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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Jun 25. 2022

혼자 다 해내는 건  ‘독립’이 아니라 ‘단절’이라고요?


아연: 아이들이 어렸을 때 유행병이 돌면 웅이, 결이도 꼭 걸렸어요. 결이가 독감에 걸렸다 나아질 즈음에 웅이가 옮고, 남편과 저는 번갈아 휴가를 내며 아이들을 돌봤죠. 출근하는 사람은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에게 ‘옮지 말고 잘 간호해’ 인사를 하며 집을 나섰어요. 그때 전 꼭 전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전사’가 된 것 같았고, 남편은 유일한 동지 같았어요. 서로에게 ‘우리 전우애가 쌓이고 있다’며 토닥이던 기억이 나요.


그래: 아이들 아플 때 얼마나 힘든데... 주변에 도와 달라고 좀 하지 그랬어요.


아연: 우리 가족 일인걸요. 우리끼리 해결 해야죠. 친정부모님, 시부모님 모두 멀리 살고 계시기도 하고요.


그래: 음, 나중에 웅이, 결이가 부모가 되어 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해봐요. 같은 상황일 때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아연: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줘야죠! 얼마나 힘든 지 아는데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텐데 가서 밥이라도 해줄 거예요.

 

그래: 아연님이 부모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독립된 태도 vs 단절된 태도

아연: .........도와주셨을 것 같아요. 솔직히 도와 달라고 하고 싶었죠. 그런데 그건 제 욕심이잖아요. 결혼도 했고 독립도 했는걸요.


그래: 그래요. 어른이 되고 가정을 꾸려서 독립했지요. 그런데, 독립하면 도움을 받으면 안 되나요?


아연: 독립했으면 스스로 해내야죠.


그래: 많은 분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세요. 독립을 혼자 판단하고, 혼자 책임 지고, 혼자 해내는 거라고 생각하지요. 독립과 단절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모든 걸 해내려 하는 건 독립된 태도가 아니라 단절된 태도예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힘들게 만드는 거지요. 건강하게 잘 독립한 사람은 도움을 주고받는 데도 유능하답니다.


아연: 혼자서 해내려고 하는 게 독립이 아니라 나를 고립시키는 태도라고요? 갑자기 혼란스러워요. 그럼 ‘독립’ 된 태도는 뭔가요?



그래: 독립은 상대와 나 사이의 경계선을 인정하고 유지할 수 있는 힘이에요. 내가 상대와 다른 개별적인 존재이고, 상대 역시 나와 다른 개별적인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거지요. 상대방이 ‘난 이게 좋아’라고 하면 ‘저 사람은 저게 좋구나. 저 만큼이 좋구나’라고 인정하고, ‘나는 이게 좋아. 나는 이 만큼이 좋아’ 하고 내 경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독립의 출발점입니다.


물론, 독립을 하려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치의 능력을 갖추는 건 필요하지요.  엄마, 아빠가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해결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태도는 독립하지 못한 미숙한 모습인 게 맞아요. 하지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같이 의논해 보는 것, 도움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다양한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 등은 모두 충분히 독립적인 모습이에요.  


아연: 단순히 혼자 해낼 수 있고 말고가 독립의 기준은 아니군요. 도움이 필요할 때 부모님께 정중히 부탁을 드리되, 거절하시면 물러서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진정한 독립이겠네요.


그래: 그렇죠. 그리고 마찬가지로 부모님도 도움이 필요하실 때 아연님에게 도와 달라고 하실 수 있고, 아연님은 흔쾌히 도와드릴 수도, 양해를 구하고 거절할 수도 있어요. 독립적인 관계에서는 도와 달라고 하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요. 상대방의 시간과 에너지가 상대방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거든요.  



도움 받을 곳이 없는 요즘 부모들

아연: 하지만 막상 도와달라고 하고 싶어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네요.


그래: 맞아요. 저는 요즘 부모들이 스스로 혼자 해내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도움을 받을 곳이 줄어들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영역이 커졌기 때문에 더 힘들어진 부분이 크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나누고 함께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살았어요. 옆집에 반찬을 가져다 드리는 심부름도 종종 갔고, 김장철엔 옆집 아주머니들이 오시는 게 자연스러웠어요. 동생들이 태어났을 때 동네 할머니가 오셔서 엄마를 돌봐 주시기도 했고, 대입 시험을 치른 겨울엔 동네 초등학교(국민학교였습니다~) 6학년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쳐 주기도 했어요. 서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은 것도 크지만, ‘우리 동네’는 서로에게 심리적 안전지대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부모들은 아이 놀이터에도 같이 가요. 혹여 아이에게 나쁜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누가 어느 집 몇 째인지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알고 지냈어요. 아이가 혼자 나가 놀아도 동네 사람 누군가의 시야에는 그 아이가 들어 있는 셈이었으니 어느 정도의 안전이 확보되어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 더 많잖아요.


그만큼 요즘 부모들은 실제로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커졌어요. 상담과 워크숍을 통해 만난 부모들은 육아를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 게 가장 버겁다고 하세요.


아연: 동감해요. 남편과 가끔 아이들 어릴 때 사진을 보면서 ‘우리 이때 진짜 똘똘 뭉쳐서 버텼다'는 이야기를 하곤 해요. 아침에 웃으며 어린이집에 갔던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니 집에 데리고 가라고 연락이 오는데, 남편도 저도 아무리 빨라도 한 시간 후에나 어린이집에 도착할텐데 마음은 급하고 방법은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곤 했어요.


그래: 많은 부모들이 단절된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그렇지만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몫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혼자 해내려고 할수록 삶의 긴장도가 높아져요. 저는 부모들에게 나로서의 삶이 단절되지 않도록 좀 더 적극적으로 연결기회를 만들어 보시라고 권해요. 부모들이 함께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 만으로도 심리적 안전지대가 되어줄 수 있어요. 건강한 부모커뮤니티가 필요한 이유기도 하지요.


육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요.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돌봄교실 확대,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등 다양한 제도들이 마련되고 있죠. 육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부모의 삶으로 넓어질 수 있길 바래요. 아이를 대신 돌봐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부모를 도와주는 사회로 나아가는 거죠. 부모가 되어 아이를 돌보고 아이와 함께 하는 경험은 한 사람에게 커다란 성장의 기회거든요. 부모들이 이 기회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부모를 돌보는 사회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요즘부모 다시보기] 다음화에서는 우리가 정말 부족한 부모인지, 우리 스스로 나를 부족하다는 프레임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람패밀리는 부모의 삶을 연구하며 부모의 성장과 연결을 돕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자람캠퍼스에서는 부모를 위한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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