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연: 웅이가 부쩍 사춘기에 다가가는 것 같아요.. 사춘기 부모로서 저는 아는 게 없으니 슬슬 불안해져요. 뭘 배워야 할까요?
그래: 음…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궁금한 거지요? 저도 그게 참 알고 싶었어요. 그 출발점에 대해 저에게 인사이트를 준 이야기가 있으니 들어봐요.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품으로 유명한 프랑스작가 오귀스트 로댕에게 사람들이 물어요. 평범한 돌덩이에서 어떻게 저렇게 살아 숨쉬는 것같은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냐고. 로댕이 대답해요. ‘나는 단지 돌에서 불필요한 부분만을 덜아냈을 뿐’ 이라고요.
대학원 수업 때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인데 로뎅이 진짜 이런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좋은 부모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아연: 네에? 그게 ‘좋은 부모되기’와 어떤 연관이 있어요?
내 안의 힘 ‘부모성'
그래: 지금 아연님이 로댕에게 질문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가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요. 사람들은 로댕이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명작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연님은 좀 더 많은 육아지식을 배우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내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으시지요?
아연: 네. 부모로 사는 건 매일 새롭고, 매일 부족한 부분이 보이니 계속 배워야죠
그래: 그런데 로댕은 다른 관점으로 설명하지요. 내가 뛰어난 기술이 있거나 엄청난 노력을 해서 명작을 만들어 낸 게 아니라 돌덩이는 이미 걸작을 품고 있었고,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니 감춰져있던 모습이 드러났다고요. (뭐 숨겨진 명작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더 큰 능력이 있다는 의미의 자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나중에 들었어요. 내 부모성을 발견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더라고요. ㅎㅎ)
아연: 그 말은, 저는 이미 좋은 부모인데 모르고 있다는 건가요?
그래: 네. 우리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자는 거지요.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기에 충분한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어요. 저는 그걸 ‘부모성(父母性)’이라고 불러요. 부모는 뭔가를 더 채워야 하는 부족한 대상이 아니라 이미 충분한 힘을 가진 존재에요. 무언가 불필요한 것들에 덮혀 그 힘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부모인 내가 나 자신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 지에 따라 많은 게 바뀌더라고요. 상상해 보세요. 나는 부족하기에 더 채워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충분한 사람이라고.
아연: 뭔가 느낌은 다른데, 확 믿기진 않아요. 정말 있어요? 어떻게 알아요?
그래: 이미 드러난 부분도 있고, 무언가에 덮혀 드러나지 못한 부분도 있겠지요? 같이 찾아볼까요? 아이가 첫 걸음마를 시작하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그 때 어떠셨어요?
아연: 환호성이 터져나왔어요. 물개 박수를 쳤지요. 그 조그만 아이가 저를 보고 주춤주춤 일어서서 걸어오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뭉클해요.
그래: 저도 그래요. 그 순간에 우리를 움직인 것이 ‘지식’인가요? 예를 들어 ‘‘아이가 첫 걸음마를 시작한다는 건 엄청난 도전이니 그 순간 손을 내밀어 안아주고 열렬하게 호응해주는 것이 아이의 성취감에 도움이 된다’ 뭐 이런 거요…그런 거 배운적 없잖아요. 그 순간 우리를 움직인 힘, 부모성은 우리 안에 이미 가득해요. 부모가 되고 ‘내가 이런 사람이었어?’ 하고 스스로가 놀라웠던 적 있으시죠?
아연: 있어요. 그런데 그런 순간을 떠올려보거나 나눈 경험은 별로 생각나지 않아요. ‘이런 걸 더 잘해야 되는데… 난 왜 이게 잘 안 될까..더 노력해야 해’ 이런 아쉬운 부분에 더 집중해서 살고 있었던 것 같네요.
부모가 되어 만나는 ‘놀라운 나’
그래: 저도 그 부분이 제일 아쉽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을 만날 때 전문가를 양성해 낼 때 가장 열심히 이야기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에요. 부모성은 특별한 게 아니에요.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는 부모로서의 본성이죠. 우리는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있고, 필요한 순간 발휘할 수 있어요..
아연: 그래님은요? 그래님이 부모성을 경험한 순간이 있으세요?
