 구조적 문제는 여자를 일터로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남자들을 일터에서 끌어내는 데 있다면? 지금껏 우리는 여자들이 육아휴직을 할 때 불이익을 받지 않는 식으로 평등을 쟁취하려 했다. 그러나 누구든 일을 쉬면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대신 그 책임을 나눌 방법을 찾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직업 세계에 진입하려는 여성들이 부딪히는 여러 장벽과 나중에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유리천장에만 지나치게 골몰한다. 하지만 남성들이 일터에서 나가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장벽은 없을까? 
(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동양북스 2016)


주저하는 남편이 답답했는데 동료 워킹대디들을 보며 조금씩 남편의 마음이 짐작됩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가족부양이 아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 아빠들은 다릅니다. '가족부양=경제적인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세대가 '돈만 잘 벌어오면 되지'라고 생각한 반면 우리 세대는 '돈도 벌고 아이와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아빠가 필요한 것도 알고 친구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합니다. 


문제는 회사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압박은 그대로인데 동시에 좋은 아빠까지 되라고 하는 겁니다. 워킹맘인 제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하는 동시에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과 같지요. 슈퍼맘이 불가능하듯 슈퍼대디도 불가능합니다. 일과 가정 사이에 고민하다 가정으로 돌아가는 엄마들 만큼, 일과 가정 사이에 고민하다 일로 돌아가는 아빠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괴로워합니다. 


"매일 아이가 깨기 전에 출근하는데 오늘은 좀 늦게 출근하게 됐어요. 눈 뜨길 기다려 '유정아~' 불렀는데 애가 좋아하는 대신 이상한 듯 쳐다보는 거예요. '아빠잖아~'해도 눈만 꿈뻑꿈뻑하는데 낯선 사람을 보는 눈이었어요. 마음이 어찌나 이상하던지…"



많은 아빠들이 달라지고 싶어하고 또 그러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킹맘 워킹대디들의  바람과 달리 회사와 사회는 변한 게 없습니다. 그런 동료들을 보며 더 이상 남편을 원망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다른 바람이 생겼습니다. 아빠의 육아가 자연스러운 사회, 회사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요. 


저는 육아휴직을 두 번 썼습니다. 회사에서 '너 생각보다 용감하다'는 말 좀 들었습니다. 그 말과 시선이 참 싫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육아휴직을 한 건 사실이지만 부모 직장인의 권리이고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워킹대디가 육아에 나설 땐 '너 생각보다 용감하다'는 말을 더 많이 듣게 됩니다. '회사 다닐 생각없구나' 더 심한 말을 듣습니다. 그 시선부터 거둬주셨으면 합니다. 『아내 가뭄』의 저자 애너벨 크랩은 머릿말에서 "책을 쓰는 내내 바란 것은 별개 아니다. 그저 우리 사회가 남자들에게 가사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조금만 더 권장해주기를, 만약 그게 안 된다면 그런 남자들의 삶을 고달프게나 만들지 말기를, 아니면 자진해서 가사 영역으로 들어가는 남자를 놀란 눈으로 보지만 말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것.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워킹대디 또한 아빠노릇을 하고 싶어하고 아빠노릇 할 시간이 없어 스트레스 받고 있습니다.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는 직원이 회사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요. 제 경험상, 우리 부부의 경험 상, 그리고 지켜본 바,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 전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어 화제였습니다. 일본 이야기 였지만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직장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워 그만두는 엄마들, 계속 직장을 다니며 전쟁을 치르고 있는 워킹맘들, 맞벌이여도 외벌이여도 독박살림과 독박육아는 마찬가지인 상황에 엄마들은 나자빠집니다. 그 안에서 부부관계가 무너지고, 엄마는 아이에게 부모의 이혼이라는 상처를 주는 대신 차라리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끝까지 불편했던 건 제목부터 책 중간중간 등장하는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남편이 육아로 뛰어들지 못하는 상황, 그래서 엄마들이 더 힘든 상황에서 엄마들이 바라는 건 남편이 죽는 게 아니라 남편과 함께 살림하고 육아하고 싶은 것이니까요. 사회가 바뀌고 인식이 바뀌고 남자들이 조금 더 육아와 살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워킹맘 5년차, 아니 맞벌이 부부 5년차. 이제 더이상 '니가 더 힘드네 내가 더 힘드네' 남편과 싸우지 않으려고 합니다. 엄마도 힘들고 아빠도 힘듭니다. 워킹맘도 힘들고 워킹대디도 힘들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워킹맘을 넘어 맞벌이, 엄마의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논하는 것을 넘어 부모의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논했으면 합니다. 워킹맘 워킹대디가 각자의 전장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힘을 합쳐 싸울 수 있게, 그래서 온 가족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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