그래: 음…. 가장 강렬했던 경험은 첫 아이를 낳을 때였어요. 처음 아이를 가졌던 순간, 또 아이를 낳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그 때의 경험이 나의 부모성을 확인하는 걸 도와줄 거예요.
저는 첫째 아이를 낳을 때 자연분만 도중에 응급 상황이 발생했었어요. 아기 머리가 골반뼈에 끼면서 아기도 저도 위험한 상태가 되었어요. 저는 이미 보름간의 가진통까지 겪고 자연분만을 위해 분만대에 올라가서도 한참을 견디다보니 거의 탈진 상태였고 응급 수술이 결정되었어요. 남편이 급하게 불려 들어와 설명을 듣고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데… 아기와 산모의 상황을 들은 남편이 ‘무조건 아내를 살려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 때 거의 정신을 잃어가는 중에서도 제가 온 힘을 다해 소리쳤던 기억이 나요. 안 된다고.. 아기를 살려달라고…
아연: 부모가 되면 아이를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하잖아요. 진짜 그렇게 하셨네요.
그래: 저도 그런 제가 참 신기해요. 아직 얼굴도 못 본 아기고, 내 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지만 저는 그게 순도 100%의 진심이란 걸 알잖아요. 다행히 아기도 저도 무사했어요. 물론 가진통에 16시간이 넘는 진통을 견딘 후에, 제왕절개까지 했으니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얼굴 곳곳에 물집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처음 경험했어요..
다음 날 아기를 처음 품에 안았는데 머리가 정말 지구본처럼 동그래요.게다가 4.2 kg…. 못 나올만 했지요? 가족들이 아기를 보며 이런 말을 했어요. ‘넌 진짜 엄마에게 효도해라.. 엄마가 목숨을 걸고 널 낳았어’
하지만 저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냥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나 준 것 만으로 정말 고마웠고요. 내가 이 아기를 위해 0.1 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 모든 걸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경험을 한 것이 신기하고 뿌듯했어요. ‘나는 이 아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구나.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구나.. ‘ 그 순간 저는 제가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사실 그 전까진 ‘ 착하다, 좋은 사람이다’ 라는 말을 들어도 질투나 억울함처럼 선뜻 드러내기 힘든 마음이 내 안에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으니까.. 선뜻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오히려 애쓰지 않으면 그런 불편한 내 모습을 들킬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지요. 그런데 아이를 통해 내 안에 이런 순도 100의 이타성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경험하고 나니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단단해지더라고요.
아연: 단순히 아이를 낳은 것 이상으로 한 사람인 나에 대한 놀라운 경험이네요. 그래서 부모로 태어났다는 표현을 쓰시는 거군요.
그래: 네.. 정말 새롭게 태어난 것 같았어요. 아연님도, 저도, 엄마 아빠들은 크고 작게 이런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배워서 하지 않았어요. 스스로 해내지요. 우리 안에는 아이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이미 있거든요. 그러니 우리는 이미 충분히 좋은 부모인 거예요.
아연: 크고 작은.. 이라고 표현해주시니까 여러 순간이 스쳐요.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들 하거든요. ‘야, 너 내가 얼마나 아이를 무서워하는 지 알지? 임신하고 내 아이가 무서우면 어쩌나 그렇게 걱정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목소리가 ’솔‘톤인 건 기본이고 아이가 너무 예뻐 걱정이야. 길거리에 지나가는 아이만 봐도 웃음이 나’ 하는 친구도 있고요, ‘아이가 나를 향해 뛰어오면, 15kg이 넘는 아이를 번쩍 들어올리게 된다’는 친구도 있어요. 어쩌면 제가 이렇게 ‘부모’에 대해 집요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질문을 계속하는 것도 제 안의 부모성이 발휘되고 있는 순간이 아닐까요?
그래: ’어쩌면’이 아니라 정말 그래요~ 내 안의 부모성을 믿어보세요.
[요즘부모 다시보기] 다음회에서는 우리 안의 '부모성'이 발현되는 걸 덮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벗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자람패밀리는 부모의 삶을 연구하며 부모의 성장과 연결을 돕는 사회적기업입니다. 자람캠퍼스에서는 부모를 위한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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